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사신 영애
여섯 번째 장례식 날에는 아침부터 비가 내렸고, 루미에르 대성당의 검은 대리석 바닥은 조문객들이 끌고 들어온 빗물과 진흙으로 얼룩져 촛불 아래서 희미하게 번들거렸다.
검은 베일과 검은 장갑, 검은 우산을 든 사람들은 관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가 돌아서는 순간마다 하나같이 같은 곳으로 시선을 흘렸다. 맨 앞줄 왼쪽 끝, 높은 창에서 떨어지는 잿빛 빛줄기가 겨우 닿는 자리에 앉은 젊은 여인에게로.
아델라이드 크로웰은 고개를 들지 않고도 그 시선들의 무게를 하나하나 셀 수 있었다. 여섯 번째쯤 되면 시선에도 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호기심은 목덜미를 가볍게 긁고 지나가고, 두려움은 어깨 위에 오래 머물며, 경멸은 등 한가운데로 곧장 꽂힌다.
"…저 영애래."
"여섯 번째래요. 세상에, 여섯 번째."
"노아 베르텔 경은 학자였잖아요. 사람 좋기로 소문난."
"사람 좋은 게 무슨 소용이에요. 저 집 영애랑 약혼하면 죽는다니까."
"사신 영애."
수군거림은 둥근 천장까지 올라갔다가 빗소리와 뒤섞여 다시 가라앉았다. 아델은 무릎 위에 포갠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젖은 레이스 장갑 아래로 왼손 약지가 조금 헐거웠는데, 사흘 전까지 반지가 끼워져 있던 자리였다. 노아가 고른 반지는 화려하지 않은 은반지였고, 그는 그것을 내밀면서 장신구보다 책을 고르는 쪽이 훨씬 자신 있다고 얼굴을 붉혔었다.
"아가씨."
곁에서 작고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린 시절 유모의 방 한 침대에 엎드려 동화책 한 권을 번갈아 읽어 주던 그 목소리 그대로, 비비는 이 성당 안에서 아델을 사신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추우시죠? 숄 하나 더 가져올까요?"
"아, 아니. 괜찮아."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사람들 앞에서는 늘 그랬다. 비비가 아델의 손등을 한 번 꼭 쥐었다가 놓았고, 장갑 너머로 전해진 온기는 짧았지만 분명했다.
조문을 마친 회색 프록코트의 중년 남자가 관 앞에서 돌아섰다. 베르텔 가문의 먼 친척이라고 소개받은 사람이었다. 아델은 고개를 숙인 채로, 대리석 위를 지나가는 그의 구두를 눈으로 따라갔다. 반들반들하게 닦인 검은 가죽 구두였는데, 뒤축 안쪽에만 붉은 진흙이 엷게 말라붙어 있었다.
루미에르에 붉은 흙은 없어. 남부 운하 공사장을 빼면.
친척이라는 사람이, 장례식에 오기 전에 공사장엔 왜 들렀을까.
아델은 그 의문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여섯 번의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그렇게 삼킨 의문이 이제는 공책 몇 장을 채울 만큼 쌓여 있었다.
장례 미사가 끝나자 사람들은 우산을 펼쳐 들고 성당 계단을 서둘러 내려갔다. 아델은 마지막 한 사람이 문을 나설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래야 아무도 그녀를 피해 길을 돌아가지 않아도 되었고, 여섯 번을 겪고 나서 깨달은 것은 그쪽이 서로에게 덜 수고롭다는 사실이었다.
텅 빈 성당 한가운데, 관 옆에는 노아의 어머니가 홀로 서 있었다. 아델은 촛농 냄새가 밴 공기를 가르며 천천히 다가갔다. 노부인이 고개를 돌렸고, 붉게 짓무른 눈가가 촛불에 비쳤다.
"베르텔 부인, 저, 저는…."
"알아요."
노부인의 대답은 짧았지만 날이 서 있지 않았다. 원망할 기운조차 다 써 버린, 지친 사람의 목소리였다.
"영애 탓이 아니라는 거, 알아요. 우리 노아가 그러더군요. 영애는 책 이야기를 할 때만 눈을 든다고."
아델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노부인이 검은 장갑을 낀 손을 내밀었고, 그 손바닥 위에는 모서리가 닳은 작은 가죽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금박이 반쯤 벗겨진 표지에 『북부 약초 도감』이라는 제목이 겨우 읽혔다.
"영애한테 빌려주기로 했다더군요. 그 애가 앓아눕기 전날 밤, 책상 위에 꺼내 두었어요."
책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아델은 그것을 가슴에 가만히 끌어안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노부인의 얼굴을 끝내 마주 보지 못한 채 그녀는 돌아서서 무거운 성당 문 쪽으로 걸었고, 걸음을 옮기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이미 다른 문장들이 차곡차곡 줄을 서고 있었다.
왕립 학술원에서 약초만 들여다보던 스물여섯 살의 연구원이, 앓아누운 지 이십이 일 만에 폐병으로 죽었어.
그 약초 도감을 책상 위에 꺼내 둔 채로.
성당 문 밖 처마 아래에서 비비가 우산을 받쳐 든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비에 젖은 앞치마 자락이 바람에 펄럭일 때마다 그녀는 그것을 한 손으로 꾹꾹 눌렀다.
"아가씨, 마차 대 놨어요! 아, 근데 바퀴가 진흙에 빠졌대요, 헤헷. 마부 아저씨가 지금 막 욕하면서 밀고 계세요."
"그, 그래."
"아이, 아가씨 손이 얼음장이잖아요. 얼른 타세요, 마차 안에 담요 깔아 놨어요."
비비는 우산을 아델 쪽으로 한껏 기울여 씌웠고, 그 바람에 제 어깨는 고스란히 비에 젖었다. 아델이 우산대를 밀어 돌려주려 하자 비비가 웃었다.
"시녀 옷은 원래 젖으라고 있는 거예요."
그러고는 우산대를 도로 기울여 아델을 마차 발판까지 데려가더니, 무릎 담요를 끌어다 발목까지 꼼꼼히 덮어 주었다.
같은 시각, 왕궁 서쪽 별관의 긴 회랑 끝에서 시온 아르덴은 국왕 집무실의 육중한 참나무 문을 마주한 채 속으로 셋을 세고 있었다. 하나, 둘, 셋을 센 뒤에야 그는 장갑 낀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게."
레오폴드 3세는 빗물이 흘러내리는 높은 창가에 등을 보인 채 서 있었다. 예순의 은발과 느긋하게 뒷짐 진 손은 비 내리는 정원을 감상하는 노인처럼 보였지만, 시온은 그 등이 방 안의 모든 것을 계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특무기사 시온 아르덴, 부르심을 받고…."
"알고 있네. 앉게."
시온은 앉지 않았다. 평민 출신 기사가 국왕 앞에서 먼저 의자를 끌어당기는 법은 없었고, 왕 역시 그것을 알면서 묻는 것이었다. 사람을 이런 식으로 재는 시험을 시온은 좋아하지 않았다.
"크로웰 공작가의 영애를 아는가."
"사교계에서 사신 영애라 불린다는 것 정도는 압니다, 전하."
"오늘이 여섯 번째 약혼자의 장례식이었네."
왕이 몸을 돌려 책상 위의 두툼한 서류철을 손끝으로 밀어 보냈다. 시온이 그것을 펼치자 첫 장에 붙은 작은 초상화가 촛불 아래 드러났다. 칠흑 같은 머리카락, 핏기 없는 얼굴, 바닥으로 내리깐 눈. 사냥개 앞에서 몸을 웅크린 토끼를 떠올리게 하는 인상이었다.
"낙마, 독, 화재, 실족, 결투, 병사. 여섯 명이 여섯 가지 방식으로 죽었네. 경비대는 우연이라 하고, 사교계는 저주라 하지. 자네 생각은 어떤가."
"여섯 번의 우연은 없습니다. 그리고 저주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입니다."
왕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주름이 잡혔다. 사냥터에서 마음에 드는 개를 고른 사람의 표정이었다.
"크로웰 공작이 일곱 번째 약혼 상대를 찾고 있네만, 나서는 사람이 없어. 당연한 일이지. 그래서 내가 한 사람을 추천하기로 했네."
시온은 서류철에서 고개를 들었다.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갑자기 크게 들렸다.
"…전하."
"자네일세, 아르덴. 일곱 번째 약혼자."
왕은 다시 창가로 돌아섰다.
"그 영애 곁에 붙어 있게. 여섯 명을 누가 죽였는지 알아내고, 그 영애가 범인이라면 체포할 증거를 가져오게. 임무는 그것뿐일세."
"영애가 범인이 아니라면 어찌합니까."
왕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럼 자네가 일곱 번째로 죽지 않으면 되네."
시온은 서류철을 덮었다. 내리깐 눈의 초상화가 가죽 표지 아래로 사라지는 순간, 그는 몇 해 전 증거가 모자라 놓쳐 버린 어느 귀족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남자도 법정에서는 저렇게 순한 눈을 하고 있었고, 판결이 끝나자 웃으면서 걸어 나갔다.
시온은 서류철을 옆구리에 끼고 허리를 굽힌 뒤 집무실을 물러 나왔고, 긴 회랑을 걸어 나가는 동안 장갑 낀 손가락으로 가죽 표지의 모서리를 몇 번이고 눌러 접었다.
크로웰 저택 동관 이 층, 벽난로에서 장작이 낮게 타닥거리는 방 안에서 아델은 문을 잠그고 젖은 장갑을 한 손가락씩 천천히 벗었다. 불은 비비가 미리 지펴 두었는지 방 안 공기가 알맞게 데워져 있었다.
책상 맨 아래 서랍의 바닥 판을 손톱 끝으로 들어 올리자, 그 밑에 숨겨 둔 검은 가죽 공책이 모습을 드러냈다. 첫 장을 펼치면 작고 단정한 그녀의 필체가 다섯 줄 이어져 있었다.
1. 에드윈 해롤드 백작 — 낙마, 말이 이유 없이 날뜀.
2. 루카 펠리시 — 독, 와인이라 했으나 잔에서 독 검출 안 됨.
3. 오웬 스톤 자작 — 서재 화재, 불길 시작 위치 이상.
4. 라파엘 데스몬드 — 시계탑 실족, 그날 시계탑 열쇠 행방 불명.
5. 율리안 크레인 남작 — 결투, 상대 검 날이 녹색으로 변색.
아델은 펜촉을 잉크병에 적신 뒤 다섯 번째 줄 아래에 한 줄을 더 보탰다.
6. 노아 베르텔 — 병사(폐병), 발병 후 이십이 일, 약초학자, 친척이라는 남자 구두에 운하 공사장 진흙.
여섯 줄이 나란히 놓인 페이지를 그녀는 한동안 내려다보았다. 처음 두 번까지는, 나도 정말 저주인 줄 알았지.
공책을 덮지 않은 채 노아의 책을 펼치자 책장 사이에 끼워져 있던 마른 꽃잎 하나가 무릎 위로 떨어졌다. 꽃잎이 머물러 있던 페이지에는 연필로 그은 가느다란 밑줄이 있었다.
백야초(白夜草). 소량을 장기 복용 시 폐에 물이 차는 증상. 폐병과 구분 어려움.
아델은 그 한 줄을 오래 바라보았다. 노아는 자신이 왜 아픈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죽기 전날 밤, 그녀에게 빌려주기로 한 책을 굳이 꺼내 두었다.
나한테 알려 주려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아델은 공책을 서랍에 넣고 바닥 판을 덮은 뒤, 노아의 책을 책장 빈자리에 꽂고 의자로 돌아가 무릎에 두 손을 포갰다. 숨 세 번 쉴 동안의 일이었다.
"아가씨, 저예요! 젖은 옷 갈아입으셔야죠."
비비는 마른 수건과 갈아입을 실내복을 한 아름 안고 들어와, 주방에서 얻어 왔다는 따끈한 감자 수프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아델의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꾹꾹 누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저택 어딘가에서 소문을 물어 올 때마다 짓는, 반짝이는 눈이었다.
"아까 공작 각하 집무실 앞을 지나는데요, 일곱 번째 약혼 상대가 정해졌대요. 왕실 기사래요! 국왕 전하께서 직접 추천하셨대요. 그리고요, 공작부인 마님께서 그 얘기 들으시고 엄청 기분 좋아 보이셨대요. 셀린 아가씨 혼삿길이 이제 좀 트이겠다고…."
비비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아차 싶은지 입을 다물었다. 아델은 괜찮다는 듯 작게 고개를 저었다. 계모의 기쁨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사신 영애가 하루라도 빨리 이 집을 떠나 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저택 안에도 적지 않았고, 이졸데 공작부인은 그 맨 앞줄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수건이 머리카락 사이를 오가는 동안, 아델은 수프 그릇의 온기를 손바닥으로 감싼 채 방금 들은 이름을 곱씹었다. 여섯 명이 죽는 동안 이 집에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국왕이, 일곱 번째는 직접 골랐어.
그렇다면 그 기사는 나와 결혼하러 오는 게 아니야. 나를 잡으러 오는 거지.
"그, 그분은… 어떤 분일까."
"잘생겼대요, 엄청!"
비비가 수건을 든 채로 깔깔 웃었고, 아델도 따라서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비비가 빈 수프 그릇을 챙겨 나가고 복도의 발소리가 계단 아래로 사라지자, 아델은 다시 문을 잠그고 서랍의 바닥 판을 들어 올렸다. 그녀는 여섯 번째 줄 아래에 '7.'이라고만 적고, 잉크가 마를 때까지 그 뒤를 비워 둔 채 펜을 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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