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하인의 귀
진가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 소식이 가장 먼저 닿는 곳은 장씨 아주머니의 부뚜막이었다. 마부가 장터에서 주워 온 이야기도, 침모가 안방에서 엿들은 이야기도, 문지기가 지나가는 행인에게서 얻어들은 이야기도 모두 저녁 무렵이면 그 부뚜막 앞에 모여 한 솥 국물처럼 한데 섞였다.
전생의 소한은 그것을 늦게 알았다. 객으로 온 무인의 마부가 술자리에서 흘린 한마디나 남의 집 하녀가 우물가에서 내뱉은 푸념 한 자락이 열흘 뒤 강호를 뒤흔드는 사건의 첫머리였던 일을 여러 번 겪고 나서야, 강호의 큰일이 주인의 귀보다 하인들의 귀에 먼저 닿는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주인을 모신 지 스무 해가 지난 뒤였다. 그로부터 열다섯 해에 걸쳐 소한은 강남 일대의 하인들과 줄을 엮었고, 그 줄은 주인이 천하제일검이 된 뒤 몇 번이나 주인의 목숨을 구하였다.
그 줄이 지금은 하나도 없었다. 열다섯 살의 소한은 그저 장씨 아주머니가 밥을 더 퍼 주는 말라깽이였을 뿐이었다.
마보로 선 지 닷새째 되던 날 아침, 소한은 장독대 앞에서 쪼그려 앉은 장씨 아주머니를 보았다. 아주머니는 독 뚜껑을 하나씩 열어 안을 들여다보며 혀를 차고 있었는데, 그 얼굴빛은 장맛을 보는 사람보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의 것에 가까웠다.
"아주머니, 무얼 찾으십니까."
"아이고, 말라깽이냐. 찾긴 뭘 찾아. 아무것도 아니다."
찾는 것이 없다는 사람이 독 뚜껑을 열 개째 열고 있었다. 소한은 그 모양을 잠시 바라보다가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전생에서 이맘때, 장씨 아주머니가 사흘 동안 넋이 나간 얼굴로 부엌을 돌아다닌 일이 있었다. 돌아가신 바깥양반이 혼례 때 해 준 은비녀를 잃어버렸다는 것이었다. 비녀는 그해 가을 김장 독을 비울 때 맨 끝 간장독 밑바닥 받침돌 틈에서 나왔다. 독을 옮기다 머리에서 빠진 것을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그 반년 동안 아주머니는 그것이 도둑맞은 것이라 여겨, 새로 들어온 어린 하녀 하나를 끝내 내보냈다.
소한은 그 하녀의 이름도 기억하고 있었다. 내쫓긴 뒤 어디로 갔는지는 알지 못하였다.
"혹 비녀를 찾으십니까."
장씨 아주머니의 손이 독 뚜껑 위에서 멈추었다.
"……네가 그걸 어찌 아느냐."
"요 며칠 머리를 끈으로만 묶고 계시기에 짐작하였습니다. 지난달 간장독을 옮길 때 저도 거들었는데, 그때 아주머니께서 고개를 많이 숙이셨던 것이 생각나서요."
소한은 맨 끝 간장독 앞에 가서 무릎을 꿇었다. 독을 받친 납작한 돌 두 개 사이에 손가락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틈이 있었다. 그 틈에 손가락을 넣어 휘젓자, 차갑고 가느다란 것이 손끝에 걸렸다. 꺼내어 보니 흙과 간장 얼룩에 절어 거무스름해진 은비녀였다.
장씨 아주머니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녀를 받아 든 손이 가늘게 떨렸고, 아주머니는 그것을 앞치마 자락으로 몇 번이고 문질러 닦았다. 이윽고 고개를 든 아주머니의 눈가가 붉었으나, 입에서 나온 말은 여느 때처럼 퉁명스러웠다.
"……말라깽이 주제에 눈은 밝구나. 오늘 저녁에 고기 두 점이다."
"한 점이면 됩니다."
"내가 두 점이라면 두 점이지, 어디서 말대꾸냐."
소한은 허리를 굽히고 물러났다. 장씨 아주머니는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갚는 사람이었고, 그 갚는 방식이란 대개 부뚜막 앞에 모인 소문 가운데 쓸 만한 것을 슬쩍 골라 귀에 넣어 주는 것이었다. 전생에서 그 귀를 얻기까지는 십 년이 걸렸다.
마부 노삼의 입은 장씨 아주머니와는 다른 열쇠로 열렸다.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없이 말 등만 쓸다가도 술이 들어가면 장터 소식을 줄줄이 풀어놓았는데, 그것도 소흥(紹興)에서 올라온 황주라야 했고, 소한의 한 달 품삯으로는 그 황주 반 병을 사기도 빠듯하였다.
열다섯 살 하인의 품삯은 쥐꼬리만 하였고, 그나마 절반은 왕 노인이 장가 밑천이라며 따로 모아 두었다. 전생의 소한은 그 돈을 마흔이 넘도록 한 푼도 찾아 쓰지 않았는데, 장가를 들 일이 끝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생에서 처음으로 그 돈에 손을 대는 까닭이 마부에게 술을 사 주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면 왕 노인은 지팡이를 들 것이 분명하였다. 그래서 소한은 술 대신 다른 것을 주기로 하였다.
마구간 뒤편, 노삼이 수레바퀴에 기름을 먹이고 있는 곳에 소한은 물동이를 지고 지나가다 걸음을 멈추었다. 진가장의 수레는 두 대였는데, 그중 큰 것이 다음 달 초 주인 내외를 모시고 소주의 처가로 떠날 수레였다. 전생에서 그 수레는 소주로 가는 길 위 가흥(嘉興) 근방에서 왼쪽 굴대가 부러졌다. 다친 사람은 없었으나 주인 내외는 비 오는 길가에서 반나절을 기다려야 했고, 노삼은 돌아와서 왕 노인에게 종아리를 맞았다. 그 뒤로 노삼은 반년 동안 술을 끊었다가 도로 마셨다.
"노삼 어른, 그 큰 수레의 왼쪽 굴대 말입니다."
노삼이 기름 솔을 든 채 고개만 돌렸다. 말없이 쳐다보는 눈이 왜 하인 놈이 남의 일에 참견이냐고 묻고 있었다.
"지난번에 수레가 마당에 들어올 때 왼쪽 바퀴에서 삐걱 소리가 났습니다. 다른 소리하고 달랐습니다. 마른 나무가 갈라질 때 나는 소리였습니다."
거짓말이었다.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은 없었다. 다만 그 굴대가 보름 남짓 뒤에 부러진다는 것을 알 뿐이었다.
노삼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기름 솔을 내려놓고 큰 수레 아래로 기어 들어갔다. 한참 동안 수레 밑에서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윽고 기어 나온 노삼의 얼굴빛이 달라져 있었다. 그의 손바닥 위에는 굴대에서 떨어져 나온 손가락 마디만 한 나뭇조각이 놓여 있었다. 안쪽으로 금이 깊게 가 있었다.
"……이대로 소주 갔으면."
노삼은 그 말을 끝맺지 않았다. 소한도 끝맺어 주지 않았다.
그날 저녁, 노삼은 말없이 행랑채 앞에 와서 소한에게 볶은 땅콩 한 봉지를 내밀었다. 그리고 돌아서며 한마디를 던졌다.
"장터에 갈 일 있으면 말해라. 태워 주마."
소한은 땅콩 봉지를 받아 든 채, 노삼의 등이 마구간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허리를 펴지 않았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나는 동안 소한은 같은 일을 몇 번 더 하였다. 침모의 바느질 바구니에서 사라진 은골무가 어디에 굴러들어 갔는지 일러 주었고, 문지기 영감이 해마다 이맘때 허리를 삐는 까닭이 대문 빗장을 너무 낮게 걸어 둔 탓이라는 것을 넌지시 귀띔하였으며, 소복이 장씨 아주머니 몰래 꿀단지에 손을 댄 일을 아주머니보다 먼저 알아채고 단지를 원래 자리에 돌려놓아 주었다.
모두 전생에서 이 집에 일어났던 자잘한 일들이었다. 서른다섯 해를 한 집에서 산 하인이라면 누구나 머릿속에 그런 일들을 한 보따리씩 쌓아 두고 있을 것이었으나, 그 보따리를 열다섯 살의 몸으로 열어 보는 사람은 소한 하나뿐이었다.
물론 대가는 받았다. 침모는 해진 옷을 공짜로 기워 주었고, 문지기는 소한이 밤에 행랑채를 드나드는 것을 못 본 척하기 시작하였으며, 소복은 그 뒤로 소한이 시키는 심부름이라면 무엇이든 군말 없이 하였다. 꿀단지 일을 아주머니에게 이르지 않는 값이었다.
"한아, 너 요새 진짜 이상하다. 어떻게 다 아냐?"
"눈이 있으면 보이는 게다."
"나도 눈 있는데."
"너는 먹을 것만 보지 않느냐."
소복은 잠시 생각하더니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반박할 말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장씨 아주머니가 첫 소문을 소한의 귀에 넣어 준 것은 그달 그믐 무렵이었다.
저녁 설거지가 끝나고 하인들이 하나둘 흩어진 부엌에서, 아주머니는 아궁이에 남은 불씨를 재로 덮으며 혼잣말처럼 이야기를 꺼냈다.
"다음 달 보름께 손님이 오신단다. 안방마님 친정 쪽 사촌 아우님 되시는 분."
"유 대협 말씀이십니까."
"그래, 무림맹에서 높은 자리에 계신다는 그 양반. 그 양반 오시면 내가 사흘 동안 부엌에서 못 나온다. 입이 까다로운 건 아닌데, 하인들 이름을 하나하나 다 불러 주시니 상을 대충 차릴 수가 있어야지. 작년에 오셨을 적엔 나더러 '장 아주머니의 동파육이 소주 본가보다 낫다'고 하시더라."
아주머니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자랑이 묻어 있었다. 소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청송이라는 사람은 전생에서도 그러하였다. 진가장에 올 때마다 하인들에게 작은 선물을 돌렸고, 주방장의 음식을 칭찬하였으며, 마부의 말에게까지 이름을 물었다.
"그리고 하나 더."
아주머니가 목소리를 낮추고 부엌 문 쪽을 돌아보았는데, 바깥에서 소복이 장작을 부리는 소리가 나자 그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입을 다물고 기다렸다.
"노삼이 그러는데, 요즘 항주 북문 밖 흑풍방(黑風幫) 놈들이 부쩍 설친단다. 방주 우괴(牛魁)라는 작자가 새로 부방주를 들였는데, 그게 독을 쓰는 놈이라는 게야. 장터 약재상 둘이 벌써 문을 닫았대. 무슨 약재를 그리 사 모으는지, 독 만드는 놈이 약재상 문을 닫게 했으면 볼 장 다 본 게지."
소한의 손이 아궁이 앞에서 멈추었다.
흑풍방이었다. 전생에서 항주의 불이 꺼진 뒤 관아가 범인으로 지목한 것이 바로 그 흑풍방이었다. 방화범 셋이 잡혀 목이 잘렸고, 주인은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흑풍방을 뿌리째 뽑았다. 그 일이 주인을 피에 젖은 사람으로 만든 첫걸음이었다. 그런데 그 흑풍방이 화재보다 세 해나 앞서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독을 쓰는 부방주라는 자의 이름은 전생에서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관아가 목을 친 셋 가운데에도 그런 자는 없었다.
"말라깽이, 너 또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느냐."
"아닙니다. 불씨가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아서요."
소한은 부지깽이로 재를 한 번 더 눌렀다. 불씨는 이미 죽어 있었다.
그날 밤에도 소한은 바위터 구석에서 마보를 섰다. 보름 남짓 전에는 열 호흡을 버티지 못하던 다리가 이제는 백 호흡을 넘기고 있었다. 허벅지가 떨리기 시작하면 그는 그날 들은 소문들을 하나씩 늘어놓았으니, 흑풍방의 새 부방주와 문 닫은 약재상 둘, 그리고 보름 뒤에 올 손님이었다. 떨림을 잊는 데는 그만한 것이 없었다.
손님이 오면 부엌과 행랑이 사흘 동안 북새통이 될 것이니, 밤에 빠져나오기는 오히려 한결 수월할 것이었다. 그보다 독을 쓴다는 자가 무슨 약재를 사 모으는지가 더 마음에 걸렸다. 불을 내는 데 독은 쓸모가 없었으니, 그자가 셈하는 쓸모는 불 말고 다른 데 있을 것이었다.
소한은 다리가 무너지기 직전까지 버티다가 바위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땀이 식으며 몸이 떨렸다.
숨이 고르게 돌아오자, 그는 다시 일어나 무릎을 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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