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곱 번째 약혼자는 죽지 않는다2화 EN繁中

2화

상견례

크로웰 저택의 응접실은 북부 대가문의 위세를 증명하려는 듯 천장이 높고 창이 길었으며, 벽마다 걸린 조상들의 초상화가 금박 액자 속에서 방문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흘 내리 이어지던 비가 그친 오후라 창으로 들어온 햇빛은 맑았지만, 그 빛조차 이 방에 들어서면 대리석 바닥에 닿기 전에 한 번 식는 것 같았다.

시온 아르덴은 그 방 한가운데 서서 자신이 입은 예복의 소매 끝을 내려다보았다. 왕실 기사단의 정복은 그가 가진 옷 가운데 가장 비싼 것이었으나, 금사로 짠 커튼 아래에서는 어쩐지 빌려 입은 옷처럼 보였다. 평민 출신이 귀족의 응접실에 서면 늘 그랬다. 칼을 쥘 때는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종류의 불편함이었다.

"앉게."

게랄트 크로웰 공작의 목소리는 짧았다. 벽난로 옆 높은 등받이 의자에 앉은 공작은 쉰을 넘긴 나이에도 등이 곧았고, 회색 눈은 사람을 볼 때마다 저울에 올려 무게를 다는 눈이었다. 그 곁의 소파에는 공작부인 이졸데가 부채를 반쯤 펼친 채 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열아홉쯤 되어 보이는 금발의 아가씨가 따분하다는 얼굴로 손톱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시온은 공작이 가리킨 의자에 앉았고, 맞은편에 놓인 같은 모양의 의자는 아직 비어 있었다.

"아델라이드는 곧 내려올 걸세. 그 아이는 준비가 늘…."

"늦지요."

이졸데 공작부인이 부채 너머로 말을 받았다. 목소리는 꿀처럼 부드러웠으나 그 꿀에는 바늘이 들어 있었다.

"아르덴 경, 미리 사과드려요. 저 아이가 사람 앞에 나서는 걸 몹시 어려워해서요. 그 일들이 있은 뒤로는 더더욱. 경께서는 용감하시군요. 일곱 번째라니."

"폐하의 명이었습니다, 공작부인."

"그렇겠지요. 폐하께서도 참."

부인이 말끝을 흐리며 웃자, 금발의 아가씨가 손톱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덧붙였다.

"언니랑 약혼하면 진짜 죽어요. 저는 경고했어요."

"셀린."

공작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고, 셀린은 입을 삐죽이며 다시 손톱으로 돌아갔다. 시온은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머릿속 수첩에 한 줄씩 적어 나갔다. 계모는 의붓딸에게 적대적이고, 이복동생은 언니의 혼사를 반기지 않으며, 공작은 아내와 딸의 말을 끊되 반박하지는 않는다.

수첩을 꺼낼 수 없는 자리였으므로, 그는 장갑 낀 손가락을 무릎 위에서 하나씩 접는 것으로 그 줄들을 대신 셌다.

응접실 문이 열린 것은 그때였다.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아델은 손가락 끝으로 드레스 허리선의 주름을 세 번 매만졌다. 짙은 남색 드레스는 상중(喪中)에 입기에 지나치게 어둡지도, 약혼자를 맞기에 지나치게 화사하지도 않았다. 이런 날 무엇을 입어야 하는지 그녀는 여섯 번의 연습 끝에 정확히 알게 되었다.

응접실 문 앞에서 숨을 한 번 고른 뒤 문을 밀었다. 네 쌍의 눈이 동시에 그녀에게로 향했다. 아델은 그 가운데 처음 보는 한 쌍을 골라내어,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리기 전의 반 박자 동안 재빨리 훑었다.

스물여섯, 아니면 스물일곱. 키는 문틀의 칠 할. 예복은 맞춤이지만 오래되어 어깨선이 닳았고, 구두는 밑창을 두 번 갈았어.

오른손 검지와 엄지 사이 굳은살. 그런데 왼손에도 같은 자리에 굳은살이 있지. 양손을 다 쓰도록 훈련받은 사람이야.

그리고 의자에 앉으면서 문과 창을 둘 다 볼 수 있는 쪽으로 몸을 틀어 놓았어. 약혼자가 앉는 방식이 아니야.

"아, 아델라이드 크로웰입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목소리는 작게, 끝은 떨리게. 아델은 무릎을 굽혀 인사한 뒤 비어 있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손은 무릎 위에 포개고, 시선은 그의 단추 세 번째쯤에.

"시온 아르덴입니다, 영애."

남자의 목소리는 그녀의 예상보다 낮았고, 예상보다 정중했으며, 예상대로 딱딱했다.

공작이 몇 마디 형식적인 말을 보탰다. 혼인 날짜는 반년 뒤로 하되 그사이 약혼자로서 저택 출입을 허락한다는 것, 왕실 기사의 직무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아델의 사교 일정에 동행해 달라는 것. 이졸데 공작부인은 부채를 접었다 폈다 하며 경께서 반년을 버티시면 좋겠다고 웃었고, 셀린은 끝내 손톱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버지는 한 번도 나를 보지 않으셨네.

아델은 그 생각을 더 이어 가는 대신 무릎 위에 포갠 손가락을 한 번 바꿔 쥐었다.

"두 사람에게 정원을 좀 보여 주는 게 좋겠구나."

공작이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것으로 상견례는 끝이었다. 아델은 의자에서 일어나며 맞은편의 기사를 한 번 더 보았다.

폐하께서 보낸 수사관이 나를 범인으로 보고 있다면, 그건 위험한 일이야.

그리고 쓸모 있는 일이기도 하지. 경비대 기록, 검시관 보고서, 학술원 문서고. 내가 들어갈 수 없는 곳에 들어가는 사람이니까.


크로웰 저택의 정원은 북부답게 화려하지 않았다. 키 낮은 회양목이 기하학적인 무늬로 길을 나누었고, 그 사이사이 늦게 핀 서리장미가 비에 젖은 꽃잎을 무겁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젖은 자갈길을 밟을 때마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시온은 영애보다 반걸음 뒤에서 걸었는데, 그것은 기사가 숙녀를 호위할 때의 거리였고, 수사관이 용의자를 관찰할 때의 거리이기도 했다. 영애의 뒷모습은 응접실에서보다 한결 작아 보였다. 남색 드레스 자락이 자갈 위를 스칠 때마다 젖은 흙이 조금씩 묻어났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영애께 몇 가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네, 네. 물론이에요."

"노아 베르텔 경과는 얼마나 알고 지내셨습니까."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시온은 그녀의 어깨를 보았다. 사람은 거짓말을 할 때 얼굴보다 어깨가 먼저 굳는다. 영애의 어깨는 굳지 않았고, 대신 자갈을 밟는 걸음이 아주 조금 느려졌다.

"석 달이요. 학술원 도서관에서… 처음 뵈었어요."

"베르텔 경이 앓아누우신 뒤로 문병을 가셨습니까."

"…두 번이요. 마지막 주에는 가족분들 외에는 들이지 않으셨어요."

"베르텔 경의 병세에 대해 무언가 들으신 게 있습니까. 의사의 소견이라든가."

영애가 걸음을 멈추고 서리장미 한 송이 앞에 섰다. 장갑 낀 손끝이 젖은 꽃잎을 가만히 건드렸다. 물방울 하나가 꽃잎을 타고 흘러내려 그녀의 장갑에 스몄다.

"폐병이라고만 들었어요. 그분은 기침을 하면서도 책을 놓지 않으셨대요."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고, 시온은 그 떨림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진짜일 수도 있었고, 아닐 수도 있었다. 그가 몇 해 전 놓친 그 귀족도 법정에서 꼭 저렇게 목소리를 떨었다.

"아르덴 경."

영애가 꽃잎에서 손을 떼고 돌아섰다. 시선은 여전히 그의 단추께에 머물러 있었다.

"경께서는 약혼자가 되러 오신 분치고는… 질문을 아주 많이 하시네요."

시온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 질문들을 하나하나 세고 있었는지가 먼저 궁금했다.

"죄송합니다. 직업병입니다."

"괜찮아요. 저도 궁금한 게 있어요."

영애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그를 똑바로 보았다. 아버지를 닮은 회색 눈이었으나, 그 눈은 무게를 다는 대신 맑은 물웅덩이처럼 들여다보는 쪽의 얼굴을 먼저 비추었다.

"경께서는 무섭지 않으세요? 여섯 명이었는데요."

시온은 잠깐 생각하다가 정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그것은 그가 가진 몇 안 되는 장점 가운데 하나였다.

"저주는 무섭지 않습니다, 영애. 사람이 무섭지요."

영애의 눈이 아주 잠깐, 깜빡이는 사이만큼 커졌다가 다시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렇군요."

그 뒤로 두 사람은 회양목 미로를 한 바퀴 더 걸었고, 날씨와 다음 주에 있을 랑베르 후작가의 무도회에 관해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영애는 무도회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고, 시온은 약혼자로서 동행하겠다고 했으며, 영애는 거기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원을 나와 현관 앞에서 인사를 나눌 때까지, 영애는 한 번도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않았다.

마차가 크로웰 저택의 철문을 빠져나가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펜 하워드가 기다렸다는 듯 다리를 꼬았다. 시온의 파트너 기사였고, 오늘은 마부석 옆자리에서 내내 저택 하인들의 동선을 세고 있었다.

"그래서, 사신 영애는 어때? 범인이야?"

시온은 대답 대신 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 오늘 적은 것들을 다시 훑었다. 계모와 이복동생과 공작, 문병 두 번, 그리고 폐병.

"…모르겠다."

"모르겠다? 네가?"

"정원에서 질문을 넷 했어."

"그래서?"

"그 여자가 걸음을 멈춘 게 정확히 네 번째 뒤였다. 베르텔의 병세를 물었을 때."

펜이 휘파람을 불었다. 시온은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수첩을 무릎에 대고, 폐병이라는 두 글자 옆에 작은 물음표 하나를 그려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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