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동선
4월 29일, 신림동 사거리 상인회 긴급 모임은 순댓국집 안쪽 방에서 열렸다.
모인 건 순댓국집 사장, 휴대폰 대리점 점장, 맞은편 약국 약사, 편의점 점주, 세탁소 부부, 그리고 상인회 총무 오말순까지 일곱 명이었고, 상인회 회원이 아닌 도윤은 앉을 자리가 없어 문간에 서 있었다.
"그러니까 말순 언니 말은, 내일 오후 4시에 저 사거리 한가운데 구멍이 난다는 거죠?"
순댓국집 사장이 소주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믿는지 안 믿는지 모를 목소리였다.
"내 말이 아니라 저 총각 말이다."
오말순이 턱으로 도윤을 가리켰다. 일곱 명의 눈이 한꺼번에 도윤에게로 왔다. 도윤은 그 시선을 받으며 10년 전, 아니 10년 뒤의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데뷔 쇼케이스 전날 공연장 주변 상인들한테 소음 양해를 구하러 다니던 밤. 그때도 일곱 명쯤이 이렇게 쳐다봤다.
"내일 오후 3시 반부터 5시까지만 가게 문 닫아 주세요. 셔터까지 내려 주시면 더 좋고요. 그리고 사거리 쪽 창가에는 서 계시지 말아 주세요."
"그 시간이 제일 손님 많을 땐데."
편의점 점주였다. 오십 대 남자였는데, 팔짱을 끼고 있었다.
"압니다."
"한 시간 반이면 우리 가게 매출이 얼만 줄 알아요?"
"…모릅니다."
도윤은 정직하게 대답했다. 정말 몰랐다. 점주가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근데 그 구멍에서 나오는 게 유리창을 깨요. 제가 아는 바로는요."
순댓국집 사장이 소주를 한 잔 더 따랐다. 세탁소 부부가 서로를 쳐다봤다. 약사가 안경을 벗어 닦았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 휴대폰 대리점 점장이 휴대폰을 내밀었다. 신림역 정류장 영상이었다. 조회수는 이제 300만이었다.
"이거, 이 사람이잖아요. 약국 앞 계단에."
약사가 안경을 다시 쓰고 화면을 봤다. 그러고는 도윤을 봤다.
"…그날 우리 가게 앞이었어요. 쓰레기통 굴러간 거 제가 치웠는데."
세탁소 아저씨가 처음으로 휴대폰 화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오말순이 상 위에 손바닥을 올려놨다.
"내는 문 닫는다. 2층 PC방도 닫는다. 손님들 다 내보내고. 니들은 니들 알아서 해라. 근데 하나만 말하꾸마."
할머니가 일곱 명을 하나씩 둘러봤다.
"이 총각이 3주 전에 신림역 구멍을 맞췄다. 그다음 날에는 망원동 구멍을 맞췄다. 내일 안 맞으면 나는 3천 날리고 이 총각 콩팥 판다. 근데 맞으면, 니들 가게 유리값은 누가 물어 주노?"
방 안이 조용해졌다.
편의점 점주가 팔짱을 풀었다.
"…한 시간 반이죠?"
4월 30일, 오후 2시.
도윤은 사거리 한가운데 서서 바닥을 내려다봤다. 횡단보도 흰 선 네 줄이 교차하는 자리, 아스팔트에 오래된 보수 자국이 사각형으로 남아 있었다. 전생 뉴스 화면 속에서 바로 그 자리가 갈라졌다.
그는 수첩을 펼쳐 사거리를 그렸다. 매니저 10년 동안 공연장 동선도를 수백 장 그렸다. 무대, 객석, 출입구, 비상구, 대기실에서 무대까지 아티스트가 걷는 길. 종이 위의 무대가 사거리로 바뀌었을 뿐, 그리는 방식은 그때와 똑같았다.
균열 위치, 사거리 정중앙. 전생 기록으로는 회색 늑대처럼 생긴 놈이 세 마리. F급. 처음 5분 동안 사거리를 헤매다가, 그중 한 마리가 PC방 건물 1층 유리창으로 뛰어들었다. 왜 하필 거기였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유리창 너머에 사람이 서 있었기 때문일 거라고, 나중에 누군가 말했다.
오늘은 그 유리창 너머에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늑대는 어디로 가는가.
도윤은 순댓국집과 휴대폰 대리점과 약국과 편의점, 사거리 네 모퉁이를 하나씩 봤다. 전부 셔터를 내리기로 한 가게들이었다. 그렇다면 남는 건 사람이 서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사람은 단 한 명만 서 있을 예정이었다.
사거리 정중앙에서 대각선으로 10미터. 버스 정류장 앞 인도.
"태하 씨는 여기 서요."
오후 3시, 도윤은 그 자리에 분필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태하가 그 안에 섰다. 목검을 쥐고, 헬멧 대신 오말순이 어디서 구해 온 하키용 헬멧을 썼다. 이번엔 사이즈가 맞았다.
"왜 여기예요?"
"뒤에 아무것도 없어요. 버스 정류장 유리 벽은 아까 철거 업체 불러서 뺐어요. 옆에 가로수 하나. 늑대가 오면 정면에서만 와요."
"…철거 업체요?"
"할머니 돈으로요. 정류장 유리 벽 하나 빼는 데 30만 원."
태하가 동그라미 안에서 발을 굴러 봤다. 단단한 보도블록이었다.
"아저씨, 저 이거 게임 아니에요."
"알아요."
"게임에선 죽으면 다시 해요."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수첩의 동선도를 태하 앞에 내밀었다. 사거리, 균열, 세 개의 화살표. 그리고 동그라미 하나.
"첫 번째 놈은 무조건 태하 씨한테 와요. 여기밖에 사람이 없으니까. 두 번째, 세 번째는 첫 번째를 따라와요. 늑대는 무리로 움직이니까. 그러니까 첫 번째를 빨리 쓰러뜨리면, 나머지는 망설여요."
"그건 어떻게 알아요?"
"…다큐멘터리에서 봤어요."
태하가 헬멧 안에서 도윤을 한참 쳐다봤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큐멘터리 얘기는 한 귀로 흘리는 얼굴이었다. 신림역도 망원동도 이 아저씨 말대로 됐다.
오후 3시 30분. 사거리의 셔터가 하나씩 내려갔다.
순댓국집이 먼저였는데, 사장은 셔터를 반쯤 내리다 말고 도윤 쪽을 한 번 보더니 끝까지 내렸다. 휴대폰 대리점, 약국, 세탁소. 편의점은 3시 45분에야 셔터를 내렸다. 점주가 계산대에서 마지막 손님을 내보내며 시계를 보고 혀를 찼다.
교통은 경찰이 막았다. 전날 밤 도윤은 문재석에게 전화를 했다. 내일 오후 4시, 신림동 사거리에 균열 가능성. 문재석은 한참 말이 없다가, 진술 거부한 사람의 제보를 경찰에 넘기려면 근거가 필요하다고 했다. 도윤은 근거가 없다고 했다. 문재석은 또 한참 말이 없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오후 3시 40분, 경찰차 두 대가 사거리 네 방향 진입로에 섰다. 순찰 강화라고 했다.
PC방 2층 창가에는 박 PD가 캠코더를 삼각대에 올려놓고 있었다. 그 옆에 오말순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할머니는 창가에서 반 걸음 물러서 있었다. 도윤이 그렇게 부탁했다.
도윤은 사거리 모퉁이, 순댓국집 셔터 앞에 섰다. 태하의 동그라미에서 15미터. 무대 옆, 카메라에 안 걸리는 곳이었다.
오후 3시 58분.
차도 사람도 없는 사거리는 조용했고, 신호등만 혼자 초록에서 빨강으로 바뀌었다. 바람에 편의점 앞 비닐봉지 하나가 굴러갔다.
태하가 목검을 고쳐 쥐었다. 헬멧 속에서 숨을 길게 내쉬는 소리가 15미터 떨어진 도윤에게까지 들렸다.
도윤은 휴대폰 두 대를 양쪽 주머니에 넣었다. 오늘은 통화할 일이 없어서 손이 비었다. 10년 동안 손이 빈 채로 무대 옆에 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후 4시.
사거리 정중앙, 오래된 보수 자국이 사각형으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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