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7-3-D
회색 세단이 정문 차단기를 들이받았다.
차단기 막대가 꺾여 날아갔다. 세단은 멈추지 않았다. 주차장을 가로질러 B동 쪽으로 곧장 달려왔다. 범퍼가 아스팔트를 긁으며 불꽃을 튀겼다.
그 뒤로 세눈들개 한 마리.
"…센터장님이다."
보람이 말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만식의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 '오병철 센터장'. 만식은 받지 않았다. 핸드폰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울리게 뒀다.
진동이 멈췄다. 이번엔 정우의 핸드폰이 울렸다.
정우는 받았다.
"정우 씨! 정우 씨, 나야! 문 열어 줘! 문!"
"센터장님, 지금 어디로 가세요?"
"모르지! 아무 데나! 이 개새끼가 계속 따라와! 지금 기름도 없어! 계기판에 불 들어왔어!"
센터장의 목소리는 반 옥타브쯤 올라가 있었다. 본사 화상 회의 때 목소리였다.
정우는 송화구를 손으로 막았다.
"형님."
"열어 줄 이유 없다."
만식은 창밖도 보지 않았다.
"지 혼자 도망간 사람이다. 그 사이에 김 반장은…."
만식이 말을 끊었다. 더 하지 않았다.
보람과 라지브가 동시에 정우를 봤다.
정우는 손을 뗐다.
"센터장님. 하나만 여쭤볼게요. 비상 발전기실 키 갖고 계세요?"
"뭐? 발전기? 지금 그게 중요해?"
"갖고 계세요?"
"…있지! 그거 센터장만 갖고 있는 거잖아! 본사 규정이야!"
정우는 보람에게 눈짓했다. 보람이 핸드폰 화면을 돌려 보였다. 뉴스 속보 자막. 수도권 일부 지역 정전 확대. 복구 일정 미정.
"열어 드릴게요."
만식이 고개를 돌렸다.
"발전기 없으면 냉장 구역이 이틀이면 다 상해요. 계란, 우유, 고기. 그거 버리면 우리 식량 3분의 1이 날아가요."
만식은 한참 정우를 보다가, 짧게 콧바람을 뿜었다.
"…키 때문이다. 사람 때문 아니고."
"네. 키 때문이에요."
수화기 너머에서 센터장이 소리쳤다.
"정우 씨! 살려 주면 내가 정규직 전환 결재 올릴게! 진짜야!"
"그건 본사가 하는 거잖아요."
"내가 추천서 쓸게!"
"…일단 B동 끝 비상구로 오세요. 4번 비상구요. 녹색 표지판."
문제는 개였다.
센터장만 들어오게 할 방법은 없었다. 비상구를 열면 개도 따라 들어온다. 사람이 문으로 들어오는 데 2초. 개는 그 2초 뒤에 붙어 있었다.
한 시간 전 5번 도크에서 본 게 있었다. 즉석밥 박스로는 개를 늦추지도 못했다. 문을 못 닫을 거라면, 개를 막는 건 무게뿐이었다.
"들어오게 해요. 둘 다."
"네?!"
보람이 거의 비명처럼 말했다.
정우는 바닥에 도면을 펼쳤다. 4번 비상구는 B동 7번 랙 통로 끝에 붙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바로 7번 통로. 폭 3미터, 길이 50미터의 직선.
"센터장님이 7번 통로로 쭉 뛰어오시고, 개가 따라와요. 그 위에 떨어뜨려요."
"뭘요?"
"7-3-D요."
정우가 랙 번호를 말하자 만식의 눈썹이 움직였다. 만식은 알아들었다.
7번 랙 3번 베이. 높이는 네 단. A단이 바닥, D단이 맨 위였다. 바닥에서 4미터 50센티. 거기엔 보충용 재고가 들어 있었다. 생수 2리터, 한 팔레트. 1톤.
"아까 즉석밥 박스는 가벼워서 실패했어요. 이건 1톤이에요. 그리고 높이 4미터 반."
"근데 반장님 그거 낱개로 떨어지잖아요. 아까 생수처럼 하나씩."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보람 씨, 지게차는 생수를 한 묶음씩 옮겨요?"
"…아니요. 팔레트째요."
"그러니까요."
랙 맨 위의 팔레트를 내릴 때 하나씩 내리는 사람은 없다. 팔레트째 내린다. 물류의 기본 단위는 팔레트였다. 정우가 7년 동안 무전기로 말한 로케이션 변경도 대부분 팔레트 단위였다.
될지는 몰랐다. 해 본 적이 없었다.
"랙 무너진다."
만식이 처음으로 길게 말했다.
"1톤을 4미터 반에서 떨구면 바닥만 울리는 게 아이다. 랙이 흔들린다. 옆 칸 팔레트까지 줄줄이 쏟아지면 그 밑에 센터장도 깔린다."
"7번 랙은 앵커 볼트 박혀 있어요. 바닥에 열여섯 개. 작년 안전 점검 때 제가 하나씩 봤어요."
"니가 왜 봤는데."
"점검 업체가 안 보고 사인만 하길래요."
만식이 정우를 잠깐 쳐다봤다. 그러더니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옆 칸은?"
"7-2-D는 비어 있어요. 7-4-D는 시리얼이에요. 쏟아져도 안 다쳐요."
보람이 손을 들었다.
"반장님, 개 무게 봤어요. [분석]으로요. 90킬로래요."
"그럼 충분해요."
수화기에서 센터장이 다시 소리쳤다. 세단은 주차장을 크게 돌고 있었다. 개는 지치지도 않고 따라붙었다.
"정우 씨! 아직이야?! 기름 불이 깜빡거려!"
"한 바퀴만 더 도세요."
"한 바퀴?!"
"천천히 도세요. 기름 아끼게."
"형님은 비상구요. 센터장님 들어오고 개 들어오면 바로 닫아 주세요. 다른 놈 못 들어오게."
"그러다 개가 돌아서서 나한테 오면."
"안 돌아서게 할게요."
만식은 못 믿겠다는 얼굴로 정우를 한 번 보고는, 비상구 쪽으로 걸어갔다.
정우는 7번 통로 반대편 끝에 섰다. 50미터 앞에 4번 비상구. 오른쪽 위로 7-3-D가 보였다. 비닐로 감싼 생수 팔레트가 랙 맨 위 칸에 얌전히 얹혀 있었다.
보람은 정우 뒤, 8번 랙 기둥 뒤에 숨었다. 라지브는 휴게실 문 앞에서 소화기를 들고 있었다. 왜 소화기인지는 본인도 몰랐다.
정우가 핸드폰에 대고 말했다.
"센터장님, 들어오시면 노란 선 따라서 직진하세요. 7번 통로. 멈추지 마세요."
"7번이 어딘데?!"
"…들어오시면 바로 앞이에요. 그냥 직진."
센터장은 7년 동안 B동에 내려온 적이 거의 없었다.
밖에서 브레이크 소리가 났다. 세단이 비상구 앞에 미끄러지며 섰다. 문 여는 소리. 구두 소리.
"지금!"
만식이 케이블 타이를 끊고 문을 밀었다.
오병철 센터장이 굴러 들어왔다. 정장 바지 한쪽이 찢어져 있었다. 넥타이는 어깨 뒤로 넘어가 있었다. 그는 넘어질 듯 비틀대다가 노란 선을 보고 뛰기 시작했다.
1초 뒤, 회색 덩어리가 문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세눈들개였다. 가까이서 보니 더 컸다. 발톱이 콘크리트 바닥에 미끄러지며 끼익 소리를 냈다. 개는 미끄러진 몸을 단숨에 바로 세우고 센터장을 쫓았다.
쾅. 만식이 비상구를 닫았다.
센터장과 개 사이는 3미터. 2미터.
정우는 숫자를 셌다. 1번 베이. 2번 베이.
센터장이 3번 베이 아래를 지났다.
거리 1미터. 지금 떨어뜨리면 센터장이 맞는다.
반 박자.
"7-3-D, 생수 한 팔레트. 로케이션 변경, 7-3 바닥. 팔레트째."
【단위 적재 요청을 확인했습니다.】
팔레트가 랙에서 미끄러져 나왔다.
비닐에 싸인 1톤이 4미터 50센티를 떨어졌다. 1초가 안 걸렸다.
센터장의 구두 뒷굽이 팔레트 모서리에 찍혀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개는 팔레트 밑에 있었다.
쿵.
바닥이 울렸다. 랙 전체가 흔들렸다. 생수 비닐이 터지며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팔레트 아래로 회색 다리 하나가 삐져나와 두어 번 경련하다가 멈췄다.
통로가 조용해졌다.
센터장은 정우 앞 2미터에서 무릎을 꿇은 채 헐떡이고 있었다. 한쪽 구두는 굽이 없었다.
【세눈들개(F)를 처치했습니다.】
정우는 창을 보고, 팔레트를 보고, 자기 손을 봤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이번엔 주머니에 넣지 않았다.
보람이 8번 랙 기둥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반장님. 방금 팔레트를…. 통째로…."
"됐네요."
"됐네요가 아니라…!"
"보람 씨, 목소리."
보람은 입을 다물었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작게 말했다.
"…팔레트 단위 적재. 이거 공략에 적어야 돼요."
물이 통로를 따라 흘렀다. 팔레트 하나에 480병. 절반쯤이 터졌다.
센터장이 일어섰다. 무릎이 젖어 있었다. 그는 팔레트를 내려다보고, 팔레트 밑의 다리를 내려다보고, 그다음 정우를 봤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이거… 파손 처리는 누가 해?"
"…."
"생수 한 팔레트면 재고 손실이 얼마야. 이거 본사에 사유서 올려야 돼. 정우 씨, 이거 누가 승인했어?"
라지브가 소화기를 내렸다. 조용히, 아주 정중하게 말했다.
"센터장님. 한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
"…그건 맞는 속담이에요."
정우가 말했다.
"맞습니까? 다행입니다."
센터장은 얼굴이 붉어졌다가, 주위를 둘러봤다. 만식이 비상구 앞에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센터장 쪽으로 정확히 날아갔다.
센터장이 헛기침을 했다.
"…그래. 비상 상황이니까. 사유서는 나중에. 내가 처리할게."
"센터장님, 발전기실 키요."
"아, 그래, 키."
센터장이 바지 주머니를 뒤졌다. 오른쪽. 왼쪽. 재킷 안주머니. 뒷주머니.
손이 점점 느려졌다.
"…센터장님."
"잠깐만. 잠깐만 있어 봐."
"어디 두셨어요?"
센터장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4번 비상구 쪽. 그 너머, 문 앞에 시동이 켜진 채 서 있을 회색 세단 쪽.
"차 키랑… 한 꾸러미로 묶여 있거든."
"…."
"꽂아 놓고 내렸어."
그 순간, 천장의 형광등이 한 줄씩 꺼지기 시작했다.
입고장 쪽부터 랙 구역, 출고장, 휴게실 순서였다.
마지막으로 비상등만 초록색으로 남았다.
어둠 속 어딘가에서, 냉장 구역 컴프레서가 웅 하고 마지막 숨을 쉬더니 멈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