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로케이션 지정
숟가락이 날아갔다.
정확히는 미끄러졌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라지브의 숟가락이 공중으로 붕 뜨더니, 휴게실 싱크대 옆 수저통으로 쏙 들어갔다. 손잡이가 아래로. 다른 숟가락들과 방향을 맞춰서.
보람의 가방이 그 뒤를 따랐다. 바닥에서 의자 등받이로. 지퍼가 위로 가게.
만식의 컵라면 용기는 분리수거함으로 갔다. 국물은 싱크대에 따로 버려졌다. 용기는 플라스틱 칸. 뚜껑은 종이 칸.
3초.
휴게실 바닥이 깨끗해졌다.
"…."
"…."
"…."
넷이 동시에 침묵했다.
【[정리정돈] 사용 완료.】
【분류 3건, 적재 3건.】
"반장님."
보람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방금 그거 분리수거까지 한 거예요?"
"…그런 것 같네요."
"쓰레기 스킬이 쓰레기를 분리수거했어요."
"보람 씨."
"죄송합니다."
라지브가 수저통으로 다가가 숟가락을 꺼내 들었다.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평범한 숟가락이었다.
"반장님, 이 스킬 아주 깨끗합니다. 한국 속담에 있습니다. 정리 잘하는 놈이 떡 하나 더 준다."
"그런 속담 없어요."
"없습니까?"
"근데 있었으면 좋겠네요."
만식은 말없이 분리수거함을 내려다보았다. 컵라면 뚜껑이 종이 칸에 반듯하게 들어가 있었다. 만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깔끔하네."
만식은 그 말만 하고 분리수거함 뚜껑을 덮었다. 보람이 정우를 보며 입 모양으로 물었다. 방금 칭찬이에요?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서 또 울음소리가 났다.
이번엔 가까웠다.
정우는 휴게실 창가로 다가갔다. 몸을 낮추고, 블라인드 틈으로 주차장을 내다봤다.
금이 다섯 개로 늘어 있었다. 주차장 아스팔트가 거미줄처럼 갈라져 있었다. 그 틈마다 푸른빛. 그리고 그 빛 사이로, 세 눈 달린 개들이 어슬렁거렸다.
다섯 마리.
"형님, 센터장님 차 쫓아간 놈 돌아왔어요?"
"모르겠다. 다 똑같이 생겨서."
개들은 B동 출고장 쪽으로 코를 박고 있었다. 셔터 앞. 출고 대기 중인 팔레트들이 줄지어 서 있는 곳. 냉장 탑차 두 대가 후진 주차된 채로 시동이 꺼져 있었다.
"냄새 맡는 거예요."
보람이 정우 옆에 붙어서 속삭였다.
"제 [분석]으로 봤는데요. 쟤네 이름이 '세눈들개'예요. 등급 F. 후각 특화. 근데 반장님, 그 출고장 셔터…."
"알아요."
정우도 알고 있었다. 출고장 3번 셔터는 2주 전부터 고장이었다. 시설팀에 수리 요청서를 세 번 넣었지만 답이 없었고, 지금 3번 셔터는 바닥에서 50센티 떠 있었다.
개 한 마리가 그 틈에 코를 넣었다.
킁, 킁.
"…저거 들어오는데요."
"들어오네요."
"반장님 왜 그렇게 침착하세요?!"
"안 침착해요. 원래 얼굴이 이래요."
정우는 머리를 굴렸다.
출고장에서 휴게실까지 직선 40미터. 중간에 B동 랙 구역. 랙 사이 통로는 폭 3미터. 문은 휴게실 문 하나. 잠금장치는 손잡이 버튼식. 개가 몸으로 밀면 버틸 리가 없다.
막아야 했다. 셔터 틈을.
뭘로.
정우의 시선이 출고장 앞 팔레트로 갔다. 생수 2리터 묶음이 한 팔레트에 80개. 한 묶음이 12킬로니까 팔레트 하나에 1톤 가까이 나갔다.
그게 지금 셔터 바로 앞에 있었다. 3미터 거리.
"보람 씨."
"네?"
"아까 그 스킬, 어디까지 되는지 봤어요?"
"설명창에는 '시야 내 물건을 분류하고 적재'라고만…."
"분류 기준은요?"
"네?"
"뭘 기준으로 분류하냐고요. 아까 숟가락은 수저통으로 갔잖아요. 그건 누가 정한 거예요?"
보람이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정우는 블라인드 틈으로 출고장을 다시 봤다. 셔터와 팔레트, 그리고 그 틈에 코를 박은 개.
물류센터에서 물건이 갈 곳을 정하는 건 로케이션이다. 그리고 B동 야간조 로케이션을 정하는 사람은.
"…나네."
정우가 중얼거렸다.
7년 동안 B동 야간조 로케이션은 정우가 짰다. 생수는 7-3-B, 탄산수는 7-3-C, 계란은 B구역 냉장. 센터장도 시설팀도 몰랐다. 그냥 정우가 정하면 그게 위치였다.
그렇다면.
정우는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출고장 셔터를 노려보며, 평소 무전기에 대고 말하던 톤 그대로 말했다.
"지금부터 생수 2리터 로케이션 변경. 3번 셔터 앞 바닥."
【로케이션 변경 요청을 확인했습니다.】
【[정리정돈]을 사용합니다.】
팔레트가 움직였다.
정확히는 생수 묶음들이. 80개의 생수 묶음이 팔레트에서 하나씩 떠올랐다. 줄을 섰다. 공중에서 3번 셔터 쪽으로 미끄러졌다. 그리고 셔터 앞 바닥에 차곡차곡 쌓였다.
무거운 것부터 밑에 까는, 평소 적재 기준 그대로였다.
틈에 코를 박고 있던 개가 깨갱 소리를 냈다. 생수 묶음 하나가 코끝에 떨어졌다. 개가 물러났다. 그 자리에 다음 묶음이 내려앉았다. 그다음. 그다음.
10초 만에 셔터 앞에 생수 벽이 생겼다.
높이 1미터 50센티, 폭 4미터짜리 1톤의 벽이었다.
셔터 틈이 완전히 막혔다.
"…."
휴게실에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분류 80건, 적재 80건.】
【[정리정돈] 숙련도가 상승했습니다.】
"…반장님."
보람이 거의 속삭이듯 정우를 불렀다. 생수 벽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방금 로케이션을 말로 바꾸신 거예요?"
"원래 말로 바꿔요. 무전기로."
"그게 아니라…!"
보람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거 쓰레기 스킬 아니에요. 반장님이 정한 위치로 물건을 보내는 거예요. 위치를 반장님이 정하면, 그게 어디든요. 이거 완전 사기…."
"보람 씨, 목소리."
"죄송합니다."
밖에서 개들이 생수 벽을 긁는 소리가 났다. 박박. 박박. 1톤짜리 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만식이 아무 말 없이 정우의 어깨를 툭 쳤다.
라지브는 두 손을 모았다.
"반장님이 우리 반장님이어서 다행입니다."
"그것도 속담이에요?"
"아닙니다. 진심입니다."
정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볼펜을 귀에 꽂았다. 손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들키지 않으려고 주머니에 넣었다.
새벽 네 시 오십 분.
개들은 생수 벽을 포기하고 주차장 저편으로 흩어졌다. 금에서 새로 기어 나오는 놈은 없었다. 하늘의 초록 창은 그대로였다.
넷은 휴게실 바닥에 둘러앉아 있었다.
라지브가 비상용 컵라면을 하나씩 돌렸다. 보람은 핸드폰으로 뉴스를 넘겼다. 전국이 난리였다. 서울, 부산, 대구. 금이 열린 곳마다 괴물. 정부 발표는 아직 없었다. 사망자 수는 '집계 중'.
"반장님, 이것 좀 보세요."
보람이 화면을 내밀었다. 불길이며 칼날이 번쩍이는 인증 영상들 사이로, 보람이 일부러 찾아 둔 글이 하나 있었다.
[정리정돈] 받았는데 이거 뭐임? 방 청소해 주는 스킬?
└ ㅋㅋㅋㅋ 쓰레기 스킬 당첨
└ 엄마가 좋아하겠네
└ 차라리 아무것도 안 받는 게 나음
정우는 화면을 내려다봤다. 댓글이 계속 달리고 있었다.
"…저 말고도 있네요. [정리정돈]."
"반장님 말고 다 그냥 방 청소에 쓰고 있어요."
"그럴 수도 있죠."
"아니 근데 반장님은 생수 1톤을…."
"그건 제가 로케이션을 알아서 그래요."
정우는 컵라면 뚜껑을 열었다. 김이 올라왔다. 방 청소를 하는 사람은 자기 방 물건 자리만 알 것이다. 정우는 B동 랙 열두 개, 칸마다 뭐가 들어가야 하는지 알았다.
보람이 그 얼굴을 한참 보더니 공책을 꺼내 뭔가를 적었다.
"보람 씨, 재고 리스트 좀 띄워 봐요. B동 전체."
"지금요?"
"지금요. 정부 발표 기다리다가 굶어요."
보람이 노트북을 열었다. 재고 관리 프로그램은 아직 살아 있었다. 정우는 화면을 위에서 아래로 훑었다.
생수 2리터, 3,200묶음. 컵라면, 140박스. 즉석밥, 90박스. 통조림 참치, 60박스. 건전지, 손전등, 부탄가스. 응급 키트 12상자, 반품 대기 중.
"형님, 이거 다 얼마나 버텨요?"
"우리 넷이면 1년."
만식이 대답했다. 계산이 빨랐다. 20년 동안 팔레트 무게를 눈대중으로 잰 사람이었다.
"주민들 오면요?"
"…몇 명이냐에 따라 다르지."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휴게실 벽에 붙은 B동 도면을 봤다. 랙 번호 1번부터 12번. 출고장, 입고장, 냉장 구역.
머릿속에서 로케이션이 다시 짜이기 시작했다. 물과 식량은 휴게실 옆 1번 랙. 응급 키트는 휴게실 안. 부탄가스는 불 안 붙는 쪽 끝. 셔터 앞은 무거운 것.
생존용 로케이션.
"라지브 씨, 1번 랙 비워 둘 수 있어요?"
"네, 됩니다. 뭐 넣습니까?"
"우리가 살 거요."
라지브가 잠깐 정우를 보더니 웃었다. 진짜 웃음이었다.
그때 정우의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 '김 반장'이 떴다. 주간조 반장이자, 7년 전 신입이던 정우에게 랙 번호부터 가르친 사수였다.
새벽 네 시 오십이 분. 주간조 출근은 여섯 시였다. 김 반장은 늘 한 시간 일찍 왔다. 오늘은 그보다 더 일찍.
정우는 전화를 받았다.
"반장님."
"정우야, 나다."
김 반장의 목소리 뒤로 바람 소리가 들렸다. 엔진 소리. 그리고 그 너머로, 무언가 우는 소리.
"나 지금 센터 정문 앞인데."
김 반장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게 다 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