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야간조
새벽 두 시 십사 분. 한빛로지스 이천 3센터 B동.
차정우는 7번 랙 앞에 서서 한숨을 쉬었다.
"보람 씨."
"네, 반장님!"
"이거 누가 넣었어요?"
신입 알바 민보람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들어온 지 3주째인데 아직도 스캐너를 거꾸로 드는 날이 있었다. 정우가 가리킨 랙에는 생수 2리터 묶음 위에 계란 한 판이 올라가 있었다.
"…제가요."
"계란 위에 생수 올리면 안 되는 건 알죠?"
"네."
"근데 생수 위에 계란 올리면 안 되는 것도 알아야 돼요."
"왜요? 계란이 위에 있으면 안 깨지잖아요."
"계란은 B구역이에요. 냉장. 여기 상온."
"…아."
정우는 계란 판을 들어 카트에 옮겼다.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7년이었다. 7년 동안 밤마다 이 센터의 물건들을 제자리에 넣었다. 랙 번호만 들어도 거기 뭐가 있는지 알았다. 7-3-B, 생수. 7-3-C, 탄산수. 7-4-A, 원래는 컵라면인데 지난주부터 본사가 시리얼로 바꿔서 다들 헷갈리는 칸.
"반장님 진짜 다 외우셨어요?"
"외운 게 아니라 그냥 알아요."
"그게 외운 거잖아요."
"…아무튼 계란은 B구역."
보람이 카트를 밀고 사라졌다. 정우는 귀에 꽂아 둔 볼펜을 빼서 작업 일지에 체크했다. 02:16, 7번 랙 적재 오류 1건 수정.
정리 안 된 걸 보면 몸이 근질거렸다. 병이라면 병이었고, 그 덕에 정규직은 못 돼도 반장 소리는 들었다. 정우는 통로로 삐져나온 빈 팔레트 모서리를 발끝으로 밀어 노란 선에 맞췄다.
새벽 세 시. 휴게실.
"정우야, 이거 묵어라."
조만식 기사가 컵라면 하나를 내밀었다. 다른 손에 하나가 더 들려 있었다. 만식은 편의점에 가면 컵라면을 꼭 두 개씩 사 와서 하나는 남의 손에 쥐여 줬다.
"감사합니다, 형님."
"됐다 마."
옆자리에서 라지브가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6년 전 네팔에서 왔다는 라지브의 한국어는 교과서처럼 또박또박했고, 존댓말만큼은 정우보다 꼬박꼬박 챙겼다. 라지브는 만식의 컵라면을 보더니 눈썹을 모았다.
"형님, 내일 건강검진 날입니다. 라면은 안 좋습니다."
"쉰여덟 먹고 검진이 뭐 대수라꼬. 이십 년을 이거 묵고 지게차 탔다."
"그래서 검진합니다."
만식은 대꾸하지 않고 뚜껑을 뜯었다. 라지브가 정우 쪽으로 도시락을 밀었다.
"반장님, 오늘 김치볶음밥 제가 했습니다. 드실래… 드시겠습니까?"
"라지브 씨 김치볶음밥은 사장님 김치볶음밥보다 맛있어서 안 돼요. 중독돼요."
"하하. 반장님은 말이 달아요. 아니, 답니다."
"…그건 칭찬이죠?"
"칭찬입니다. 아마."
만식이 컵라면을 후루룩 들이켰다. 보람이 휴게실 문을 열고 들어오며 핸드폰을 흔들었다.
"반장님! 이거 보셨어요? 하늘에 오로라 떴대요!"
"이천에?"
"전국에요! SNS 난리 났어요! 실트 1위부터 10위까지 다 오로라예요! 지금 라이브도 엄청 켜졌어요!"
정우는 컵라면을 들고 휴게실 창가로 갔다. 창밖은 센터 주차장이었다. 가로등 아래 트럭 세 대가 서 있었고, 그 위로 하늘이 보였다.
하늘이 초록색이었다.
오로라라고 하기엔 이상했다. 오로라는 커튼처럼 흔들린다는데, 저건 자로 그은 듯 반듯하게 멈춰 있었다. 정우는 저런 걸 매일 밤 봤다.
모니터 화면.
하늘 한가운데에 모서리가 둥근 거대한 직사각형이 떠 있었다. 창(窓)이었다.
"…저거."
"반장님도 보이세요? 완전 게임 UI 같지 않아요? 아니 진짜 무슨 게임 출시 이벤트인가?"
보람이 흥분해서 말을 쏟아냈다. 만식이 컵라면을 내려놓았다. 라지브가 숟가락을 든 채 굳었다.
하늘의 창에 글자가 떠올랐다.
【시스템이 강림했습니다.】
정우 눈에는 한글로 보였다.
"…네팔어입니다."
라지브가 중얼거렸다. 보람이 "네? 한글인데요?" 하고 되물었다. 라지브는 대답 대신 창을 한 번 더 올려다봤다. 그 손에서 숟가락이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컵라면 용기가 기울어져 국물이 손등으로 흘렀다. 정우는 뜨거운 줄도 모르고 창을 올려다보다가, 한참 뒤에야 용기를 창틀에 내려놓았다.
센터 전체에 소리가 울렸다.
화재 경보 벨과는 음이 달랐다. 스피커에서, 천장에서, 휴대폰에서, 지게차 계기판에서, 소리 나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같은 소리가 났다.
띵동.
【지구는 현재 [정리 대상]으로 분류되었습니다.】
【평가 기간이 시작됩니다. 남은 기간: 120일】
【평가 기간 동안 생존자에게 고유 스킬을 지급합니다.】
"평가? 정리 대상? 이게 무슨…."
방금까지 오로라 얘기에 들떠 있던 보람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밖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정우는 창가에서 고개를 돌렸다. 센터 주차장 한가운데, 아스팔트 위에 금이 가 있었다. 금이 벌어지면서 푸른빛이 새어 나왔고, 그 빛 안에서 무언가가 기어 나왔다.
개였다. 다만 송아지만 했고, 털 한 올 없는 회색 몸통에 눈이 세 개 박혀 있었다.
"…저거 뭐야."
만식이 컵라면 용기를 손에 쥔 채 일어나 창밖을 노려보았다.
세 눈 달린 개가 고개를 들었다. 센터 쪽을 보았다. 정확히 휴게실 창문을.
킁, 킁.
냄새를 맡고 있었다.
"다들 창에서 떨어져요."
정우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랙 앞에서 보람에게 "계란은 B구역"이라고 말할 때와 같은 목소리였다. 7년 동안 이 센터 사람들은 그 목소리를 들으면 움직였고, 지금도 그랬다.
"보람 씨, 휴게실 불 꺼요. 라지브 씨, 문 잠그고. 형님은…."
"센터장한테 전화한다."
"네."
만식이 핸드폰을 들었다. 신호가 갔다. 한 번, 두 번.
"…어, 센터장님. 지금 주차장에…. 예? 예? …예."
만식이 전화를 끊었다. 표정이 이상했다.
"뭐래요?"
"자기 지금 차 타고 나간대."
"어디로요?"
"집에."
"…센터장님 차, 주차장에 있잖아요."
정우와 만식이 동시에 창밖을 보았다.
주차장 끝, 센터장 전용 주차 칸에서 회색 세단의 헤드라이트가 켜졌다. 시동 소리. 세단이 후진하더니, 세 눈 달린 개를 피해 크게 원을 그리며 출구 쪽으로 질주했다.
개가 고개를 돌렸다. 세단을 보았다.
그리고 뛰었다.
"…센터장님."
라지브가 조용히 말했다.
"한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도망가는 놈이 먼저 잡힌다."
"그런 속담 없어요."
"없습니까?"
"…근데 맞는 말이네요."
세단이 출구를 빠져나갔다. 개가 쫓아갔다. 멀어지는 경적 소리.
휴게실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띵동.
【생존자 확인. 고유 스킬을 지급합니다.】
창은 이번에 정우의 눈앞, 허공에 떠 있었다. 하늘의 창을 손바닥만 하게 줄여 놓은 것 같았다.
먼저 소리를 낸 건 보람의 핸드폰이었다. 오로라를 보겠다고 켜 둔 라이브 방송이었다. 어느 아파트 옥상에서 하늘을 비추던 카메라가 휙 돌아가더니, 진행자의 손바닥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손바닥 위에서 불이 일렁였다.
"[화염]! 나 [화염] 나왔어! 이거 진짜야! 뜨거워, 이거 진짜 뜨거워!"
채팅창이 미친 듯이 올라갔다.
[검술] 나옴 ㅋㅋㅋ 빗자루 들었는데 몸이 혼자 자세 잡음
나 [치유]인데 아까 베인 손가락 방금 붙었음 ㄹㅇ
ㅁㅊ 나도 [화염] 방송 접고 불 끄러 감
보람이 핸드폰과 자기 앞의 창을 번갈아 보더니 소리를 질렀다.
"헐! 헐! 저 [분석]이래요! 반장님 저 [분석]! 이거 완전 정보 계열 아니에요? 와 미쳤다!"
만식이 자기 앞의 창을 노려보았다. "…[지게차]?"
라지브가 정중하게 읽었다. "[조리]. 요리를 하라는 뜻입니까? 지금?"
정우는 자기 창을 보았다.
【고유 스킬: [정리정돈] (Lv.1)】
【설명: 시야 내 물건을 분류하고 적재합니다.】
"…."
"반장님 뭐 나왔어요? 뭐예요? 전투 계열? 아니면…."
보람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창을 보았다. 3초간 침묵했다. 보람의 손에 들린 핸드폰 속에서는 아직도 누군가의 손바닥 위로 불길이 솟고 있었다.
"…정리정돈?"
"네."
"그게 다예요?"
"네."
"반장님."
"네."
"그거 쓰레기 스킬이에요."
정우는 창을 내려다보았다. 정리정돈. 시야 내 물건을 분류하고 적재합니다.
7년 동안 밤마다 하던 일이었다.
밖에서 무언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개 짖는 소리와 비슷했지만 목이 더 깊었다. 주차장에 금이 하나 더 벌어지고 있었고, 그 옆에서 또 하나가 갈라졌다.
정우는 귀에 꽂힌 볼펜을 빼서 손에 쥐었다.
그리고 휴게실 바닥을 보았다. 라지브가 떨어뜨린 숟가락과 보람이 던져 둔 가방 사이로, 만식이 내려놓다 엎은 컵라면 용기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몸이 근질거렸다.
"…일단 써 볼게요."
정우가 중얼거렸다.
【[정리정돈]을 사용합니다.】
바닥의 물건들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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