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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특약 7항

등기는 화요일 오전 열한 시에 넘어갔다. 등기소 창구 직원이 서류를 확인하며 잠깐 고개를 갸웃했다. 매매 대금 1억 4천에 현금 지급 내역이 없었으니까. 상계 합의서를 보여 주자 직원은 그걸 두 번 읽고 나서, 아무 말 없이 도장을 찍었다.

신림 9-4. 소유자 나철호 지분 100분의 49, 한소영 지분 100분의 36, 봉만수 지분 100분의 15.

"사장님, 왜 제가 더 많아요?"

"15를 빼고 나머지 85를 보증금 비율대로 나눠서요. 철호 씨가 8천, 한소영 씨가 6천. 소수점은 반올림했고요."

"아, 맞다."

철호는 등기권리증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등기소를 나왔다. 한소영은 사본을 클리어 파일에 넣었다. 색인 스티커가 하나 더 늘었다.

우리는 그 길로 9동 산 밑으로 갔다.


공장 지하실의 물은 여전히 발목까지 찼다. 이번엔 장화를 신고 갔다. 철물점에서 세 켤레를 샀다. 한소영은 장화에 출근복 차림이었는데, 그게 이상하게 잘 어울렸다.

"여기 진짜 B급이에요?"

한소영이 휴대폰 플래시로 물 밑의 푸른빛을 비추며 물었다. 어제 사무실에서 철호가 한 질문과 같았는데, 한소영의 목소리가 조금 더 떨렸다. 이제 이건 한소영의 땅이었다. 신혼집 돈으로 산 땅.

"광맥이 어디 있는지는 저도 몰라요. 미발견이라고만 나와요."

"…나와요?"

"제 감으로는요."

나는 말을 바꿨다. 한소영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벽을 따라 플래시를 비추기 시작했다. 콘크리트 틈마다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물이 광맥 쪽으로 끌려간다고 하셨죠. 그럼 물이 제일 많이 새는 데를 찾으면 되는 거 아니에요?"

나는 한소영을 봤다. 맞는 말이었다. 경리 하는 사람이 던전 하는 사람보다 빨랐다.

셋이 물줄기가 굵은 데를 찾아 벽을 따라 걸었다. 동쪽 벽도 남쪽 벽도 물줄기가 가늘었는데, 북쪽 벽, 계단 반대편 구석에서 물이 제일 세게 흘러내렸다. 콘크리트 틈이 손가락 하나 들어갈 만큼 벌어져 있었다.

"여기네요."

한소영이 플래시로 그 틈을 비추는 동안 나는 틈 앞에 섰다. 매물창은 그대로여서, 광맥 칸에는 미발견이라고만 떠 있었다. 내 눈은 등급과 자원이 뭔지는 보여 줘도, 그게 벽 속 어디에 묻혀 있는지는 안 보여 줬다.

"이 벽을 뚫어야 되나."

"뚫으면 무너지지 않아요?"

"무너질 수도 있죠."

그때 뒤에서 철호가 말했다.

"사장님, 잠깐만요. 제가 볼게요."

철호가 장화로 물을 튀기며 첨벙첨벙 다가오다가, 북쪽 벽 두 걸음 앞에서, 물 밑 무언가에 걸렸다.

철호가 앞으로 넘어졌다.

정확히는 벽으로 넘어졌다. 두 팔을 앞으로 뻗은 채, 얼굴부터. 벌어진 콘크리트 틈에 철호의 손바닥이 먼저 닿았다. 그리고 철호의 몸무게가 그 손바닥 위로 실렸다.

벽이 안으로 꺼졌다.

콘크리트 한 덩어리가 철호의 손과 함께 벽 너머로 떨어져 나갔다. 철호의 상체가 그 구멍으로 반쯤 빨려 들어갔다. 철호가 비명을 지르는 사이 나는 허리띠를, 한소영은 다리를 붙잡고 잡아당겼다.

구멍에서 빠져나온 철호는 얼굴이 흙과 물로 범벅이었고, 코에서 피가 조금 났다.

"…죄송해요. 또 넘어졌어요."

"괜찮아요? 어디 다쳤어요?"

"코만요. 저 원래 잘 넘어져요. 스킬이 그래요."

"스킬이요?"

"[행운 F]요. 근데 행운은커녕 맨날 넘어지기만 해요. 짐꾼 할 때도 맨날 넘어져서 잘렸어요."

철호가 코피를 손등으로 닦으며 웃었다. 부끄러운 웃음이었다.

한소영이 철호 뒤의 구멍에 플래시를 비추더니 숨을 들이켰다. 벽 너머에 작은 방이 있었다.

염료 창고를 지을 때 막아 버린 공간 같았다. 사람 하나가 겨우 설 만한 크기였다. 그 방의 바닥과 벽에서 물이 솟고 있었다. 그리고 물 밑에, 벽 속에, 푸른빛이 박혀 있었다.

주먹만 한 푸른 돌들이 벽의 흙 속에 줄줄이 박혀 있었는데, 플래시를 옮길 때마다 하나씩 더 보였고 물이 그 돌들 쪽으로 빨려 들어가듯 흘러갔다.

광맥이었다.

나는 그 앞에서 매물창을 다시 봤다. 매장 자원 칸의 글자가 바뀌어 있었다. 중급 마정석, 광맥, 발견.

미발견이 발견이 됐다.

한소영은 아무 말 없이 플래시를 쥔 손을 내렸고, 철호는 코피를 닦다 말고 구멍 안을 들여다봤다.

"…저거 뭐예요?"

"마정석이요. 중급."

"하나에 얼만데요?"

"300만 원쯤이요."

철호가 손가락으로 구멍 안의 돌을 세다가 다섯에서 멈췄다. 플래시 빛이 닿지 않는 안쪽에도 푸른빛이 희미하게 이어졌다.

"…사장님."

"네."

"제가 넘어져서 찾은 거예요?"

"네."

철호는 한참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물속에 첨벙 주저앉았다. 장화 안으로 물이 들어가는 소리가 났지만 철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사장님, 저 사장님 밑에서 일할게요!"

"…네?"

"저 짐꾼도 잘리고 할 데가 없어요. 근데 사장님은 던전 볼 줄 알잖아요. 저는 넘어지면 뭐 찾고. 같이 하면 되잖아요!"

나는 물속에 주저앉은 스물셋짜리를 내려다봤다. 코피가 아직 덜 멈춘 얼굴이었다. 직원을 둘 형편은 못 됐다. 월세도 반밖에 못 냈다.

그런데 이 던전의 15퍼센트는 내 거였다. 그리고 광맥이 발견됐다.

"…월급은 일단 마정석 팔리면 줄게요."

"네!"


목요일 오후, 갭돌이가 우리 사무실 문을 발로 차고 들어왔다.

체크무늬 재킷 대신 구겨진 티셔츠에 슬리퍼 차림이었고, 손에 쥔 휴대폰 화면에 관리청 지정 업체의 매입 공고가 떠 있었다. 신림 9-4발 중급 마정석 다섯 개, 1,500만 원 매입 완료.

"사장님. 이거 뭐예요."

"마정석이요."

"9-4에서 나왔다는데요."

"네. 철호 씨가 넘어져서 찾았어요."

갭돌이의 얼굴이 하얬다가 빨갰다가 다시 하얬다. 순한 얼굴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거 B급이었어요? 알고 있었죠? 사장님 알고서 나한테 1억 4천에 산 거죠? 이거 사기예요. 나 계약 취소할 거예요."

나는 책상 위 서류철에서 계약서 사본을 꺼냈다. 3쪽을 펼쳤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계약서 3쪽 특약 7항, 읽어 보셨어요?"

갭돌이가 계약서를 내려다봤다. 매매 목적물은 계약일 현재 상태대로 인도하며, 추후 감정 결과 및 매장 자원이 다르게 확인되더라도, 매도인과 매수인은 이를 이유로 계약의 해제, 취소 또는 대금의 증감을 청구할 수 없다.

"사장님이 좋다고 하셨잖아요. 보호 조항이라고."

갭돌이의 입이 벌어졌다.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사장님. 그 땅 원래 F였어요. 공인 감정서에 F라고 적혀 있었어요. 사장님이 받아 온 감정서요. 저희도 F라고 알고 산 거예요. 그렇게 7항에 적혀 있잖아요. 매수인은 공인 감정서상 등급 F를 확인하였다."

갭돌이가 계약서를 움켜쥐자 종이가 구겨졌다. 사본이었다. 원본은 한소영의 클리어 파일 안에, 색인 스티커와 함께 들어 있었다.

갭돌이는 한참 그 자리에 서 있다가, 계약서 사본을 바닥에 던지고 나갔다. 문에 달린 종이 사납게 울렸다. 이번엔 콧노래가 없었다.

나는 바닥의 구겨진 사본을 주워 펴서 책상 위에 올려놓고, 오늘 네 잔째 커피믹스를 탔다.

창밖으로 갭돌이가 골목을 걸어가는 게 보였다. 걸으면서 휴대폰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는데, 손짓이 컸다. 위에서 돈 대 주는 사람일 거다.

나는 책상 위의 사본을 한 번 더 톡톡 쳤다. 3쪽, 특약 7항. 십 년 전 신림역 앞 상가 계약서에는 이런 조항이 없었다.

마정석 다섯 개에 1,500만 원, 내 몫 15퍼센트는 225만 원이었다. 나는 김 사장에게 문자를 썼다. 마침표는 하나만 찍었다.

사장님, 나머지 180 내일 오전에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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