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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데뷔 무대

아스팔트가 갈라지는 소리는 생각보다 낮았다. 땅속 깊은 데서 무언가가 기지개를 켜는 소리였다.

보수 자국의 사각형이 들렸다가 가운데부터 쪼개지더니, 그 틈으로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신림역 정류장보다도, 망원 유수지보다도 컸으니 맨홀 뚜껑 세 개를 이어 붙인 만큼이었다. 빛이 사거리 바닥을 타고 퍼지며 횡단보도 흰 선을 푸르게 물들였다.

그리고 틈에서 무언가가 기어 올라왔다.

늑대였는데, 늑대라고 하기엔 송아지만 했고 회색 털이 철사처럼 뻣뻣했으며, 송곳니가 입술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PC방 2층 창가에서 박 PD가 숨을 들이켰다. 캠코더의 빨간 녹화 불이 깜빡였다.

세 마리는 사거리 한가운데서 코를 쳐들고 사방을 둘러봤다. 셔터를 내린 순댓국집과 휴대폰 대리점, 약국과 편의점을 차례로 훑은 콧날이 PC방 건물 1층, 전생에서 깨졌던 그 유리창에서 멈췄다. 유리창 너머는 텅 비어 있었다.

불도 꺼져 있었다.

첫 번째 늑대가 고개를 돌렸다. 버스 정류장 쪽이었다.

분필 동그라미 안에 하키 헬멧을 쓴 청년 하나가 목검을 들고 서 있었다.


도윤은 순댓국집 셔터에 등을 붙인 채 숨을 참았다. 빈손이 자꾸 셔터의 골을 더듬었다.

첫 번째 늑대가 뛰었다.

도윤의 눈에는 회색 덩어리가 사거리를 가로지르는 게 보였는데, 망원동 쥐보다 훨씬 빨라서 10미터를 두 번 만에 뛰어 건넜다.

태하는 늑대가 뛰어오르는 순간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송곳니가 헬멧 앞 1미터까지 왔을 때, 태하의 오른발이 반 걸음 옆으로 미끄러졌다. 늑대는 태하가 있던 자리를 물었지만 거기엔 빈 공기뿐이었다.

목검이 아래에서 위로 그어졌다. 늑대의 턱 밑으로.

떡갈나무 목검이 뼈에 닿는 둔탁하고 짧은 소리가 사거리에 울렸다. 늑대의 몸이 공중에서 반 바퀴 돌아 보도블록에 떨어졌고, 몸을 일으키려다 다리가 꺾이고, 다시 일어서려다 또 꺾였다.

태하는 그 틈을 주지 않고 목검을 두 번째로 내려쳤다. 이번엔 정수리였다.

늑대가 움직이지 않았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늑대가 사거리 한가운데서 멈춰 서서, 쓰러진 첫 번째를 보고 동그라미 안의 청년을 봤다. 낮게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 뛰지는 않았다.

다큐멘터리에서 봤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전생의 기억이었다. 4월 30일 신림동 사거리, 첫 번째 늑대가 PC방 유리창에 머리를 박고 쓰러지자 나머지 둘이 그 자리에서 머뭇거리다가 구멍으로 도로 들어갔다. 그 머뭇거림 덕분에 유리 파편에 다리를 베인 할머니가 기어서 2층으로 피할 수 있었다.

이번에 그 머뭇거림을 만든 건 태하의 목검이었다.

두 번째 늑대가 한 걸음 물러나자 세 번째도 따라 물러났다. 그런데 세 번째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PC방 건물 2층 창가 쪽이었다.

도윤은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2층 창가에서 박 PD가 캠코더를 들고 창문에 바짝 붙어 있었다. 더 좋은 각도를 잡으려고. 그 옆에서 오말순이 박 PD의 조끼 자락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세 번째 늑대가 PC방 건물 쪽으로 뛰었다.

1층 유리창. 그 위가 2층 창가였다. 전생에서 늑대가 뛰어든 바로 그 유리창. 이번엔 그 바로 위, 2층 창가에 사람이 있었다.

"태하 씨!"

도윤이 소리쳤다. 매니저 생활 10년 동안 무대 옆에서 소리를 지른 건 이번이 세 번째였다.

태하가 이미 뛰고 있었다.

동그라미 밖으로 나와 사거리를 가로질러, 세 번째 늑대의 옆구리를 향해 대각선으로. 도윤의 눈에는 태하가 늑대보다 느려 보였다. 늑대가 먼저 유리창에 닿을 것 같았다.

늑대가 1층 유리창을 향해 뛰어올랐다.

태하가 목검을 던졌다.

떡갈나무 목검이 공중에서 두 바퀴를 돌아 늑대의 뒷다리에 맞았다. 늑대의 몸이 공중에서 틀어지며 유리창 대신 그 옆의 콘크리트 기둥에 부딪혔다.

늑대가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태하가 그 위에 닿았는데, 목검은 기둥 아래 굴러가 있어서 맨손이었다.

도윤은 그다음을 똑똑히 보지 못했다. 태하가 늑대의 목덜미를 무릎으로 누르고, 기둥 아래 목검을 집어 들고, 다시 내리치는 것까지가 한 동작처럼 보였다. 늑대가 몇 번 버둥거리다가 멈췄다.

두 번째 늑대는 사거리 한가운데서 그 모든 걸 보고 있다가, 몸을 돌려 갈라진 틈으로 뛰어들어 푸른빛 속으로 사라졌다.

틈이 천천히 닫혔다. 아스팔트 위에 금 간 자국과 늑대 두 마리, 그리고 목검을 쥔 채 숨을 몰아쉬는 청년 하나가 남았다.


사거리가 조용했다.

순댓국집 셔터가 반쯤 올라가고 사장이 고개를 내밀었다. 약국 셔터가 올라가고 약사가 안경을 벗은 채 나왔다. 편의점 점주가 셔터를 끝까지 올리고 문 앞에 섰다. 팔짱은 끼지 않았다.

PC방 2층 창문이 열리고 오말순이 고개를 내밀었다.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내려다봤다. 1층 유리창은 멀쩡했다. 그 옆 기둥에 늑대 머리 모양으로 금이 가 있었다.

태하가 헬멧을 벗자 땀이 턱 끝에서 떨어졌다. 그는 목검을 내려다보고, 늑대를 내려다보고, 마지막으로 2층 창가를 올려다봤다.

"…할머니, 괜찮아요?"

"니는?"

"저는 괜찮아요."

"그럼 됐다."

할머니가 창문을 닫았다.

박 PD가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캠코더를 든 채였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는데, 눈은 이상하게 번들거렸다.

"도윤 씨. 도윤 씨."

"PD님, 창문에 너무 붙으셨어요."

"알아요. 미안해요. 근데 도윤 씨."

박 PD가 캠코더 액정을 도윤 앞에 내밀었다. 방금 찍은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2층 창가의 높은 각도, 사거리 전체가 한 화면에 들어오는 구도. 푸른빛, 세 마리의 늑대, 동그라미 안의 청년. 그리고 사거리를 가로지르는 대각선 질주와 공중에서 두 바퀴를 도는 목검.

"이거 그림 돼요. 아니, 그림이 아니라… 이거 진짜예요."

도윤은 액정을 봤다. 화면 속 태하는 작았다. 얼굴도 거의 안 보였다. 하키 헬멧과 목검과 후드티. 그런데 그 작은 사람이 사거리 한가운데서 혼자 서 있는 모양이, 이상하게 눈을 붙잡았다.

10년 동안 무대 옆에서 수백 번 봤던 장면이었다. 아직 아무도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처음으로 무대 한가운데 서는 순간.

경찰차 사이렌이 다가왔다. 문재석이 보낸 순찰차였다. 그 뒤로 회색 점퍼를 입은 남자 하나가 클립보드를 들고 내렸다.

도윤은 그 남자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서류가 또 열일곱 종일 것이었다.

그날 밤 9시, 박 PD의 케이블 채널 마감 뉴스 끝에 1분 40초짜리 영상이 붙었다. 다음 날 아침 그 영상은 포털 메인에 걸렸다.

【속보】 신림동 사거리 균열… 시민 각성자, 괴생명체 단독 제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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