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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위험 고지

아침 아홉 시, 철호와 한소영이 사무실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철호는 편의점 김밥 세 줄을 들고 왔고, 한소영은 클리어 파일을 들고 왔다. 둘은 처음 만나는 사이였는데, 철호가 김밥 한 줄을 한소영에게 내밀자 한소영은 잠깐 망설이다가 받았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계약서를 두 부 내밀었다. 밤새 쓴 거였다. 매매 계약서 세 장, 합의서 한 장.

"읽기 전에 먼저 말씀드릴 게 있어요."

김밥 은박지를 벗기던 철호와 계약서를 막 집으려던 한소영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이 계약은 두 분이 갭돌이한테 받을 보증금 1억 4천을 포기하는 대신, 갭돌이가 가진 땅을 받는 거예요. 신림 9동 산 밑 폐공장. 지하에 던전이 있고요."

철호가 김밥을 씹다 말고, 입안에 든 걸 삼키지도 못한 채 물었다.

"그 던전, 등급이 뭐예요?"

"공인 감정서로는 F예요."

사무실이 조용해진 가운데 한소영은 클리어 파일을 무릎 위에 내려놓았고, 철호의 입은 반쯤 벌어졌다.

"…F요? 사장님, 저희 보증금이 1억 4천인데, F급 던전이랑 바꾸라고요?"

"네."

"제 7-2도 F였잖아요! 그것 때문에 지금 이러고 있는 건데!"

철호 목소리가 높아진 건 그럴 만했다. 나는 그 목소리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고, 한소영은 아무 말 없이 계약서를 집어 들고 첫 장을 넘겼다.


"공인 감정서로는 F예요."

나는 철호의 목소리가 완전히 가라앉은 걸 확인하고 나서 같은 말을 한 번 더 했다.

"그런데 제가 직접 가서 봤어요. 제 눈에는 F가 아니에요."

"사장님 눈이요?"

"네."

"사장님 감정사 자격증 있으세요?"

"없어요."

철호가 나를 쳐다봤고 한소영도 계약서에서 눈을 들었다. 나는 둘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여기서 눈을 피하면 끝이라는 건 십 년 동안 계약 테이블에서 배운 거였다.

내 눈에 매물 정보창이 보인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건 첫날, 거미줄이냐고 물었던 철호한테도 끝내 못 한 말이었다.

"철호 씨, 첫날 7-2 갔을 때 기억나요? 감정서엔 C였는데, 저는 그날 F로 봤어요. 말은 안 했지만요."

"…네? 왜요?"

"확인부터 하려고요. 한소영 씨 4-11도 감정서는 C인데 제 눈엔 F였어요. 봉천 2-8도 그랬고요. 세 번 다 같은 감정사 도장이에요. 지금 두 분 던전 다시 감정받아 보시면 다 F 나올 거예요."

철호가 입을 다물자 한소영이 천천히 말했다.

"그럼 이번엔 반대라는 거예요? 감정서엔 F인데 실제로는 더 높다고?"

"B로 봐요."

"B요?"

"그리고 지하에 중급 마정석이 묻혀 있어요. 아직 아무도 못 캔 거요."

한소영이 계약서를 탁자에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매매 대금 칸을 짚었다. 1억 4천.

"사장님, B급이면 얼마예요?"

"이 동네 시세로 최소 5억이요. 마정석 나오면 더 가고요."

"근데 왜 갭돌이가 그걸 1억 4천에 팔아요?"

"자기도 F인 줄 알거든요. 물이 새니까. 갭돌이가 처음 부른 건 1억이었어요. 4천은 제가 얹었어요."

"…왜요?"

"두 분 보증금 합치면 1억 4천이니까요. 딱 맞춰야 갭돌이한테 할 말이 생겨요. 당신이 피해자들한테 줄 돈을 땅으로 전부 갚았다, 이제 우리는 끝났다. 갭돌이가 제일 듣고 싶은 말이 그거예요."


한소영은 계약서를 끝까지 읽었고, 철호는 첫 장에서 포기하고 김밥을 먹었다. 나는 둘이 다 읽을 때까지 커피믹스를 두 잔 마셨다.

매매 계약서 세 장을 다 넘긴 한소영의 손가락이 마지막 합의서 한 장에서 멈췄다.

"매수인은 7-2, 4-11 관련 민·형사상 청구를 하지 않는다."

한소영은 그 줄을 소리 내어 읽고 나서 나를 봤다.

"이거 고소 안 한다는 거죠. 갭돌이를."

"네."

"그럼 그 사람은 처벌 안 받아요?"

"두 분 건으로는요."

한소영의 입술이 꽉 다물어지고, 무릎 위 클리어 파일을 쥔 손등에 핏줄이 섰다.

"저는 그 사람이 감옥 가는 거 보고 싶어요. 돈도 돈이지만. 남편이 그날 밤 저한테 아무 말도 안 했어요. 화도 안 냈어요. 그게 더 무서웠어요."

나는 해 줄 말이 없어서 대답하지 않았다. 스물네 살 때 나도 그 강사가 감옥 가는 걸 보고 싶었다. 그 강사는 지금 TV에 나온다.

"한소영 씨."

"네."

"돈을 받으면 처벌은 포기해야 돼요. 처벌을 받게 하면 돈은 못 받아요. 둘 다는 안 돼요. 갭돌이는 돈이 없으니까요. 이 땅 하나 빼고."

"…."

"대신 그 아래 단서 보세요. 본 합의는 매수인 2인의 위 2건에 한한다."

한소영이 다시 계약서를 내려다보며 단서를 읽었다. 한 번, 그리고 두 번.

"…봉천동이랑 사당동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소할 수 있다는 거네요."

"네. 철호 씨 글에 댓글 단 분들요. 그분들이 고소하면 갭돌이는 결국 경찰서 가요. 두 분 건이 빠질 뿐이지."

한소영이 오래 말이 없는 동안 철호는 김밥을 다 먹고 은박지를 접었고, 사무실 시계 초침 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릴게요. 위험한 거요."

나는 한소영 앞에 놓인 계약서를 끌어와 3쪽 특약 7항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제 눈이 틀릴 수도 있어요. 답을 아는 던전 두 군데에서는 맞았지만, 그렇다고 이번에도 맞는다는 법은 없어요. 만약 이 던전이 진짜로 F면, 두 분은 1억 4천짜리 채권을 물 새는 땅이랑 바꾼 게 돼요. 그리고 7항 때문에 물러 달라고도 못 해요."

"…."

"근데 그 채권, 지금 받을 수 있어요? 갭돌이는 수요일에 7-2를 바지 사장한테 넘겨요. 4-11도 언젠가 넘기고요. 그러면 두 분이 들고 있는 건 종이예요."

철호가 은박지를 손에 쥔 채 물었다.

"사장님은요? 사장님은 뭐 받아요? 성공보수 10퍼센트 하기로 했잖아요."

"현금으로는 못 받아요. 두 분도 현금이 안 생기니까요."

나는 계약서 마지막 장을 넘겼다. 매수인 칸 아래 빈 줄 하나. 거기 연필로 희미하게 적어 둔 게 있었다.

"대신 지분으로 주세요. 이 땅이랑 던전의 20퍼센트. 성공보수 10퍼센트 대신이요. 두 배 달라는 거 맞아요. 그 대신 제 눈이 틀려서 F면, 제 20퍼센트도 F예요. 저도 같이 망해요."

한소영이 나를 똑바로 봤다. 클리어 파일에 색인 스티커를 붙이는 사람의, 저울에 무게를 다는 눈이었다.

"사장님 눈이 맞으면, 사장님 20퍼센트는 최소 1억이네요."

"맞으면요."

"그거 사장님이 처음부터 노린 거죠."

나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노린 게 맞았다. 공장 바닥에 앉아서 계약서 매수인 칸에 내 이름을 작게 넣을 생각을 했을 때부터.

한소영은 그 침묵을 2초쯤 지켜보더니, 내 책상 위 볼펜꽂이에서 볼펜 하나를 집었다.

"15요."

"…20이 위험 부담…."

"15요. 그 대신 사장님이 이 땅 관리하세요. 저는 회사 다녀야 되고, 철호 씨는 F급이라 던전 관리 못 하잖아요. 관리비 안 받고요."

철호가 옆에서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듣고 끄덕이는 건지는 모르겠다.

지난번엔 7.5였고 이번엔 15였다. 이 사람은 매번 내가 부른 것의 4분의 3을 불렀다.

"…15요. 관리 포함."

한소영이 매수인 칸에 반듯한 글씨로 이름을 썼고, 철호가 그 옆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나철호라고 썼다.

나는 그 아래 빈 줄에 연필로 적어 둔 20을 지우개로 지우고, 볼펜으로 15를 적었다. 봉만수.

"이제 갭돌이만 남았네요."

한소영이 계약서 사본을 클리어 파일에 끼워 넣고 색인 스티커를 하나 붙이며 말했다.

"갭돌이가 이거 사인할까요?"

"할 거예요."

"어떻게 확신해요?"

나는 계약서를 세 부째 복사하며 대답했다.

"갭돌이는 이걸 보고 웃을 거거든요. 물 새는 F급을 1억 4천에 사 가는 바보들이 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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