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5번 도크
"반장님, 지금 정확히 어디세요?"
"정문이라니까. 차단기 앞."
정우는 블라인드 틈에 눈을 댔다. 주차장 건너편, 정문 차단기 앞에 헤드라이트 두 개가 서 있었다. 김 반장의 은색 SUV였다. 경비실은 불이 꺼져 있었다.
"차에서 내리지 마세요."
"안 내려. 내가 바보냐."
"집으로 다시 가실 수는 없어요?"
"못 가. 오는 길에 신호등 사거리가 쩍 갈라졌어. 거기서 송아지만 한 게 기어 나오더라. 겨우 돌려서 왔다. 뒤는 막혔어."
김 반장의 목소리는 숨이 차 있었다. 그래도 말은 또박또박했다. 주간조 조회 때 목소리 그대로였다.
"근데 정우야."
"네."
"저기 3번 셔터 앞에 하얀 거 뭐냐. 헤드라이트에 비치는데."
"생수예요."
"생수를 왜 거기 쌓아 놨어."
"개 막으려고요."
"누가 쌓았는데."
"…제가요."
"너 혼자? 지게차도 없이?"
정우는 잠깐 말을 골랐다. 스킬 얘기를 전화로 하자니 길었다.
"반장님도 하늘에 창 떴죠? 스킬 뭐 받으셨어요?"
"[포장]. 박스 테이프 감는 거래. 장난하나."
"저는 [정리정돈]이에요. 그걸로 쌓았어요."
수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했다.
"…야, 그건 그렇다 치고. 비상구 동선 앞에 적재하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을 말했어. 3번 셔터 옆이 비상구야. 지게차 동선도 막고. 정리는 사람 다치지 말라고 하는 거다. 거기 쌓았다가 사고 나면 너 산재 처리도 안 돼."
"반장님, 지금 산재가 문제가 아니라."
"비상일수록 동선이 문제야. 너 신입 때 내가 뭐라 그랬어."
"…통로는 비워 둔다."
"그래."
보람이 정우 옆에서 입 모양으로 물었다. 저분 지금 잔소리하시는 거예요?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7년 동안 들은 잔소리였다.
문제는 주차장이었다.
흩어졌던 세눈들개들이 정문 쪽으로 모이고 있었다. 헤드라이트와 엔진 소리 때문이었다. 다섯 마리 중 네 마리가 차단기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보람 씨, 쟤네 속도 나와요?"
"잠깐만요."
보람이 블라인드 틈에 얼굴을 붙였다. 눈동자가 잠깐 흐려졌다가 돌아왔다.
"이동 속도 '빠름'이요. 숫자는 안 나와요. F급 정보창이 원래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차보다 빨라요?"
"직선이면 비슷할 것 같은데요. 커브에선 개가 이기죠."
정우는 벽에 붙은 센터 도면을 떼어 바닥에 펼쳤다.
정문에서 B동 출고장까지는 직선 120미터. 그 사이가 전부 주차장이었다. 개들이 있는 곳이다. 반대로 정문에서 외곽 순환로를 따라 건물 뒤로 돌면 A동 입고장이 나왔다. 거리 300미터. 개들이 있는 곳에서 멀었다.
입고장 도크는 1번부터 6번까지. 그중 5번이 휴게실에서 제일 가까웠다. 랙 구역을 가로질러 60미터.
"반장님. 순환로 타고 5번 도크로 오세요. 제가 셔터 열게요."
"5번? 거기 셔터 느린데."
"알아요. 그래서 1미터만 올릴게요. 끝까지 올리면 닫는 데도 한참 걸려요."
"1미터면 나 기어 들어가야 되잖아."
"기어 들어오세요."
"…알았다. 3분."
전화가 끊겼다.
"반장님, 잠깐만요."
보람이 정우의 소매를 잡았다. 목소리가 작았다.
"셔터 열면 쟤네도 들어올 수 있잖아요."
"그래서 1미터만 열어요."
"개는 한 뼘만 열려도 기어 들어와요. 아까 3번 셔터에 코 박는 거 보셨잖아요."
"알아요. 높이 때문이 아니에요. 닫는 시간 때문이에요. 반장님 도착하기 직전에 열고, 들어오면 바로 닫아요. 1미터면 금방 닫혀요."
"그 사이에 개가 먼저 오면요?"
정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수 있었다. 넷이 겨우 막아 놓은 센터에 구멍을 내는 일이었다.
라지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우와 보람을 번갈아 보며 정우가 정하기를 기다렸다.
만식이 먼저 일어섰다.
"셔터 스위치 내가 잡는다."
"형님."
"김 반장 저거 나랑 같은 해 들어왔다. 니는 니 할 거 해라."
만식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휴게실을 나갔다. 정우는 보람을 봤다.
"보람 씨는 여기 있어요. 문 잠그고."
"…저도 갈게요. 개 몇 마리 오는지 세는 사람은 있어야죠."
보람이 핸드폰 플래시를 켰다. 손이 떨렸다. 정우는 뭐라고 하려다 말았다. 셀 사람이 필요한 건 사실이었다.
"라지브 씨는?"
"저는 문 지키겠습니다. 문이… 비면 안 됩니다."
"진짜 이유는요?"
"…무섭습니다. 그냥."
정직한 사람이었다.
5번 도크는 어두웠다.
비상등만 초록색으로 켜져 있었다. 셔터 안쪽에는 입고 대기 팔레트가 하나 있었다. 즉석밥 서른 박스. 한 박스에 3킬로, 생수 묶음의 4분의 1 무게였다.
정우는 그걸 보고 이를 물었다. 무거운 게 없었다. 생수는 전부 B동에 있었다. 지금 가지러 갈 시간은 없었다.
만식이 셔터 스위치 박스를 열었다. 상승, 정지, 하강. 버튼 세 개.
"끝까지 올리면 20초. 1미터면 7초쯤 걸린다."
"내리는 건요?"
"똑같다."
7초. 열고 닫는 데 14초.
멀리서 엔진 소리가 들렸다. 건물 외벽을 따라 돌아오는 소리. 그 뒤로 다른 소리도 섞여 있었다. 발톱이 아스팔트를 긁는 소리.
보람이 셔터 옆 작은 관찰창에 붙었다.
"차 와요! 개…, 두 마리! 아니 세 마리요! 따라와요!"
"형님, 올려요."
만식이 상승 버튼을 눌렀다.
셔터가 덜컹거리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바닥과 셔터 사이로 헤드라이트 불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30센티. 50센티.
SUV가 도크 앞에 거칠게 멈춰 섰다. 문이 열렸다. 김 반장이 뛰어내렸다.
그리고 정우는 자기가 놓친 걸 깨달았다.
도크는 높았다. 트럭 짐칸 높이에 맞춘 1미터 20센티. 차에서 내린 사람은 그 벽을 기어올라야 했다. 쉰 살의 주간조 반장이, 개 세 마리를 등에 달고.
"정지!"
만식이 정지를 눌렀다. 셔터가 1미터에서 멈췄다.
정우는 셔터 아래로 몸을 숙였다. 안쪽의 즉석밥 팔레트가 시야에 들어왔다. 바깥의 도크 벽이 보였다.
"즉석밥 로케이션 변경. 5번 도크 앞, 계단식으로."
【로케이션 변경 요청을 확인했습니다.】
박스들이 떠올랐다. 셔터 아래를 미끄러져 나갔다. 도크 벽 아래에 한 단, 두 단, 세 단. 계단 모양으로 쌓였다.
김 반장이 첫 단을 밟았다. 박스가 찌그러졌다. 두 번째 단. 세 번째.
첫 번째 개가 도크 아래에 도착했다.
"반장님, 빨리!"
정우는 남은 박스를 개 쪽으로 보냈다. 김 반장과 개 사이에 벽을 세우려고. 박스가 쌓였다.
개가 그대로 들이받았다.
3킬로짜리 박스 벽이 종이처럼 흩어졌다. 생수 1톤은 개를 막았지만, 즉석밥 서른 박스로는 개를 늦추지도 못했다.
김 반장의 손이 도크 위에 걸렸다. 몸을 끌어올렸다. 무릎이 도크 끝에 닿았다. 셔터까지 2미터.
두 번째 개가 계단을 밟고 뛰어올랐다.
"닫아!"
김 반장이 만식 쪽을 보며 소리쳤다.
"아직…!"
정우가 외쳤다. 만식은 정우를 보지 않았다.
하강 버튼이 눌렸다.
셔터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1미터. 80센티. 정우는 셔터 아래로 손을 뻗었다. 보람이 뒤에서 정우의 허리를 잡아당겼다. 50센티. 30센티.
그 틈으로 김 반장의 작업화가 보였다. 그리고 회색 털.
셔터가 바닥에 닿았다.
김 반장은 들어오지 못했다.
05시 11분.
셔터 너머의 소리는 1분쯤 이어지다가 그쳤다. 개들이 셔터를 몇 번 긁었다. 그것도 그쳤다.
5번 도크 안에는 아무도 말이 없었다.
만식이 스위치 박스를 닫았다. 손잡이를 돌려 잠갔다. 그리고 정우를 봤다.
"내가 닫았다. 니 말고."
정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계산이 저절로 돌았다. 셔터가 내려오는 데 7초. 두 번째 개는 김 반장 등 뒤에 있었다. 3초만 늦었어도 개는 셔터 안쪽에 있었다. 그다음엔 휴게실까지 60미터. 문 하나. 버튼식 잠금.
형님이 맞았다. 그걸 아는 게 더 싫었다.
"…네."
정우는 귀에 꽂힌 볼펜을 뺐다. 손에 쥐었다. 다시 꽂았다.
"봉쇄할게요."
"뭐?"
"센터 전체요. 셔터 열네 개, 비상구 여섯 개. 지금 3번 셔터만 막혀 있어요. 나머지는 버튼 하나면 열려요. 개가 버튼을 누르진 않겠지만, 사람이 누를 수도 있고요."
보람이 눈을 깜빡였다. 아직 얼굴이 하얬다.
"지금요?"
"지금요."
지금 안 하면 앉아서 생각하게 된다. 그건 나중에 해도 됐다.
[정리정돈]은 시야 안에서만 됐다.
그래서 정우는 걸었다. 센터를 한 바퀴. A동 입고장에서 시작해 B동 출고장까지. 보람이 도면을 들고 따라오며 번호를 불렀다. 만식은 지게차를 몰고 뒤를 따랐다. 스킬로 옮기기엔 먼 팔레트는 만식이 끌어다 놓았다.
"1번 도크."
"생수 로케이션 변경. 1번 셔터 앞."
"2번 도크."
"통조림. 2번 셔터 앞. 밑에 깔고, 위에 생수."
무거운 건 아래로. 가벼운 건 위로. 셔터 앞에는 사람 힘으로 밀 수 없는 무게를.
비상구는 달랐다. 비상구 문은 안쪽으로 열렸다. 정우는 문 앞에 짐을 쌓지 않았다. 문 손잡이를 케이블 타이로 묶고, 문 옆에 생수를 쌓았다. 밖에서 밀면 안 열린다. 안에서 타이를 자르면 바로 열린다.
통로는 비워 둔다.
보람이 그걸 보더니 물었다.
"왜 문 앞에 안 쌓으세요? 그게 더 튼튼할 것 같은데."
"불 나면 우리가 못 나가요."
"아."
5번 도크 셔터 앞에 도착했을 때, 정우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셔터 앞에 흩어진 즉석밥 박스를 치우고, 그 자리에 생수를 쌓았다. 1톤. 3번 셔터와 같은 무게.
처음부터 이걸 썼어야 했다. 생수가 B동에 있다는 걸 알았는데.
정우는 맨 위 묶음까지 손바닥으로 한 번씩 눌러 보고 나서야 다음 비상구로 걸음을 옮겼다.
마지막 비상구에 타이를 묶었을 때, 창이 떴다.
【분류 1,140건, 적재 1,140건.】
【[정리정돈] 숙련도가 상승했습니다.】
"…천백사십."
보람이 중얼거렸다.
"반장님, 한 시간 만에 센터를 통째로 다시 짜셨어요."
"원래 재고 조사하면 밤새 해요. 이건 빠른 거예요."
농담이었는데 아무도 웃지 않았다. 정우도 웃지 않았다.
06시 00분.
주간조 출근 시간이었다.
정우는 휴게실 창가에 서서 정문을 봤다. 출근하는 차는 한 대도 없었다. 차단기 앞에 은색 SUV만 문이 열린 채 서 있었다. 시동은 아직 켜져 있었다. 헤드라이트가 빈 주차장을 비추고 있었다.
하늘의 초록 창은 그대로였다. 날이 밝으면서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라지브가 컵라면에 물을 부었다. 다섯 개. 그러다 하나를 조용히 다시 찬장에 넣었다.
만식은 창가와 제일 먼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팔짱 낀 손가락이 쉬지 않고 팔뚝을 두드렸다.
보람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반장님, 정부 발표 나왔어요. 외출 자제하고 실내에서 대기하래요. 각성자는 가까운 관공서에 신고하고."
"관공서 어디요?"
"…그건 안 나와 있어요."
"그럼 대기하죠. 실내에서."
정우는 작업 일지를 펼쳤다. 06:00 칸에 적었다. 센터 전체 봉쇄 완료. 출입구 20개소.
그때 정문 쪽에서 경적이 울렸다.
길게. 세 번.
정우가 고개를 들었다. 만식이 눈을 떴다.
정문 차단기 너머, 도로 끝에서 차 한 대가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범퍼가 반쯤 떨어져 덜렁거렸다. 사이드미러는 하나뿐이었다.
회색 세단이었다.
그 뒤로, 세 눈 달린 개 한 마리가 따라붙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