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급 헌터 기획사6화 EN繁中

6화

오전 9시

강태하는 오전 9시 47분에 PC방 계단을 내려왔다.

후드티 모자를 코끝까지 눌러쓰고, 한 손으로 난간을 붙잡은 채 한 칸씩 내려오는 모습이 밤샘한 대학생 같았다. 실제로 밤을 새운 얼굴이었다.

눈 밑이 어제보다 더 검었다.

"9시라고 했잖아요."

"…9시에 일어났어요."

"몇 시에 잤는데요."

"8시요."

도윤은 손목시계를 봤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계약서 제5조, 수면 6시간 미만인 날은 활동을 쉰다. 자기가 써 놓은 조항이었다.

그 조항대로라면 오늘은 쉬어야 했다.

"…태하 씨, 오늘은 조항 예외로 할게요. 대신 내일부터는 진짜로 지켜요."

"아저씨가 쓴 조항을 아저씨가 깨요?"

"그러게요."

태하가 처음으로 모자 아래서 피식 웃었다.


도윤이 오말순의 돈으로 처음 산 것은 알루미늄 야구 배트 두 자루와 오토바이 헬멧 하나, 그리고 공사장용 무릎 보호대였다. 동네 스포츠용품점과 철물점을 돌며 산 것들이었다. 헌터 장비라는 말은 아직 이 세상에 없었다. 전생에서 그 말이 생긴 건 1년 뒤였고, 처음 나온 헌터 전용 보호구는 오토바이 헬멧을 개조한 거였다.

"이걸로 뭘 해요?"

태하가 배트를 받아 들고 물었다. 손에 쥐는 모양이 어색했다. 게임에서 검은 수천 번 휘둘렀겠지만 진짜 배트는 처음일 것이다.

"쥐 잡아요."

"쥐요?"

"신림역에서 본 그 쥐요."

도윤은 휴대폰 지도를 열었다. 망원 유수지. 한강 둔치 옆 빗물 펌프장이었다. 전생의 기억으로는 오늘 오전 10시 40분쯤 거기 작은 균열이 하나 열렸다. 신림역 것과 비슷한 규모였고, 고양이만 한 쥐가 네 마리 나왔다. 그날 펌프장 관리인이 다리를 물려 입원했다는 단신이 났었다.

"뉴스에 나는 거 보니까요, 그 구멍에서 나온 괴물을 직접 잡은 사람들이 갑자기 힘이 세져요. 성수동 공사장 인부들처럼요."

"…그래서 저보고 쥐를 잡으라고요?"

"네."

"그게 각성이에요?"

"그렇게 부르게 될 거예요."

태하는 배트를 내려다보더니, 그걸 어깨에 걸쳤다. 그러고는 도윤을 봤다.

"아저씨는요?"

"저는 안 잡아요. 저는 헬멧 들고 뒤에 있어요."

"아저씨 거 아니에요, 헬멧?"

"태하 씨 거예요."

도윤이 헬멧을 내밀었다. 태하가 그걸 받아 들고 한참 보다가, 후드티 모자를 벗고 헬멧을 썼다. 사이즈가 조금 컸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헬멧이 반 박자 늦게 따라 돌았다.

"…아저씨 이거 사이즈 몰라서 그냥 산 거죠."

"…네."


망원 유수지는 평일 오전이라 한산했다. 펌프장 건물 옆 공터에 자전거 두 대가 세워져 있었고, 둔치 산책로에는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노인 하나가 천천히 걷고 있었다.

도윤은 노인에게 다가갔다. 이번엔 고깔도 A4 용지도 없었다. 대신 오말순에게 빌린 형광 조끼를 입고 있었다. PC방 사장님이 동네 방범 순찰 때 입는 조끼였는데, 등에 '안전'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어르신, 죄송합니다. 이 근처 하수 점검이 있어서요. 30분만 저쪽으로 돌아가 주시겠어요?"

노인은 조끼 등판의 '안전' 두 글자를 한번 보더니 군말 없이 강아지 줄을 당겼다.

다음은 펌프장 관리인이었다. 관리실 창문 너머로 라디오를 듣는 중년 남자가 보였다. 전생에서 다리를 물린 그 사람이었다.

도윤은 창문을 두드렸다.

"선생님, 혹시 오늘 펌프장 지하 점검 일정 있으세요?"

"점검이요? 그런 연락 없었는데."

"구청에서 연락 갈 거예요. 혹시 모르니까 11시까지는 지하 내려가지 마시고 관리실에 계세요. 요즘 구멍 나는 거 뉴스 보셨죠?"

남자는 미심쩍은 얼굴이었지만, 등에 '안전'이라고 적힌 조끼를 입은 사람이 하는 말이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라디오 볼륨을 올렸다.

도윤은 관리실 창문에서 물러나며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렀다. 구청에서 연락 같은 건 오지 않는다. 그래도 저 사람이 11시까지 관리실에 있으면, 이번엔 다리를 물리지 않는다.

그거면 됐다.

10시 35분. 도윤과 태하는 펌프장 옆 공터, 빗물 배수구가 보이는 자리에 섰다.

10시 41분. 배수구 철망 아래 콘크리트 바닥이 들렸다.

"…진짜네."

헬멧 속에서 태하가 중얼거렸다. 이번엔 1분 늦은 걸 따지지 않았다.

균열은 맨홀 뚜껑만 했다.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 빛 사이로 쥐가 기어 나왔다. 고양이만 한 몸, 털 없는 꼬리 두 개. 한 마리.

두 마리.

도윤은 헬멧 두 번째를 쓰지 않았다. 애초에 하나밖에 안 샀다. 대신 태하 뒤에서 세 걸음 물러섰다. 매니저의 자리였다.

무대 옆, 카메라에 안 걸리는 곳.

첫 번째 쥐가 태하를 봤다. 뛰었다.

태하는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다. 반 걸음 옆으로 비켜섰다. 쥐가 태하가 있던 자리를 지나쳐 공터 바닥을 미끄러졌다. 신림역 약국 계단에서 쓰레기통을 걷어차던 그 판단이었다.

두 번째 쥐가 뒤따라 뛰었다. 이번엔 태하가 비켜서지 않았다. 대신 배트를 짧게 쥐고 아래에서 위로 올려 쳤다. PC방 모니터 속 캐릭터가 검을 올려 베던 궤적 그대로였다.

쥐가 공중으로 떴다가 콘크리트에 떨어졌다. 움직이지 않았다.

태하가 그대로 멈췄다. 헬멧 속에서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배트를 쥔 손이 떨리고 있었다.

"태하 씨?"

"…아저씨."

태하가 고개를 돌렸다. 헬멧이 반 박자 늦게 따라 돌았다. 헬멧 유리 너머의 눈이 이상하게 맑았다.

"쥐가 느려요."

"네?"

"방금 그 첫 번째 쥐요. 다시 오는데, 느려요. 엄청."

도윤은 공터 바닥을 봤다. 첫 번째 쥐가 몸을 털고 다시 태하 쪽으로 뛰고 있었다. 도윤의 눈에는 아까와 똑같은 속도였다.

태하의 눈에는 아니었다.

태하가 배트를 들었다. 이번엔 망설이지 않았다. 쥐가 뛰어오르는 순간, 배트가 옆으로 그어졌다. 한 번. 쥐가 공터 끝 풀숲까지 날아갔다.

나머지 두 마리는 균열 가장자리에서 머뭇거리다가 도로 빛 속으로 들어갔다. 균열이 천천히 닫혔다. 콘크리트 바닥에 금 간 자국만 남았다.

태하는 헬멧을 벗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붙어 있었다.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배트를 쥐었던 손바닥이 빨갰다.

"…아저씨, 저 지금 뭐가 된 거예요?"

도윤은 대답 대신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봤다. 10시 46분. 전생보다 3주 빠른, 검황의 첫 각성이었다.

전생의 태하는 이 순간을 오말순의 깨진 유리창 앞에서 맞았다. 할머니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 바로 옆에서. 그래서 그 뒤로 10년 동안 웃는 얼굴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지금 태하는 빨개진 손바닥을 보며, 어이없다는 얼굴로 조금 웃고 있었다.

"각성이요. 헌터가 된 거예요."

"…생각보다 별거 없네요."

그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두 분."

도윤이 돌아봤다. 펌프장 정문 쪽에서 남자 하나가 걸어오고 있었다. 회색 점퍼에 서류 가방, 목에는 공무원증이 걸려 있었다. 사십 대 중반쯤, 안경을 쓴 얼굴이었다. 손에는 클립보드를 들고 있었다.

남자는 금 간 콘크리트 바닥을 보고, 풀숲 쪽에 떨어진 쥐를 보고, 배트를 든 태하를 보고, 마지막으로 형광 조끼를 입은 도윤을 봤다.

"행정안전부 균열대응 임시전담반입니다. 방금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두 분이 누구신지 확인 좀 하겠습니다."

남자가 클립보드를 넘겼다. 거기 끼워진 서류가 생각보다 두꺼웠다.

"임시 신고 양식이 열일곱 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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