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지게차
"형님 스킬, 뭐였죠?"
아침 먹는 자리에서 정우가 물었다. 숟가락을 들고 있던 만식이 멈췄다.
"[지게차]."
"써 보셨어요?"
"뭘 써."
"스킬이요."
만식은 대답 대신 국을 떠먹었다. 라지브가 끓인 세눈들개 국이었다.
사흘째 같은 국이었는데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지게차 스킬이면 지게차 운전 잘하는 거 아이가. 내 20년 했다. 스킬 없어도 잘한다."
"…그거예요?"
"그거지 뭐. 이름이 지게차인데."
보람이 숟가락을 내려놨다. 정우를 봤다.
정우도 보람을 봤다.
"형님, 지게차 운전 잘하는 스킬이면 이름이 [운전]이겠죠."
"그럼 뭔데."
"그걸 모르니까 여쭤보는 거예요."
만식은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자기 두 팔을 내려다봤다. 반팔 작업복 밖으로 드러난 팔이었다. 20년 동안 지게차 레버를 잡은 팔.
어깨에 파스가 붙어 있었다.
"…설명에는 '중량물을 들어 올립니다'라고만 나온다."
"그럼 들어 보셨어요?"
"뭘."
"중량물이요."
만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일어나서 식판을 싱크대에 넣었다. 등을 보인 채 말했다.
"어깨 나간 지 3년 됐다. 들라 카면 지게차로 든다."
정우는 더 묻지 않았다. 만식의 어깨에 붙은 파스는 정우도 3년째 봐 왔다. 겨울이면 두 장, 여름이면 한 장. 병원 갈 시간이 없어서 파스로 버틴다고 했었다.
정우는 싱크대 앞에 선 만식의 등을 잠깐 보다가,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남은 개는 네 마리였다.
보람의 공책으로 보면, 넷은 해 뜨기 전 주차장 저편 금 근처에서 자고, 밤이면 흩어져 센터 주위를 돌았다. 셔터를 긁는 소리는 이제 매일 밤 났다. 탑차 쪽 개가 사라지자 남은 넷이 그 자리를 채우듯 셔터 근처로 오는 일이 잦아졌다.
정우는 화이트보드에 숫자를 적었다.
넷 × (가죽 30 + 마정석 50) = 320만 원.
고기 120킬로.
그리고 그 밑에, 숫자로 적을 수 없는 것 하나. 셔터 앞 개가 없어지면 언젠가 저 정문으로 사람들이 올 수 있다. 정부 발표에는 여전히 '외출 자제'뿐이었다. 근처 아파트 단지에서 고립된 사람들 이야기가 SNS에 하루에도 몇 개씩 올라왔다.
만식이 화이트보드의 320을 오래 봤다. 그러다 혼잣말처럼 말했다.
"한 사람 몫이 64만 원이네."
"네."
"딸내미 등록금이 한 학기 380만 원이다."
만식은 그 말만 하고 입을 다물었다. 정우는 처음 듣는 숫자였다. 7년 동안 같은 야간조였는데, 만식이 왜 쉰여덟에 야간을 서는지 물어본 적이 없었다. 컵라면을 두 개씩 사는 이유도.
"형님, 따님은 지금…."
"수원 기숙사. 어제 통화했다. 학교 체육관에 다 모여 있단다. 밥은 나온다 카더라."
"다행이네요."
"밥은 나와도 등록금은 안 나온다."
만식이 화이트보드에서 눈을 뗐다.
"하자. 오늘 밤."
"오늘 밤 해요."
정우가 말했다.
"넷 다요?"
"넷 다 오면 넷 다요. 하나 오면 하나요."
라지브가 냄비를 저으며 물었다.
"야간 시야 요리, 저녁에 먹습니까?"
"8시에요. 두 시간이니까 10시까지."
보람이 공책에 시간을 적었다. 그러다 고개를 들었다.
"근데 반장님, 통로 자루는 한 마리씩밖에 안 되잖아요. 저번엔 한 마리였으니까 됐는데. 두 마리가 같이 들어오면요?"
정우는 그것도 생각해 뒀다. 생각해 뒀지만 답은 없었다.
"그때는 셔터를 안 열어요."
"그럼 안 잡는 거예요?"
"안 잡는 거예요. 다음 날 또 하면 돼요."
오후에 정우는 통로 벽을 다시 봤다. 관찰창 너머로, 사흘째 서 있는 생수 벽이었다. 양쪽 다 1미터 50. 바람에 맨 위 묶음 몇 개가 조금 삐뚤어져 있었다.
물류센터에서 팔레트를 높이 쌓으면 랩을 감는다. 스트레치 필름. 쌓은 짐이 무너지지 않게 통째로 감싸는 비닐이다. 정우는 그게 A동 자재 창고에 있다는 걸 알았다. A동까지는 랙 구역을 지나 80미터였다. 그리고 그걸 통로 벽에 감으려면 밖에 나가야 했다.
정우는 관찰창에서 눈을 뗐다. 벽은 지금까지 버텼다. 개들은 넘으려고만 했지 밀어 본 적은 없었다.
정우는 출고장 불을 끄고 휴게실로 돌아갔다.
8시. 다섯은 라지브의 국을 한 그릇씩 비웠다. 국물이 목을 넘어가고 몇 분 뒤, 정우는 눈이 이상하게 시원해지는 걸 느꼈다. 출고장 불을 꺼도 랙 번호가 보였다. 7-3-B. 7-3-C. 어둠 속에서 하얗게 떠올랐다.
"…와."
보람이 관찰창 앞에서 작게 탄성을 냈다.
"반장님, 다 보여요. 주차장 끝까지. 개 넷, 금 근처. 아직 안 움직여요."
9시 10분, 첫 번째 개가 움직였다. 혼자서 셔터 쪽으로 걸어왔다.
정우는 고기를 통로 바닥에 밀어 넣었다. 이번엔 통로 입구를 막아 둔 생수 벽을 반만 치워 뒀다. 개 한 마리가 겨우 들어올 만한 틈이었다.
개가 틈 앞에서 멈췄다. 냄새를 맡았다. 들어왔다.
"한 마리예요. 뒤에 없어요."
보람의 목소리가 떨렸다. 정우는 셔터 아래 쪼그려 앉아 입구 쪽 생수를 봤다.
"생수, 통로 입구 틈. 꽉 차게."
틈이 막혔다. 개가 고기를 문 채 돌아섰다. 막힌 입구를 들이받았다. 꿈쩍하지 않았다. 셔터 쪽으로 돌아섰다.
그때 보람이 소리쳤다.
"반장님! 두 번째요! 통로 바깥, 오른쪽 벽!"
정우는 고개를 들었다. 야간 시야 속에서 회색 덩어리 하나가 통로 오른쪽 벽 바깥에 붙어 있었다. 벽을 긁는 줄 알았는데, 묶음이 흔들리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밀고 있었다.
생수 묶음은 쌓여 있을 뿐, 묶여 있지 않았다. 바깥에서 90킬로짜리가 온몸으로 밀자 맨 위 묶음 하나가 안쪽으로 떨어졌다. 그다음 묶음. 벽에 틈이 생겼다. 개의 머리가 그 틈으로 들어왔다.
통로 안에 두 마리.
그리고 셔터는 1미터 열려 있었다.
"내려요!"
만식이 하강 버튼을 눌렀다. 셔터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7초.
두 마리가 동시에 셔터 쪽으로 뛰었다. 첫 번째 개가 먼저였다. 셔터 틈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셔터 하단이 등에 걸렸다. 안전장치가 셔터를 멈췄다. 만식이 하강 버튼을 한 번 더 눌렀다. 셔터가 내려오는 대신 위로 감기기 시작했다. 걸린 채로 버튼을 다시 누르면 거꾸로 도는 장치였다.
1미터.
두 번째 개가 첫 번째 개의 등을 밟고 틈으로 뛰어들었다.
출고장 안이었다.
정우는 바닥에 엎어진 채 그걸 봤다. 개가 착지했다. 세 눈이 어둠 속에서 정우를 찾았다. 야간 시야 속에서 정우는 그 눈을 똑똑히 봤다. 개도 정우를 봤다.
주위엔 생수도 말통도 없었고, 랙은 10미터 뒤였다. 개가 몸을 낮췄다.
그 앞을 누군가 가로막았다.
만식이었다. 작업복 소매가 걷혀 있었다. 파스가 붙은 어깨가 정우의 눈높이에 있었다.
개가 뛰었다.
만식이 두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손바닥을 위로, 팔꿈치를 붙이고. 20년 동안 지게차 포크를 팔레트 밑에 밀어 넣던 각도 그대로였다.
90킬로가 만식의 두 팔 위로 떨어졌다.
만식의 팔이 내려가지 않았다.
정우는 야간 시야 속에서 그걸 봤다. 만식의 두 팔뚝을 따라 희미한 빛이 흘렀다. 쇠처럼 반들거리는 빛이었다. 개가 그 팔 위에서 버둥거렸다. 발톱이 만식의 작업복을 긁었다. 만식은 움직이지 않았다. 개를 두 팔에 얹은 채로, 지게차가 팔레트를 들 때처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개의 발이 바닥에서 떨어졌다.
만식이 고개만 돌려 정우를 봤다.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됐다 마. 내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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