2화
봉투
건물주 김 사장은 문자를 보낼 때 항상 마침표를 두 개씩 찍는다.
봉 사장님 이번 달까지는 정리 부탁드립니다..
아침 여덟 시에 온 문자였다. 나는 그걸 세 번 읽었다. 마침표 두 개가 세 번째 읽을 때 제일 무거웠다. 밀린 월세 석 달 치, 360만 원. 보증금 2,000에서 이미 까인 게 그 정도였다. 이번 달을 넘기면 김 사장은 보증금을 다 까고 나가라고 할 거다. 십 년 동안 이 동네에서 그런 일을 수없이 중개해 봤으니 순서는 잘 안다.
나는 답장을 쓰다가 쓸 말이 없어서 지웠고, 대신 커피믹스를 탔다. 한 잔째였다.
어제 본 글자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표시 등급 C, 실제 등급 F. 밤새 그 두 줄을 생각했다. 진짜라면 엄청난 거고, 가짜라면 나는 피곤해서 헛것을 본 서른넷짜리 중개사다. 둘 중 뭔지는 확인해 보면 알 일이었고, 확인하려면 답을 아는 던전이 필요했다.
나는 커피를 반쯤 남긴 채 일어나 계단을 내려갔고, 골목 맞은편 1층 유리문을 밀었다.
"어이 봉 사장, 아침부터 웬일이야?"
왕부동산 사장은 돋보기를 코끝에 걸치고 신문을 넘기다가 나를 올려다봤다. 같은 골목에서 나보다 이십 년 먼저 간판을 단 양반이고, 나랑은 손님을 세 번쯤 다퉜다. 세 번 다 상대가 먼저 채 갔다고 서로 기억하고 있어서, 인사는 하되 커피는 안 권하는 사이였다.
"사장님 매물 중에 그 봉천 공원 옆 던전 있잖아요. 그거 잠깐 볼 수 있을까요?"
"그거? D급인데. 왜, 손님 있어?"
"그냥 공부 좀 하려고요. 던전 중개를 배워 보려고."
왕 사장이 돋보기를 내리고 나를 한참 쳐다봤다. 상가 하던 놈이 갑자기 던전을 배우겠다니 수상했겠지. 그러더니 책상 위 열쇠 꾸러미에서 하나를 빼 건네며 한마디를 붙였다.
"손님 생기면 반은 내 거야."
봉천 공원 옆 던전은 왕 사장이 3년째 관리하는 매물이었다. 국가 감정 D급. 실제로 D급 헌터 파티가 매달 들어가서 고블린 가죽을 캐 오고, 매달 그 기록이 왕 사장 장부에 남는다. 3년 치 기록이 있는 D급. 이보다 확실한 답안지는 없었다.
구멍 앞에 섰다. 숨을 고르고, 상가 볼 때처럼 봤다.
【매물】 봉천 공원 옆 던전 (노지형)
표시 등급: D │ 실제 등급: D
매장 자원: 고블린 가죽 (보통), 하급 마정석 (소량)
하자: 없음
D와 D. 고블린 가죽 보통. 왕 사장 장부랑 똑같았다.
나는 다음 답안지로 갔다. 구청이 직접 관리하는 신림천 던전. 공공 던전이라 감정서와 공략 기록이 구청 홈페이지에 다 올라와 있다. C급. 오크 가죽과 하급 마정석.
【매물】 신림천 공공 던전 (하천형)
표시 등급: C │ 실제 등급: C
매장 자원: 오크 가죽 (보통), 하급 마정석 (보통)
하자: 없음
두 개 다 맞았다.
나는 신림천 둑에 앉아 한참 동안 물을 봤다. 커피믹스는 사무실에 두고 와서 손이 심심했다. 그래서 그냥 계산을 했다.
던전 시장은 5년 됐다. 거래는 전부 국가 공인 감정서로 한다. 감정사가 보는 건 입구에서 측정기로 재는 30분이 전부고, 던전은 몇 달이면 상태가 변한다. 그러니 감정서가 틀릴 수 있다는 건 다들 안다. 그래도 재감정을 받으려면 수백만 원에 몇 주가 걸리고, 은행은 공인 감정서만 있으면 보증보험이 붙으니 손해 볼 일이 없다. 그래서 웬만하면 아무도 다시 보지 않는다.
그런 시장에 진짜 등급을 볼 줄 아는 중개사가 한 명 있다면.
손님은 줄을 설 거다. 매수인은 속지 않으려고 올 거고, 보증보험사는 물어낼 돈을 줄이려고 올 거다. 수수료를 두 배로 불러도 낼 거다. 아니, 세 배를 불러도.
월세 360만 원이 갑자기 작아 보였다.
점심은 박 여사네서 먹었다. 떡볶이 1인분에 어묵 하나. 박 여사는 내가 앉자마자 국자를 든 채로 말을 걸었다.
"만수 총각, 307호 새댁 알지? 빌라 3층."
"신혼부부요?"
"그래. 그 새댁도 던전 전세 들어갔는데 집주인이 연락이 안 된대. 금목걸이 차고 다니는 놈이래. 내가 처음부터 영 찜찜하다고 했는데."
금목걸이. 나는 어제 철호가 보여 준 계약서의 막도장을 떠올렸다. 차갑돈.
"보증금이 얼만데요?"
"6,000이랬나. 둘이 결혼하면서 모은 거 전부래. 어제는 우리 가게 앞에서 전화기 붙잡고 울더라."
나는 떡볶이를 먹었다. 떡이 맵고 달았다. 6,000에 10퍼센트면 600. 철호 거 800하고 합치면 1,400. 머리가 그 계산을 먼저 했다. 그런 내가 조금 싫었는데, 싫다고 해서 계산이 멈추지는 않았다.
스물네 살 때 나도 어느 가게 앞에서 전화기를 붙잡고 서 있었다. 상대는 분양 대행사였고, 그쪽에서는 계속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고만 했다. 울지는 않았다. 울 기운도 없었다.
"총각, 듣고 있어?"
"네, 듣고 있어요. 여사님, 그 새댁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박 여사가 어묵을 하나 더 얹어 주었다. 이 동네에서 공짜 어묵은 응원이라는 뜻이다. 나는 그 응원이 좀 민망했다. 박 여사는 내가 그 새댁을 도우려는 줄 알았겠지만, 내 머릿속엔 600이라는 숫자가 먼저 있었으니까.
나는 어묵을 국물까지 비우고, 박 여사가 주문서 뒷면에 적어 준 번호를 휴대폰에 저장했다. 이름 칸에는 307호라고만 적었다.
봉천 2-8 던전은 상가 건물 지하 1층, 망한 노래방 자리에 있었다. 벽에 형광 별 스티커가 아직 붙어 있었다.
갭돌이는 먼저 와 있었다. 체크무늬 재킷에 젤 바른 머리였고, 목에는 볼펜 굵기의 금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얼굴은 생각보다 순했다. 사기꾼은 대개 얼굴이 순하다. 안 순하면 아무도 안 속으니까.
"아이고, 만수부동산 사장님! 차갑돈입니다."
악수가 따뜻하고 촉촉했다. 나는 웃으면서 그 손을 맞잡았다.
"던전은 처음이시죠? 상가 하셨다고 들었는데."
"네, 많이 배우려고요."
"잘 오셨어요. 던전은 상가랑 똑같아요. 입지가 전부예요."
갭돌이가 구멍 쪽으로 손을 펼쳐 보였다. C급, 국가 공인 감정서, 고블린 가죽과 하급 마정석, 전세 7,000에 2년. 어제도 문의가 다섯 건 왔다고 했다. 나는 감탄하는 척하며 구멍 앞에 쪼그려 앉았다.
【매물】 봉천 2-8 던전 (지하형)
표시 등급: C │ 실제 등급: F
매장 자원: 고블린 가죽 (소량)
하자: 등급 감정서 위조 이력 1회 / 철호 계약 매물과 동일 감정사
세 번째 답안지까지 맞은 셈이었다. 갭돌이 매물은 가짜고, 내 눈은 진짜였다.
"어때요, 사장님?"
"좋네요. 진짜 좋네요."
나는 일어나서 무릎을 털었다. 표정 관리는 이 일 하면서 제일 먼저 배운 거다.
갭돌이는 노래방 소파에 걸터앉아 나를 아래위로 훑었다. 순한 얼굴 뒤에서 뭔가를 재고 있었다. 그러다 재킷 안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냈다.
"사장님, 솔직하게 얘기할게요. 요즘 던전 중개하는 사람들이 다 대형 법인 쪽으로 붙어서, 저 같은 개인은 손님 받기가 힘들어요. 사장님처럼 동네에서 오래 하신 분이 딱 필요해요."
"무슨 말씀이신지…."
"손님 데려오시면 수수료 법정 요율의 두 배. 현금으로. 이건 그냥 인사고요."
갭돌이가 봉투를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두께로 봐서 50만 원쯤이었다. 봉투 입구가 살짝 벌어져 있어서 신사임당 얼굴이 반쯤 보였다.
손님을 데려오면 두 배. 데려올 손님이 누구인지는 둘 다 알았다. 철호 같은 사람. 307호 새댁 같은 사람.
"부담 갖지 마시고요. 생각해 보세요. 사장님 사무실 월세도 만만치 않으실 텐데."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이 사람은 내 사무실 월세가 밀린 걸 어떻게 알았을까. 아마 몰랐을 거다. 그냥 동네 2층 부동산은 다 월세가 밀린다는 걸 알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건 대체로 맞는 말이었다.
봉투를 돌려줘야 했다.
돌려주는 게 맞았다. 그런데 손이 생각보다 늦게 움직였다. 50만 원이면 김 사장 마침표 두 개 중 하나는 지울 수 있었다.
"…생각해 볼게요."
나는 봉투를 재킷 안주머니에 넣었다. 갭돌이가 씩 웃었다. 순한 얼굴이었다.
노래방 계단을 올라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철호였다.
"사장님! 어떻게 됐어요? 그 사람 만나셨어요?"
안주머니의 봉투가 가슴께에 닿아 있었다. 종이 한 장 무게도 안 되는 게 이상하게 무거웠다.
"…아직 보는 중이에요."
나는 그렇게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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