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급 헌터 기획사1화 EN繁中

1화

종영

"대표님, 차 빼야 합니다. 지금 당장요."

막내 로드매니저의 목소리가 떨렸지만, 한도윤은 휴대폰 두 대를 양쪽 귀에 하나씩 댄 채로 손바닥만 들어 보였다. 왼쪽은 방송국, 오른쪽은 대피소였다.

"PD님, 네, 오늘 녹화는 취소죠. 하늘에 구멍이 났는데 무슨 녹화를 합니까. 아뇨, 출연료는… 그건 계약서 다시 보고요. 천재지변 조항이 있었던가. 네, 그건 살아서 다시 얘기해요."

왼쪽 통화를 끊자마자 오른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네, 대피소요. 다섯, 아니 네 명이요. 네 명. 지금 출발합니다."

밴 뒷좌석에는 네 명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데뷔 6년 차 걸그룹, 음원 차트 최고 기록 87위. 소속사가 빚 때문에 그룹을 팔아넘겼고, 팔려 간 곳에서 버려진 뒤로는 도윤이 사비로 굴리고 있었다. 회사가 없어진 뒤에 들인 로드매니저는 그를 대표님이라고 불렀지만, 멤버들은 연습생 때부터 부르던 실장님을 끝내 바꾸지 않았다. 원래는 다섯이었다. 막내가 창밖을 보다가 물었다.

"실장님, 우리 진짜 죽는 거예요?"

"안 죽어. 대피소 예약해 놨어."

"대피소도 예약이 돼요?"

"매니저 10년 차한테 안 되는 예약이 어디 있냐."

사실 대피소는 예약 같은 게 되는 곳이 아니었다. 도윤은 그저 안면 있는 구청 공무원에게 소주 세 병을 사 주고 줄 앞쪽 자리를 부탁해 두었을 뿐이었다. 매니저 일이라는 게 대개 그랬다. 안 되는 걸 되는 것처럼 말해 놓고, 뒤에서 어떻게든 되게 만드는 일.

밴이 출발했다. 창밖으로 서울이 무너지고 있었다.


게이트가 처음 열린 지 꼭 10년째 되는 해였다.

처음에는 성수동 공사장에 지름 2미터짜리 구멍 하나가 생겼을 뿐이었다. 그 안에서 괴물이 기어 나왔고, 괴물과 맞붙을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사람들은 그들을 헌터라고 불렀고, 헌터는 금세 직업이 되었고, 직업은 산업이 되었다. 산업이 되자 당연하다는 듯 기획사가 생겼다. 제우스 길드 같은 곳들이 재능 있는 헌터를 캐스팅해 굴리고, 쓰고, 다 쓰면 버렸다.

도윤은 그 산업 바깥에 있는 사람이었다. 아이돌 매니저, 그것도 망한 아이돌의 매니저.

그런데 오늘만큼은 바깥이라는 게 없었다. 광화문 위의 하늘이 지름 3킬로미터로 찢어져 있었고, 지난 10년 동안 생긴 게이트를 전부 합친 것보다 큰 그 구멍에서 괴물이 쏟아져 나왔다. 헌터들은 첫 한 시간을 버텼고, 그다음부터는 버티지 못했다.

"실장님, 저기요."

막내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대게이트 바로 위에 거대한 숫자가 떠 있었다. 서울 하늘을 반쯤 덮을 만한 크기의, 빛으로 된 숫자였다.

【 1,204 】

도윤은 그 빛을 본 적이 있었다. 게이트 근처에서 찍힌 헌터 직캠 영상들을 돌려 볼 때마다 화면 구석에 노이즈처럼 스쳐 가던 희미한 얼룩. 다들 화질 문제라고 넘겼고, 도윤도 그랬다. 그게 숫자였다는 걸 그는 지금 처음 알았다.

【 873 】

【 412 】

숫자는 줄어들고 있었다.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라디오에서 아나운서가 떨리는 목소리로 '카운트다운'이라는 말을 썼고, 거리의 사람들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같은 말을 했다. 저게 0이 되면 끝이었다.

막내가 도윤의 소매를 붙잡았다.

【 37 】

【 9 】

【 0 】

하늘이 하얗게 타올랐다.

도윤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백미러에 비친 뒷좌석이었다. 네 명이 서로 손을 잡고 있었고, 막내가 그를 보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 대신 도윤은 백미러 속 막내에게 턱을 한 번 까딱해 보였다. 대기실에서 무대로 내보낼 때마다 하던 신호였다.

"괜찮아. 다음 스케줄 있어."

하얀빛이 밴을 삼켰다.


알람은 오전 7시에 울렸다. 휴대폰 두 대가 동시에.

도윤은 눈도 뜨지 않은 채 손을 뻗어 두 대를 차례로 껐다. 10년 동안 몸에 밴 동작이었다. 그런데 손에 잡힌 기계가 이상하게 두툼했고, 엄지 끝에 닿는 화면이 작았다.

눈을 떠 보니 원룸 천장이었다. 망원동 보증금 500에 월세 40, 벽지 귀퉁이에 곰팡이가 핀, 10년 전에 살던 바로 그 방. 행거에는 정장 두 벌이 걸려 있었는데, 하나는 면접 때 산 싸구려였다.

창밖에서 배달 오토바이가 지나갔다. 하늘은 파랬고, 찢어진 데도 숫자도 없었다. 휴대폰 화면의 날짜는 정확히 10년 전 4월 9일이었다.

리모컨을 세 번 눌러서야 TV가 켜졌다. 건전지가 반쯤 나가 있던 것까지 그대로였다.

【속보】 성수동 '균열' 사흘째… 정부 "원인 조사 중"

화면 속에서 경찰 통제선 너머로 지름 2미터짜리 구멍이 보였다. 아나운서는 정체불명의 생물체 세 마리가 진압되었고, 진압 과정에서 일부 시민에게서 원인 불명의 신체 능력 향상이 관찰되었다고 담담하게 읽어 내려갔다.

첫 번째 게이트였다. 헌터라는 말도, 제우스 길드도, 헌터관리공단도, 헌터 계약서 양식 한 장도 아직 이 세상에 없는 때였다.

도윤은 TV를 끄고 책상 서랍에서 수첩을 꺼냈다. 10년 전의 그는 스케줄을 늘 수첩에 적었다. 휴대폰은 배터리가 나가면 그만이지만 수첩은 그럴 일이 없었으니까. 첫 장을 펼치자 손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름 넷을 적는 데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10년 동안 헌터 뉴스 헤드라인 맨 앞에 붙어 다니던 이름들, 등급표 맨 위 S급 칸에 나란히 오를 이름들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적으려니 볼펜이 느려졌다. 인터뷰에서 흘려들은 데뷔 전 고생담이나 예능에서 우려먹던 무명 시절 일화 같은 걸 하나씩 끌어올려야 했다.

맨 위의 강태하 옆에만 메모가 길게 붙었다. 신림동 어느 PC방, 게임 서버 1위, 낮밤 바뀐 폐인. 사장 할머니가 무섭기로 동네에 소문난 집.

10년 뒤 세계에서 가장 강해질 이 넷은 전생에서 하나도 빠짐없이 제우스 길드에 들어갔고, 하나도 빠짐없이 혹사당했고, 대게이트가 열리기 전에 하나둘 망가졌다. 그날 서울을 지킬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았던 건 그래서였다.

어제까지, 그러니까 10년 뒤까지 도윤은 망한 매니저였다. 망한 그룹을 끝까지 붙잡고 있다가 같이 망한 사람. 그런 그가 지금 가진 건 단 하나였다. 누가 뜰지, 언제 뜰지, 그리고 지금 어디서 썩고 있는지.

도윤은 휴대폰 한 대로 신림동 PC방 위치를 검색하고, 다른 한 대로 통장 잔고를 열었다.

327만 원.

"캐스팅비로는 좀 모자라네."

혼잣말을 하고 나니 웃음이 나왔다. 상황이 나쁠수록 웃는 건 오래된 버릇이었다.

면접용 말고 다른 정장을 꺼내 입고 넥타이를 맸다. 거울 속 스물여덟 살의 얼굴에는 다크서클이 없었는데, 그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현관을 나서기 전에 그는 TV 위에 붙어 있던 사진 한 장을 떼어 수첩 사이에 끼웠다. 다음 주부터 출근할 회사가 면접 날 쥐여 준 소개 책자에서 오려 둔 연습실 사진이었다. 전생에 그가 처음 맡았던 그룹.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은, 그래서 아직 망하지도 않은 얼굴들.

도윤은 수첩을 안주머니에 넣고 현관문을 밀었다.

4월의 망원동에는 벚꽃이 지고 있었다. 하늘 한구석에서 아주 작은 숫자 하나가 깜빡였다.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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