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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실적 미달

"구태환 씨, 이번 달까지만 나와요."

팀장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화이트보드에는 이번 달 실적표가 붙어 있었다.

맨 윗줄은 최성훈 선배다. 정화량 412톤, 1위. 이름 옆에 금색 별 스티커까지 붙어 있었다.

내 이름은 맨 아래 칸에 있다.

정화량 38톤.

그 옆 칸만 빨간 형광펜으로 칠해져 있다. 실적 미달, 능률 저하.

정화량은 조 단위로 재고, 장비에 찍힌 수치를 시스템에 넣는 건 조장 몫이다.

조장은 대개 전투 스킬이 한 줄이라도 있는 사람이 맡았다. 맨홀 바닥이나 집하장 구석에는 가끔 잔류물을 먹고 자란 쥐나 벌레 변이체가 숨어 있었고, 그걸 쫓아내는 게 조장 일이었으니까. 정화 스킬밖에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 한 줄이 곧 계급이었다.

최 선배의 스킬 창에는 [완력 강화(F)]가 있었다. 주먹이 조금 세지는 게 전부인 스킬이다. 그 한 줄 차이로 선배는 7년 동안 조장이었다. 내가 맨홀 바닥에서 잔류물을 빨아들이는 동안 선배는 위에서 기다리다가, 장비를 받아 들고 입력 버튼을 눌렀다. 누구 이름으로 몇 톤을 넣을지는 버튼을 누르는 사람이 정했다.

7년 동안 그랬다.

처음 몇 해는 따져 봤다. 현장 일지를 들고 팀장을 찾아가기도 했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조 실적은 조 실적이다, 선배가 조를 이끌었으니 선배 실적이다, 너도 조장 되면 그렇게 해라.

그리고 그다음 날 현장에서는, 맨홀 사다리를 내려가기 직전에 선배가 내 어깨를 한 번 쥐었다. 강화된 손아귀로. 웃으면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웠다. 그 뒤로는 따지지 않았다.

"원청에서 인원 줄이라고 내려왔어. 실적 순서대로 자르래. 나도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네."

"서운하게 듣지 말고. 요즘 손도 안 좋잖아. 좀 쉬면서 몸 챙겨요, 몸."

'412톤 중에 몇 톤이 제 건지는 팀장님도 아시잖아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그냥 삼켰다. 7년 동안 안 통한 말이 마지막 날이라고 통할 리 없었다.

나는 책상 아래로 손을 내려다봤다.

작업 장갑 끝으로 손가락 두 마디가 삐져나와 있다. 검게 굳은 손끝이다. 7년 동안 하수관과 폐기물 집하장과 지하철 환기구에서 빨아들인 것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거기 고여 있는 거였다.

게이트에서 나온 것들은 꼭 뭔가를 흘리고 간다.

몬스터 피, 부서진 마석 가루, 이름도 모를 껍질 조각. 눈에 안 보일 만큼 잘게 부서져서 흙에도 물에도 공기에도 쌓인다. 뉴스에서는 그걸 이계 잔류물이라고 부른다. 마석 없이는 전기도 반도체도 안 돌아가는 세상이라 게이트를 막을 수는 없고, 그러니 누군가는 쌓이는 족족 치워야 했다.

그 누군가가 우리였다.

각성은 했는데 칼도 불도 못 쓰는 사람들.

내 스킬 창에는 7년째 한 줄뿐이었다.

[기초 정화(F)]

손바닥으로 닿은 곳의 잔류물을 빨아들여 몸 안에서 태운다. 정화 업체 직원이라면 누구나 하나씩 가진 스킬이라, 누가 빠지면 다음 날 다른 누가 그 자리를 채웠다. 412톤을 치운 사람이 빠져도, 아무도 모를 그런 대체 가능 인력들.

"인수인계는 다음 주까지만 해 주면 되고. 퇴직금은 규정대로 나갈 거야."

"오늘 정리할게요."

팀장이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오늘?"

"현장 일지는 공유 폴더에 다 올려 놨어요. 3구역 맨홀은 다음 주에 한 번 더 들어가야 하고, 양재 집하장은 동쪽 배수구부터 하시면 돼요. 서쪽부터 들어가면 오후에 바람이 돌아서 빨아들인 게 다 되돌아와요."

"아, 어. 그래, 그렇지."

팀장은 뭔가 더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붙잡을 생각이 없다는 건 둘 다 알고 있었다. 나도 붙잡히고 싶지 않았다. 이상하게 그게 제일 편했다.


회사 장비는 전부 반납했다.

방독 마스크, 수거 통, 출입증, 야간 작업용 헤드랜턴.

사물함 맨 안쪽에 장갑 한 켤레가 남아 있었다. 3년 전 월급날에 큰맘 먹고 내 돈으로 산 가죽 장갑이다. 회사에서 나눠 주는 면장갑은 한 달이면 손바닥이 뚫려서 잔류물이 그대로 손에 묻었으니까. 손바닥이 닳고 닳아 내 손 모양 그대로 굳어 있었다.

그것만 점퍼 주머니에 넣었다.

엘리베이터 거울 속 얼굴이 낯설었다. 스물아홉인데 눈 밑은 마흔 살 같다.

'7년이라.'

스물둘에 들어와서 하루도 안 쉬었다. 정확히는 쉴 수가 없었다. 연차를 내려고 하면 꼭 그 주에 어디선가 하수관이 넘쳤고, 팀장은 "이번만"이라고 했다. 그 이번만이 7년이었다.

숙소는 회사 근처 고시원이었다.

두 평 반짜리 방에 창문은 복도 쪽으로 나 있다. 바깥 날씨를 알려면 휴대폰을 봐야 하는 방이었다. 월세 38만 원, 관리비 포함. 회사까지 걸어서 7분이라 새벽 호출에 제일 빨리 뛰어나갈 수 있다는 게 이 방을 고른 유일한 이유였다. 공용 냉장고 둘째 칸에 내 이름을 매직으로 적어 둔 반찬 통이 하나 있었는데, 뚜껑을 열어 보니 일주일 전에 사 둔 무말랭이가 그대로였다.

침대에 걸터앉아 휴대폰을 켰다.

인사 앱에 알림이 떠 있었다.

[사용 연차 0일 / 소멸 예정 연차 14일]

웃음이 났다. 소리는 안 났다.

라면이라도 끓이려고 젓가락을 집었는데 손끝이 말을 안 들었다. 젓가락 한 짝이 바닥으로 굴러가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주우려고 허리를 숙이다가 그냥 그 자세로 앉아 있었다.

내일 아침에 알람을 맞출 필요가 없다는 게 실감이 안 났다. 새벽 다섯 시 반에 울리던 알람, 여섯 시 십 분에 오던 팀 단톡방의 현장 배정, 일곱 시까지 집하장 정문. 몸은 그 순서를 다 외우고 있는데 이제 갈 데가 없었다.

휴대폰 화면에는 아까 퇴근 버스에서 보던 영상이 멈춰 있었다.

[30대 귀농, 현실은? 땅값부터 알아보자]

시골 땅은 싸다고 했다. 싸다는 땅의 평당 가격이 화면 아래로 지나갔는데, 내 통장 잔고로는 밭 한 귀퉁이도 안 됐다. 게다가 요즘 시골 땅은 대부분 잔류물에 절어서 농사가 안 된다고 했다. 영상 속 귀농인은 결국 땅을 놀리고 있었다.

서울은 돈이 있으니까 우리 같은 사람을 돌려서라도 치운다.

지방은 그 돈이 없다.

우리 같은 놈들 일당도 못 대는 동네는, 그냥 회색으로 썩어 버린 채 사는 수밖에.

영상을 껐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지역 번호가 054다.

"…여보세요."

-구태환 씨 되십니까? 여기 은곡리 이장인데요.

은곡리.

한참 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할아버지, 구만석 어르신이 지난주에 돌아가셨어요. 연락처를 몰라서 수소문하느라 늦었습니다. 장례는 마을에서 다 같이 치러 드렸고요.

나는 대답을 못 했다.

할아버지 얼굴을 떠올리려고 했는데, 떠오르는 건 열두 살 때의 할아버지였다. 그 뒤로 몇 번이나 봤던가. 명절에 두어 번. 그것도 군대 가기 전까지였다.

-집이랑 밭 문제도 있고 해서요. 바쁘시겠지만 한번 내려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안 바빠요."

말하고 나서야 그게 사실이라는 걸 알았다.


은곡리까지는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했다.

첫 번째 버스가 고속도로에 올라탔을 때 휴대폰이 짧게 떨렸다.

[3팀 현장 배정 방에서 내보내졌습니다.]

7년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새벽마다 들여다보던 방이었다. 마지막 메시지는 팀장이 올린 내일 배정표였는데, 내 이름이 있던 자리에 처음 보는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그 이름을 한 번 소리 없이 읽어 보고 휴대폰을 뒤집어 무릎에 올려놨다.

창밖으로 아파트가 줄어들고 산이 늘어난다.

마지막 정류장에서 내리자 택시 한 대가 서 있었다. 기사는 주소를 듣더니 백미러로 나를 한 번 쳐다봤다.

"거기 사람 거의 없는데."

"할아버지 댁이에요."

"아아."

그 뒤로 기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논이 지나갔다. 정확히는 논이었던 것들이다. 물을 댄 흔적은 있는데 벼 대신 잿빛 풀만 듬성듬성 올라와 있었다. 밭둑마다 '잔류물 오염 경작 주의' 현수막이 색이 바랜 채 바람에 펄럭였다.

마을 입구 느티나무 아래에서 택시가 섰다.

집이 서른 채쯤 보였는데, 그중 저녁에 불이 켜질 것 같은 집은 몇 채 안 됐다. 지붕이 내려앉은 집, 대문에 쇠사슬을 감아 둔 집, 마당에 잡초가 무릎까지 자란 집.

흙이 회색이었다.

어릴 때 기억 속 은곡리 흙은 이런 색이 아니었다.

방학마다 여기 내려왔다. 엄마가 일하러 나가면 나를 맡길 데가 할아버지 집밖에 없었으니까. 할아버지는 말이 없는 사람이었고, 아침마다 아무 설명 없이 내 손을 잡고 밭으로 나갔다. 나는 고랑 사이를 뛰어다니다 흙투성이가 돼서 돌아왔고, 할아버지는 그런 나를 펌프 물로 씻기면서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딱 한 번, 할아버지가 흙을 한 줌 쥐어 내 코앞에 내민 적이 있다.

"냄새 맡아 봐라. 이게 살아 있는 흙이다."

열 살짜리가 뭘 알았겠나. 나는 그냥 흙냄새가 좋다고 했고, 할아버지는 그날 처음으로 웃었다.

그 흙은 검고 축축했다. 손으로 쥐면 손금 사이사이에 꼈다.

이장은 육십 대 중반쯤 돼 보였다. 마을회관 앞 평상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소는 뒷산 양지바른 데 모셨어요. 어르신이 생전에 자리를 봐 두셨거든."

"…감사합니다."

"서류는 이따 드리고. 집은 어르신 계시던 그대로예요. 밭도."

이장은 거기까지 말하고 잠깐 망설였다.

"밭은 뭐, 보시면 알 거예요. 이 동네가 다 그래요. 군청에서도 정화 예산이 없다고 손을 못 대고, 서울 업체는 부르면 출장비만 몇백이고. 젊은 사람들은 다 나가고."

"할아버지는요?"

"끝까지 밭에 나가셨어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매일."

할아버지 집은 마을 맨 끝, 산 쪽에 있었다.

슬레이트 지붕, 툇마루, 뒤뜰의 닭장. 그대로였다. 대문 옆에 할아버지 장화가 한 켤레 엎어져 있었다. 밑창에 묻은 건 진흙이 없는 회색 먼지뿐이었다.

나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밭으로 갔다.

집 뒤로 돌아 낮은 언덕을 내려가면 바로 밭이다. 어릴 때는 끝이 안 보일 만큼 넓었는데, 지금 보니 그렇게 크지도 않았다.

밭은 회색이었다.

고랑은 남아 있었다. 할아버지가 마지막까지 갈아 둔 고랑이었다. 그런데 그 위로 자란 게 하나도 없었다. 말라 죽은 고춧대 몇 개만 회색 흙에 꽂혀 있었다.

다리가 풀렸다.

고랑 끝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정화량 38톤. 실적 미달. 사용 연차 0일.

머릿속에 숫자들이 둥둥 떠다녔다. 서울에서 남의 이름으로 412톤을 치우는 동안 할아버지 밭은 혼자 회색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내가 하수관에 손을 넣고 있던 그 시간에, 할아버지는 안 되는 줄 알면서 매일 이 고랑을 갈았을 거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밭 앞에서 그 숫자들은 하나도 쓸모가 없었다.

나는 장갑을 벗었다.

검게 굳은 손끝이 드러났다.

그 손으로 흙을 짚었다. 그냥 짚고 싶었다. 어릴 때처럼 손금에 흙이 끼는 느낌이 그리웠으니까.

손바닥이 회색 흙에 닿았다.

익숙한 감각이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잔류물이다. 이 밭에도 잔뜩 쌓여 있었다. 7년 동안 매일 하던 일이라 머리보다 손이 먼저 알았다.

[기초 정화]가 저절로 돌았다.

손바닥으로 잔류물이 빨려 들어왔다. 이쯤이면 손목 안쪽이 뜨거워지고, 그다음엔 그게 몸 안 어딘가에 고일 차례다. 7년 동안 한 번도 안 틀린 순서였다.

그런데 고이지 않았다.

빨려 들어온 것이 손끝에서 방향을 틀었다. 다시 흙 쪽으로 흘러 나갔다. 손가락 끝에 굳어 있던 것까지 같이 딸려 나갔다.

뭐지?

나는 숨을 멈췄다.

손바닥 아래로 뭔가가 천천히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흙이 그걸 받아서 품는다. 받아서, 삭힌다.

손을 뗐다.

손바닥 둘레로 쟁반만 한 자리.

흙이 갈색이었다.

축축하고, 검은 기가 도는 갈색. 손으로 쥐면 손금에 낄 것 같은 흙이었다.

나는 손을 내려다봤다.

손끝이 원래 살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다시 쥐었다 폈다. 7년 만에 손가락이 아프지 않았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바람이 불었다. 밭둑의 잿빛 풀이 쓸리는 소리 사이로, 손바닥만 한 갈색 흙에서 냄새가 올라왔다. 축축하고 비릿하고, 조금은 달큰한 냄새. 열 살 때 할아버지가 코앞에 내밀던 그 냄새였다.

그때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떴다.

각성하고 나서 스킬 창이 저절로 뜬 건 처음이었다.

[새로운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고유 스킬: 부숙(腐熟)]

[빨아들인 이계 잔류물을 흙 속에서 삭혀 거름으로 바꿉니다.]

나는 그 글자를 한참 들여다봤다.

고유 스킬.

정화 업체 직원이면 누구나 가진 그거 말고. 나만 가진 거.

"…내 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