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영농일지
창은 오 초쯤 떠 있다가 사라졌다.
나는 허공에 대고 손가락을 휘저었다. 7년 동안 한 번도 안 해 본 짓이다. 스킬 창은 원래 내가 불러야 뜨는 거였고, 불러 봐야 늘 같은 한 줄이었으니까.
"상태창."
[구태환]
[등급: F]
[보유 스킬]
[기초 정화(F) — 숙련 72]
[부숙(고유) — 숙련 1]
두 줄이다.
창을 닫았다가 다시 열어 봤는데 여전히 두 줄이다. 혹시 몰라 한 번 더 닫고 열었다. 손끝으로 '부숙' 글자를 눌러 보기까지 했다. 눌러서 뭐가 될 리도 없는데.
'이게 진짜 내 거라고?'
[기초 정화]의 숙련 72는 7년을 갈아 넣은 숫자였다. 하수관 한 번, 집하장 한 번, 지하철 환기구 한 번이 쌓이고 쌓여서 1년에 10씩 겨우 오른 숫자. 그 옆에 숙련 1짜리 새 줄이 붙어 있는 게 이상하게 눈에 걸렸다. 아무것도 안 쌓인 1이 72보다 더 무거워 보였다.
각성은 열아홉 살 겨울에 했다. 동네 편의점 앞에서 열이 사십 도까지 올라 쓰러졌고, 깨어 보니 스킬 창에 [기초 정화]가 떠 있었다. 엄마는 그래도 각성자가 됐다며 미역국을 끓였고, 나는 그 한 줄을 들여다보면서 뭐가 될 수 있을지 한참 상상했다.
뭐가 될 수 있는지는 금방 알았다. 정화 업체 면접장에 나랑 똑같은 한 줄을 가진 사람이 마흔 명쯤 앉아 있었으니까.
나는 쟁반만 하게 갈색이 된 자리 앞에 쪼그려 앉아 흙을 한 줌 쥐었다. 손금 사이사이로 흙이 끼었다.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 보니 비릿하고 축축하고, 끝에 아주 조금 단내가 났다.
진짜였다.
해가 산 뒤로 넘어가고 나서야 할아버지 집에 들어갔다.
미닫이 현관이 레일에 걸려 덜컥거리다 열렸다. 집 안은 생각보다 깨끗하다. 이장 말로는 장례 끝나고 마을 할머니들이 한 번 쓸고 닦아 줬다고 했다. 그래도 집에서는 사람 안 산 집 특유의 서늘한 냄새가 났다.
마루에 올라서자 나무가 삐걱 울었다. 어릴 때도 꼭 이 판자가 울어서, 새벽에 몰래 화장실 가다가 할아버지를 깨우곤 했다.
할아버지 방은 안방 옆 작은 방이었다.
벽에 걸린 달력은 지난달에 멈춰 있다. 날짜 몇 군데에 볼펜으로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는데, 옆에 적힌 글씨가 너무 작아서 읽을 수가 없었다. 옷걸이에는 무릎이 하얗게 닳은 작업복이 걸려 있었고, 창가 책상 위에는 공책이 탑처럼 쌓여 있었다.
대학 노트였다. 표지마다 연도가 매직으로 적혀 있다. 맨 아래 공책은 표지가 누렇게 바래서 숫자가 거의 안 보였고, 위로 갈수록 종이가 하얬다. 세어 보니 서른한 권.
맨 위 공책이 올해 것이었다.
첫 장을 펼쳤다.
연필로 꾹꾹 눌러 쓴 글씨였다. 할아버지 글씨는 처음 봤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반듯했다.
1월 3일. 맑음. 퇴비장 뒤집음. 부숙 안 됨. 작년 가을 것도 그대로.
손이 멈췄다.
방금 내 눈앞에 떴던 그 두 글자가 할아버지 글씨로 공책 첫 줄에 적혀 있었다.
다음 줄을 읽었다.
거름이 안 삭는다.
나는 공책을 한 장씩 넘겼다.
2월 11일. 퇴비 또 그대로. 볏짚을 더 넣어 봄.
4월 20일. 고추 모종 심음. 열두 포기 중 아홉 포기 죽음.
날짜가 뒤로 갈수록 글씨가 조금씩 기울었고 획도 떨렸다. 그래도 하루도 빠짐없이 적혀 있었다. 뭘 심었는지, 몇 포기가 죽었는지, 퇴비장을 몇 번 뒤집었는지.
나는 탑 맨 아래에서 누런 공책 한 권을 빼냈다. 표지 숫자를 겨우 읽어 보니 내가 열 살 때였다.
8월 2일. 고추 첫물 땀. 열여섯 근. 태환이 놈 고랑에서 넘어져 무릎 깨짐. 된장 발라 줌.
웃음이 샜다. 그 된장 냄새가 기억났다. 아파서 울었는데 할아버지는 된장 바른 무릎을 탁 치면서 "흙 묻어야 크는 거다" 했었다.
8월 3일. 퇴비 부숙 잘됨. 손 넣으니 뜨끈하다. 가을 배추 자리에 넣을 것.
같은 단어였다. 그때는 잘됐다고 적혀 있었다.
부숙(腐熟). 퇴비를 삭혀서 거름으로 익히는 일.
할아버지한테는 그냥 매일 하는 일이었다. 볏짚이랑 깻대랑 닭똥을 켜켜이 쌓아 두고, 속에서 열이 오르면 뒤집고, 다 익으면 밭에 뿌린다. 거름이 잘 삭아야 흙이 살고, 흙이 살아야 뭐든 자란다.
그런데 이 땅은 몇 년째 그게 안 됐던 걸까.
잔류물이 섞인 흙은 숨을 안 쉰다. 서울 하수관에서도 똑같았다. 잔류물이 쌓인 곳에선 썩어야 할 것도 안 썩는다. 음식물 쓰레기도, 죽은 쥐도 그냥 그대로 굳어서 회색이 됐다. 그걸 빨아들여 치우는 게 우리 일이었다.
그 굳은 걸 흙이 다시 삭히게 만드는 스킬.
할아버지가 몇 년 동안 공책 맨 위에 적었던, 끝내 안 됐던 그 일.
'왜 하필 지금이야.'
올해 공책의 맨 마지막 장까지 넘겼다. 마지막 기록은 돌아가시기 사흘 전이었다.
닭 모이 줌. 퇴비장 뒤집음. 부숙 안 됨.
그 뒤로는 빈 장.
나는 휴대폰을 꺼내 통화 기록을 끝까지 내렸다. '할아버지'로 저장된 이름은 2년 전 추석 무렵에 딱 한 번 있었다. 통화 시간 41초.
-추석에 오냐.
-현장 있어서요. 다음에 갈게요.
-그래. 밥 잘 챙겨 먹고.
그게 다였다. 그 추석에 들어갔던 현장이 어디였는지는 기억도 안 났다. 어디였든 최 선배 이름으로 들어갔을 테고.
다음에 갈게요. 그 다음이 2년이었다.
일지 속 할아버지는 그 2년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퇴비장을 뒤집었다. 한 번만 내려왔으면 이 회색 흙을 봤을 거다. 봤어도 그땐 아무것도 못 했겠지만, 적어도 여기 혼자 두지는 않았을 텐데.
나는 공책을 든 채 뒤뜰로 나갔다. 해는 이미 졌고 하늘만 아직 파랬다.
뒤뜰 구석에 퇴비장이 있었다. 블록을 허리 높이로 쌓아 세 칸으로 나눈 자리다. 어릴 때 할아버지가 여기에 볏짚이며 깻대를 쌓고 쇠스랑으로 뒤집는 걸 옆에서 구경하곤 했다. 속을 파면 김이 올라왔고, 할아버지는 나더러 손을 넣어 보라고 했다. 뜨끈했다. 살아 있는 것처럼.
지금 세 칸에는 회색 덩어리가 쌓여 있다.
손을 넣어 봤다. 차가웠다. 볏짚이 볏짚 모양 그대로 굳어서, 몇 년이 지났는데도 하나도 안 삭아 있었다.
퇴비장 뒤집음. 부숙 안 됨.
이 차가운 걸 할아버지는 매일 뒤집었다.
퇴비장 옆이 닭장이었다. 나무 기둥에 철망을 두른 닭장인데, 문은 철사로 대충 묶여 있었다. 철망 너머로 들여다보니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바닥에 깃털 몇 개, 횃대에 말라붙은 닭똥, 엎어진 양은 모이통 하나.
닭 모이 줌.
마지막 장의 첫 줄이 그거였다.
"계십니까."
현관에서 이장 목소리가 났다.
나는 공책을 책상에 내려놓고 나갔다. 이장은 서류 봉투 하나랑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 마루 끝에 서 있었다.
"저녁 안 드셨죠? 집사람이 반찬 좀 싸 줬어요."
비닐봉지 안에는 김치랑 멸치볶음이랑 밥 한 통이 들어 있었다. 고시원 냉장고에 두고 온 무말랭이가 생각나서 고맙다는 말이 한 박자 늦게 나왔다.
이장은 마루에 걸터앉아 서류를 꺼냈다. 집 한 채, 밭 900평. 등기부 등본 복사본이었다.
"상속 등기는 군청 가서 하시면 되고요. 근데 이게,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장은 말끝을 흐렸다.
"이 동네 땅은 지금 값이 없어요. 오염 경작 주의 구역이라 사는 사람도 없고, 세금만 나가요. 몇몇 집은 아예 상속 포기하고 나갔어요."
"마을에 지금 몇 분 사세요?"
"스물셋. 제일 젊은 게 나고."
이장은 육십 대 중반이었다.
"군청에 정화 담당이 한 명 있긴 한데, 그 양반 혼자 군 전체를 맡아요. 예산이 일 년에 이천만 원인가. 서울 업체 한 번 부르면 반 년 치가 날아가니까 부를 수가 없지."
일 년에 이천만 원이면 우리 조가 서울에서 사흘 만에 치우는 물량 값이다.
"그래서 다들 그냥 사는 거예요. 텃밭 조금 하다가 안 되면 말고. 나이 들어서 어디 가기도 그렇고. 어르신은 그래도 끝까지 퇴비장을 뒤집으셨지. 닭도 끝까지 키우시고."
"닭이요?"
"뒤에 닭장 보셨죠? 한창땐 서른 마리 넘게 키우셨어요. 작년부터 하나둘 죽더니 다 갔어요. 마지막 몇 마리는 어르신 돌아가시고 우리가 보러 왔을 땐 이미 없더라고. 산짐승이 물어 갔는지."
이장은 서류를 봉투에 도로 넣어 내 쪽으로 밀었다.
"올라가실 거죠? 정리는 천천히 하셔도 돼요. 필요하면 내가 군청이랑 연락해 드릴게."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올라가서 뭘 하지. 서울에 있던 내 자리는 오늘 아침에 다른 이름으로 채워졌고, 고시원 월세는 다음 주에 빠져나간다.
"…며칠 있다 갈게요. 정리도 해야 되고."
"그래요, 그래요. 어르신 방도 좀 보시고."
이장이 돌아가고 나서 나는 툇마루에 앉아 이장 부인이 싸 준 밥을 먹었다. 멸치볶음이 짰다. 밥을 크게 한 숟갈 떠 넣어도 자꾸 짰다.
밥을 다 먹고 나서도 잠이 안 왔다.
부엌 찬장을 뒤져 할아버지가 쓰던 랜턴을 찾았다. 건전지가 다 닳아서 불빛이 누렜다. 그걸 들고 다시 밭으로 내려갔다.
낮에 살린 쟁반만 한 자리가 랜턴 불빛 아래 거무스름하게 보였다. 사방이 다 회색인데 거기만 색이 달라서, 꼭 회색 천에 떨어뜨린 커피 자국 같았다.
우연일 수도 있었다.
손끝에 굳어 있던 게 마침 그때 터져 나왔을 수도 있고, 스킬 창이 오류였을 수도 있다. 7년 동안 F급으로 살다 보면 좋은 일은 일단 의심부터 하게 된다. 좋은 일 뒤에는 대개 야간 근무가 따라왔으니까.
나는 그 갈색 자리 바로 옆, 회색 흙에 손바닥을 댔다.
[기초 정화]가 돌았다. 잔류물이 손바닥으로 빨려 들어오고 손목 안쪽이 뜨거워졌다. 여기까지는 7년 내내 똑같았다.
그리고 다시, 손끝에서 방향이 틀어졌다.
빨려 든 것이 흙으로 돌아 나간다. 그리고 흙이 그걸… 받는다. 손바닥 아래에서 무언가가 아주 천천히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끓던 냄비를 불에서 내려놓을 때처럼, 뜨거운 것이 조금씩 식으면서 아래로 아래로.
손을 떼자 쟁반만 한 갈색이 하나 더 생겨 있었다.
[부숙 — 숙련 2]
창이 떴다가 사라졌다.
나는 손을 들여다봤다. 손끝은 멀쩡하고, 하나도 안 아프다. 서울이었으면 지금쯤 손목부터 저려 와서 장갑을 벗지도 못했을 거다. 숙소에 들어가면 찬물에 손을 담그고 한참 앉아 있어야 했다.
밭은 900평이다. 한 번에 쟁반 하나, 한 번 하는 데 숨 몇 번 쉴 시간. 한 평을 채우려면 열 번 남짓 손을 대야 하니까, 900평이면 만 번이 넘는다. 하루에 몇백 번을 한다 쳐도 한 달은 꼬박 걸린다.
서울 현장이었으면 이 정도 면적은 조 하나가 이틀이면 끝냈다. 대신 끝나고 나면 손이 다 망가졌겠지.
머릿속으로 작업 순서를 짜고 있는 나 자신이 웃겼다. 7년 동안 몸에 밴 버릇이었다. 동선부터 그리고, 하루 물량을 나누고, 쉬는 시간을 계산한다. 쉬는 시간은 늘 계산만 하고 쓴 적은 없었지만.
한 번만 더 해 볼까.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였다.
덜컹.
뒤뜰 쪽이었다.
나는 랜턴을 들어 집 쪽을 비췄지만 불빛이 거기까지 닿지도 않았다. 아까 봤을 때 뒤뜰 닭장은 분명히 텅 비어 있었다. 철사로 묶어 둔 문에, 깃털 몇 개랑 엎어진 모이통뿐.
덜컹.
한 번 더.
바람은 불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