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곱 번째 약혼자는 죽지 않는다4화 EN繁中

4화

랑베르 후작가의 무도회

랑베르 후작가의 무도회장은 루미에르에서 가장 큰 샹들리에를 가졌다는 자랑답게 천장에서 쏟아지는 수천 개의 촛불로 대낮처럼 밝았고, 그 빛이 바닥의 흰 대리석과 벽의 거울들에 몇 번씩 되비쳐서 사람들의 얼굴은 어디에 서 있어도 그림자 하나 없이 드러났다. 아델라이드 크로웰은 그 밝음이 싫었다. 숨을 곳이 없는 빛이었다.

입구에서 시종이 이름을 외치는 순간 무도회장의 소리가 한 박자 줄어들었다. 크로웰 공작가의 아델라이드 영애, 그리고 왕실 특무기사 시온 아르덴 경. 현악 사중주는 연주를 멈추지 않았으나, 그 앞에서 담소를 나누던 사람들의 입은 일제히 닫혔다가 조금 뒤에 전보다 낮은 소리로 다시 열렸다.

일곱 번째래.

굳이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들리는 말이었다. 아델은 시온의 팔에 얹은 손끝에 아주 조금 힘을 주었다. 겁먹은 영애가 약혼자의 팔에 기대는 모양새로 보이도록. 시온의 팔이 그 힘을 받아 미세하게 굳었다가 다시 풀렸다.

"영애, 괜찮으십니까."

"네, 네. 사람이 많아서요."

사람이 많은 건 상관없어. 그 사람들이 전부 나를 보고 있다는 게 문제지.

그리고 당신도, 지금 이 무도회장에서 나만 보고 있지 않지. 출구를 세고 있잖아.

공작부인 이졸데는 셀린을 데리고 일찌감치 무도회장 저편 후작부인의 무리 속으로 사라졌다. 출발할 때 마차 안에서 부인이 아델에게 한 말은 한 마디뿐이었다. 춤은 한 번만 추고, 구석에 있으라는 것. 셀린의 혼처를 찾는 자리에 사신 영애가 너무 눈에 띄면 곤란하다는 뜻이었다.

아델은 그 말을 그대로 따를 생각이었다. 구석은 무도회장에서 가장 많은 것이 들리는 자리였다.

첫 곡이 시작되자 시온이 그녀 앞에 손을 내밀었다. 약혼자로서의 의무였다. 아델은 그 손을 잡고 무도회장 한가운데로 나갔고, 둘레의 사람들이 마치 전염병이라도 피하듯 반걸음씩 물러나며 둥글게 자리를 내주었다.

춤이 시작되고 여덟 마디가 지나기도 전에 아델은 이 기사가 춤을 배운 적이 있되, 배운 지 오래되었거나 배운 대로 춰 본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왼발이 반 박자씩 늦었고, 회전할 때마다 그녀의 허리를 잡은 손이 지나치게 정확하게 같은 자리로 돌아왔다. 춤이라기보다는 검술 대련에서 상대의 중심을 붙드는 자세에 가까웠다.

세 번째 회전에서 그의 구두 끝이 그녀의 발끝을 밟을 뻔하였다. 아델은 밟히기 직전에 발을 반 치 거두었고, 그와 동시에 그의 손목을 아주 가볍게 눌러 다음 회전의 방향을 바꾸었다. 춤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영애가 박자를 놓쳐 휘청거린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시온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눈썹 사이에 아주 얕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영애."

"죄, 죄송해요. 제가 춤이 서툴러서…."

"아닙니다."

그 뒤로 남은 서른두 마디 동안 시온은 한 번도 그녀의 발을 밟을 뻔하지 않았다. 아델이 그때마다 미리 방향을 바꾸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곡이 끝났을 때 시온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였는데, 그 인사가 상견례 날보다 아주 조금 깊었다.

눈치는 빠르네.

춤이 끝나자 아델은 공작부인의 말대로 구석으로 갔다. 무도회장 동쪽 끝, 카드놀이 방으로 통하는 아치 옆에 놓인 기다란 의자였다. 아치 너머에서는 시가 연기와 함께 남자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귀부인들은 카드놀이 방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관례였고, 그 입구 옆 의자에 앉아 있는 영애를 신경 쓰는 사람도 없었다.

시온은 그녀를 의자에 앉히고 음료를 가져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아델은 그가 음료 탁자를 지나쳐 무도회장을 크게 한 바퀴 도는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약혼자 곁을 지키는 것보다 사람들 얼굴을 보는 쪽이 그에게는 더 중요한 모양이었고, 그쪽이 아델에게도 편했다.

아치 너머에서 카드 섞는 소리가 들렸고, 그 사이로 술에 취해 혀가 조금 풀린 목소리 둘이 오갔다.

"…그래서 결국 못 받았다고?"

"못 받았지. 죽은 놈한테 어떻게 받아. 해롤드 그 집 노모가 아들 빚은 모른다고 문을 걸어 잠갔는데."

"얼마였는데."

"말하기도 싫어. 그놈이 크로웰 지참금만 들어오면 한 번에 다 갚는다고 큰소리를 쳐서 내가 석 달을 더 기다려 줬거든. 그런데 약혼 발표 한 달 남짓 만에 말에서 떨어져 목이 부러졌으니."

아델은 무릎 위에 포갠 손가락 하나를 아주 조금 움직였다. 에드윈 해롤드 백작. 첫 번째 줄. 그가 도박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은 약혼이 발표되고 열흘쯤 지났을 때 이미 소문으로 들었다. 그러나 그 빚을 그녀의 지참금으로 갚을 생각이었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빚을 갚으려고 나와 약혼했다. 그건 놀랍지 않아. 사교계 혼사의 절반은 그런 거니까.

놀라운 건, 그 계산을 남 앞에서 큰소리로 떠들고 다녔다는 거지. 그렇다면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이 남자 하나는 아니었을 거야.

카드놀이 방 안에서는 패를 내려놓는 소리와 함께 그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근데 그 말 말이야. 그 녀석이 애지중지하던 흑마잖아. 그렇게 순한 놈이 갑자기 미쳐 날뛸 리가 있나."

"사신 영애 탓이라잖아. 약혼하고 나서 그 집 마구간에 영애가 한 번 다녀갔다더군. 그 뒤로 사흘 만에."

"허, 그럼 그 말이 영애를 보고…."

두 남자가 낮게 웃었다. 아델은 웃음소리가 그칠 때까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시온 아르덴은 무도회장을 한 바퀴 돌아 카드놀이 방의 다른 쪽 입구로 들어섰다. 영애가 앉은 아치의 반대편이었다. 기사단 정복 차림의 남자가 카드놀이 방에 들어와도 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사교 시즌의 무도회장에는 늘 젊은 기사 몇 명이 노름판 구경을 하러 섞여 들었다.

그는 벽난로 옆에 서서 노름판 하나를 구경하는 척하며, 방 저편 아치 근처 탁자의 두 남자를 보았다. 둘 다 얼굴이 붉었고, 그중 하나는 카드를 쥔 손을 자꾸 탁자에 내리쳤다. 그 사람이 에드윈 해롤드의 이름을 꺼냈을 때부터 시온은 듣고 있었다.

해롤드 백작은 도박 빚이 있었다. 그 빚을 크로웰 지참금으로 갚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약혼 뒤 영애가 해롤드가의 마구간에 다녀갔고, 그로부터 사흘 뒤 말이 날뛰었다.

시온은 그 세 문장을 머릿속에서 나란히 세워 보았다. 자기 지참금을 노리고 약혼한 남자가 있다는 것을 영애가 알았다면. 그 남자가 빚을 갚고 나서 그녀를 어떻게 대할지 짐작했다면. 그리고 그 남자가 아끼는 말이 있는 마구간에 직접 걸음을 했다면.

동기와 기회. 수사관이 맨 처음 세우는 두 기둥이었다. 시온은 그 두 기둥이 이토록 쉽게 세워지는 것이 오히려 마음에 걸렸다. 몇 해 전 그가 놓친 그 귀족도, 처음에는 모든 것이 너무 쉽게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법정에서 그 쉬운 것들이 하나씩 무너졌다.

그는 노름판 구경을 그만두고 방을 가로질러, 붉은 얼굴의 남자가 앉은 탁자 옆에 가서 섰다.

"실례합니다. 방금 해롤드 백작 이야기를 하셨습니까."

남자가 고개를 들었는데, 기사단 정복을 알아보는 데 반 박자, 그 정복을 입은 남자가 오늘 밤 누구와 함께 들어왔는지를 기억해 내는 데 또 반 박자가 걸렸다. 붉은 얼굴이 조금 하얘졌다.

"아, 아니, 그건 그냥 술자리 농담이고…. 경께서는 그, 일곱 번째…."

"해롤드 백작과는 어떤 사이셨습니까."

"…카드 친구였소. 그것뿐이오."

"영애께서 해롤드가 마구간에 다녀갔다는 이야기는 누구에게 들으셨습니까."

"그건, 그 집 마부가 그랬다던가, 아니 그 집 하인한테 누가 들었다던가…. 다들 아는 얘기요. 경,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시온은 그 이상 묻지 않았다. 술에 취한 노름꾼의 입은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이름을 묻자 남자는 굴드라고 대답하였고, 시온은 그것을 수첩에 적었다. 굴드, 해롤드의 채권자, 마구간 이야기는 하인에게서 전해 들음.

카드놀이 방을 나오면서 그는 아치 쪽을 돌아보았다. 기다란 의자에 영애가 앉아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무릎 위에 포갠 채로. 그가 자리를 뜰 때와 한 치도 다르지 않은 자세였다. 그 자리에서는 아치 너머의 목소리가 그대로 들렸을 것이다. 시온이 들은 것을 영애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영애의 얼굴에는 놀람이든 두려움이든 무엇 하나 떠올라 있지 않았다.

시온은 음료 탁자에서 레모네이드 두 잔을 들고 그녀에게로 걸어갔다. 영애가 고개를 들어 잔을 받으며 작게 감사하다고 말하였다. 장갑 낀 손가락이 잔을 감싸 쥐더니, 그 테두리를 천천히 한 바퀴 돌렸다.

"영애."

"네."

"해롤드 백작의 말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영애의 손가락이 잔 테두리 위에서 멈추었다. 아주 짧은 동안이었다.

"…네. 한 번이요. 에드윈 경이 보여 주고 싶다고 하셔서요. 아주 순한 말이었어요."

"그게 언제였습니까."

"약혼하고… 한 달쯤 지났을 때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굴드가 말한 것과도 맞았다. 다만 영애는 그 마구간에 다녀간 날로부터 사흘 뒤에 말이 날뛰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묻지 않은 것을 굳이 말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었으나, 시온은 그런 대답을 하는 사람을 많이 보아 왔다.

현악 사중주가 다음 곡을 시작하였다. 영애는 레모네이드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시온은 그녀 곁에 서서 무도회장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출구를 세지 않았다.


그날 밤 동관 이 층의 서재에서 아델은 검은 가죽 공책의 첫 번째 줄 옆에 작은 글씨로 몇 마디를 덧붙였다.

지참금으로 빚 청산 계획. 본인이 공공연히 떠듦. 채권자 굴드. 소문: 내 마구간 방문 사흘 뒤 사고.

펜을 내려놓고 그 줄을 오래 바라보았다. 마구간에 다녀간 날에서 사고까지 사흘, 소문이 옮긴 날수는 그녀의 기록과 하루도 어긋나지 않았다.

그날 그 마구간에 간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날 그녀는 그 순한 흑마의 여물통 앞에서, 에드윈이 자랑하던 귀리 자루에 찍힌 상인의 표식이 지난달과 다르다는 것을 보았다.

에드윈은 그날, 더 좋은 귀리로 바꿨다며 자루를 손바닥으로 두드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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