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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만수부동산

부동산 사무실 문에 달린 종이 울리면 나는 습관처럼 세 군데를 본다. 신발, 손, 그리고 눈이다. 신발을 보면 얼마나 걸어왔는지가 보이고, 손을 보면 뭘 쥐고 왔는지가 보이는데, 눈을 보면 뭘 잃어버리고 왔는지가 보인다.

딸랑, 하고 종이 울린 건 오후 네 시 십 분이었다. 신림동 골목 2층, 간판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만수부동산.

들어온 건 스물셋쯤 돼 보이는 청년이었다. 헌터 전용 안전화를 신었는데 밑창이 새것처럼 깨끗했다. 던전에 몇 번 안 들어가 봤다는 뜻이다. 손에는 서류 봉투를 쥐고 있었는데, 얼마나 꽉 쥐었는지 봉투 귀퉁이가 다 구겨져 있었다.

눈은 빨갰다.

"저, 여기… 던전도 봐 주세요?"

커피믹스를 젓던 손이 멈췄다. 오늘 일곱 잔째였다.

"던전도 부동산이죠. 앉으세요."

청년은 의자에 앉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나는 휴지를 통째로 밀어 주고 커피믹스를 한 잔 더 타서 앞에 놓아 주었다. 여덟 잔째였다. 이 동네에서 십 년 넘게 부동산을 하다 보니, 울면서 들어오는 손님이 무슨 일로 왔는지는 듣기 전에 대충 안다. 계약을 당하고 온 사람이다.

청년은 휴지를 세 장 뽑아 코를 풀더니, 귀퉁이가 구겨진 봉투를 탁자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이름부터 여쭤볼게요."

"나철호요. 스물셋이고… F급 헌터예요."

F급이라는 말을 할 때 목소리가 한 칸 작아졌다.

5년 전 D-Day에 전국 땅에서 던전이 솟아난 뒤로 헌터는 흔한 직업이 됐다. 각성만 하면 누구나 헌터 소리를 듣는다. 대신 F급은 던전 앞에서 짐이나 들어 주는 게 고작이라, 철호도 지금까지 남의 던전에서 짐꾼 노릇만 했다고 했다.

"그래서 제 던전을 하나 갖고 싶었어요. 작은 거라도요."

철호가 봉투에서 꺼낸 건 던전 전세 계약서였다. 던전도 전세가 된다. 던전관리법상 던전은 그 땅 주인 소유라서, 주인은 그걸 팔 수도 있고 월세나 전세를 놓을 수도 있다. 전세라면 목돈을 맡기고 2년 동안 그 던전에서 나오는 자원을 캐 먹다가, 기간이 끝나면 목돈을 고스란히 돌려받는 식이다. 돌려받는다면 말이지만.

"보증금이… 8,000만 원이요?"

"네. 대출 받아서…."

"등급은요?"

"C급이요. 국가 공인 감정서도 있어요."

철호가 내민 감정서에는 신림 7-2 던전, 반지하형, 등급 C라고 또박또박 적혀 있었고, 감정사 직인까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서류는 깔끔했다. 깔끔해도 너무 깔끔해서, 모서리 하나 접힌 데가 없었다.

"계약한 지 얼마나 됐어요?"

"석 달이요. 근데 들어가 보면 슬라임만 나와요. C급이면 오크 정도는 나와야 하잖아요. 그래서 집주인한테 전화했는데…."

"안 받죠. 문자는 읽고 답이 없고, 그러다 어제부터는 없는 번호라고 나오고요."

철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아시냐고 묻는 눈이었는데, 그런 걸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계약서 맨 뒷장을 넘겼다. 임대인 차갑돈, 주소는 강남 오피스텔, 도장은 문방구에서 파는 막도장이었다.

갭돌이였다.

이 바닥에서는 꽤 알려진 이름이다. 등급을 부풀린 깡통 던전에 전세를 놓고, 받은 보증금으로 또 다른 던전을 사고, 거기에 또 전세를 놓는다. 그렇게 갭을 굴리다가 한 군데가 터지면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탄다. 그래서 다들 갭돌이라고 부른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달았다.

"철호 씨, 보증금 돌려받고 싶죠?"

"…당연하죠."

"그럼 던전 보러 갑시다. 지금 바로."


신림 7-2 던전은 빌라 반지하에 있었다. 원래는 창고로 쓰던 자리인지 벽에 녹슨 선반 자국이 남아 있었고, 시멘트 바닥 한가운데 둥근 구멍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숨을 쉬듯 새어 나왔다.

철호가 손전등을 켜는 사이 나는 구멍 앞에 쪼그려 앉았다.

나도 헌터다. 등급은 철호와 같은 F. 5년 전 D-Day에 각성은 했는데, 스킬 이름이 [입지 감정]이었다. 이름만 들으면 던전 감정 스킬 같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해 겨울에만 던전을 열 군데 넘게 돌았다. 구청 공공 던전, 헌터 협회 견학 던전, 짐꾼 알바로 따라간 던전. 구멍 앞에 설 때마다 눈에 힘을 줬지만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공단 재검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검사관은 '발현 조건 불명'이라고 적고 F 도장을 찍었다.

그 뒤로 던전 근처엔 가지 않았다. 던전 시장이 막 열리던 때라 동네마다 분양 설명회 전단이 돌았는데, '평생 수익 보장'이라는 문구가 십 년 전 상가 분양 때랑 토씨 하나 안 틀렸다. 그 냄새가 싫어서 던전 중개 의뢰가 들어오면 전부 왕 사장한테 넘겼다. 그러니까 5년 동안, 던전을 손님 매물로 들여다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구멍을 내려다보는데 눈앞 허공이 간질간질했다. 모니터를 오래 보다가 고개를 돌리면 잔상이 남는 것처럼, 무언가 떠오르려다 마는 느낌이었다.

"사장님, 괜찮으세요?"

"커피를 너무 마셨나 봐요. 오늘 여덟 잔째라."

"그거 몸에 안 좋아요."

"알아요."

나는 구멍 대신 철호를 한 번 보았다. 새 밑창, 구겨진 봉투, 빨간 눈. 스물셋짜리가 대출까지 받아서 맡긴 8,000만 원.

십 년 전 일이 떠올랐다. 스물네 살의 나도 첫 직장에서 모은 돈에 대출을 보태 신림역 앞 상가 한 칸을 샀었다. 분양 설명회 강사는 단상 위에서 공부한 사람이 먹는 거라고 했고, 그 상가는 1년도 못 가 깡통이 됐다. 강사 이름과 얼굴은 지금도 기억한다. 요즘은 TV에서 재테크 강의를 한다.

그 생각은 접어 두고 구멍을 다시 보았다. 이번에는 상가 매물을 볼 때처럼 봤다. 입지, 구조, 하자, 등기. 이 던전이 진짜로 얼마짜리인지.

눈앞이 다시 간지럽더니, 이번에는 글자가 떴다.

【매물】 신림 7-2 던전 (반지하형)
표시 등급: C │ 실제 등급: F
매장 자원: 슬라임 젤 (소량)
하자: 등급 감정서 위조 이력 1회

"철호 씨, 여기 이거 보여요?"

내가 허공을 가리키자 철호는 내 손가락 끝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거미줄이요?"

나한테만 보이는 모양이었다. 5년 동안 던전 앞에서 입을 다물고 있던 스킬이 손님 매물로 들여다보자 처음으로 입을 열었는데, 그게 하필 부동산 매물 정보 형식이라 웃음이 나왔다. 철호가 무섭다며 한 걸음 물러났다.

웃음이 가라앉고 나니 의심이 올라왔다. 커피를 여덟 잔이나 마신 사람 눈에는 헛것도 보일 수 있다. 어젯밤엔 네 시간밖에 못 잤고, 오늘 아침엔 건물주한테서 밀린 월세 석 달 치 독촉 문자를 받았다. 그런 날엔 뭐든 보일 수 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떴다. 글자는 그대로였다. 고개를 돌렸다 다시 봤다. 그대로였다. 다른 데를 보면 사라지고, 구멍을 보면 다시 떴다.

"사장님, 저… 보증금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철호가 물었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철호 손에 들린 구겨진 봉투를 잠깐 봤다. 된다고 하면 이 청년은 오늘 밤 석 달 만에 처음으로 푹 잘 거다. 그러다 안 되면, 그다음부터는 누구 말도 안 믿을 거다.

"솔직히 말할게요, 철호 씨. 장담은 못 해요. 이런 사람들은 돈을 이미 다른 데 박아 놨을 가능성이 커요. 소송하면 이기긴 이기는데, 받을 돈이 없으면 판결문은 종이예요."

철호의 얼굴이 다시 무너졌다. 나는 그 얼굴을 오래 보지 않으려고 휴대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남의 사정을 봐줄 형편이 아닌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무실 보증금 2,000에서는 밀린 월세가 이미 까여 나가는 중이었고, 이번 달을 넘기면 간판을 내려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도 하실 거면, 조건이 있어요."

"뭐든지요."

"돌려받으면 성공보수 10퍼센트. 못 받으면 0원."

철호가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세게 끄덕였다. 800만 원짜리 끄덕임이었다.

나는 던전 매물 앱을 열어 임대인 차갑돈으로 검색했다. 전세 매물이 네 건 나왔다. 전부 신림과 봉천 일대였고, 전부 C급 이상이었고, 전부 시세보다 20퍼센트쯤 쌌다. 전형적인 미끼였다. 그리고 내 눈이 진짜인지 확인해 볼 수 있는 매물이 네 건이나 생긴 셈이기도 했다.

그중 하나에 문의를 넣었다.

"안녕하세요, 만수부동산입니다. 매물 보고 연락드려요. 손님이 찾으셔서요, 내일 볼 수 있을까요?"

답장은 3초 만에 왔다.

"네네~ 요즘 이 가격 없어요! 내일 오후 두 시 봉천동 어떠세요~"

철호가 내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더니 얼굴이 하얘졌다.

"사장님, 왜 그 사람한테 연락을 해요? 그 사람 사기꾼이잖아요."

"그러니까 하는 거예요. 이 사람 매물이 전부 가짜인지, 아니면 내 눈이 가짜인지. 내일 가 보면 둘 중 하나는 알겠죠."

"…눈이요?"

"커피 얘기예요. 신경 쓰지 마요."

철호가 돌아간 뒤 나는 반지하 계단에 걸터앉아 커피믹스를 하나 더 뜯었다. 아홉 잔째였다. 800만 원이면 밀린 월세 석 달 치를 내고도 간판 페인트까지 다시 칠할 수 있었다.

나는 빈 종이컵을 구겨 쥐고 계단을 도로 내려갔다. 구멍 앞에 쪼그려 앉아 상가 매물 보듯 들여다보자, 글자가 다시 떴다.

표시 등급: C │ 실제 등급: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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