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발송 장부
시온 아르덴이 크로웰 저택에 예고 쪽지를 보낸 것은 해롤드가 마구간에서 돌아온 지 이틀 뒤였고, 그 쪽지에는 이번에도 영애와 정원을 걷고 싶다고 적었다. 다만 이번에는 쪽지와 함께, 깨끗이 빨아 다림질한 흰 손수건 하나를 작은 꾸러미에 싸서 동봉하였다. 모서리에 장미가 수놓인 그 손수건이었다. 기사단 세탁실의 늙은 하녀에게 동전 두 닢을 쥐여 주고 맡긴 결과였는데, 하녀는 장미 수가 망가지지 않게 하느라 애를 먹었다며 동전 한 닢을 더 받아 갔다.
답장은 그날 저녁 작고 단정한 필체로 왔는데, 손수건을 돌려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내일 오후 두 시에 정원이 비어 있다는 한 줄, 그리고 맨 아래에 집사 클로드가 경을 뵙고 싶어 한다는 추신 하나가 전부였다.
시온은 그 추신을 세 번 읽었다. 집사가 약혼자를 만나고 싶어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다면 영애가 집사를 핑계로 무언가를 건네려는 것이었다. 무엇을 건네려는지는 알 수 없었다. 시온은 답장을 접어 수첩 사이에 끼우고, 이튿날 입을 정복의 닳은 소매 끝을 손수 솔질하였다.
크로웰 저택의 집사실은 본관 일 층 서쪽 끝, 하인 전용 계단 바로 옆에 있었다. 방은 좁았지만 정갈하였고, 벽 한 면을 차지한 책장에는 같은 크기의 가죽 장부들이 연도별로 꽂혀 있었다. 클로드는 일흔의 나이에도 허리가 곧았으며, 시온이 들어서자 의자에서 일어나 정확히 허리를 한 번 굽혔다.
"아르덴 경. 영애께서 경께서 해롤드 백작가와 관련된 일로 궁금해하실 것이 있을지 모른다 하시어, 미리 장부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노인의 목소리에는 아무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그러나 장부를 미리 준비해 두었다는 말 자체가, 이 집사가 영애의 부탁을 몇 번 들어준 적이 있다는 뜻이었다.
책상 위에 펼쳐진 것은 이 년 전의 발송 장부였다. 저택에서 바깥으로 나간 모든 물건이 날짜와 받는 사람과 보낸 사람과 내용물까지 한 줄씩 적혀 있었다. 클로드가 손가락으로 짚은 페이지는 영애와 해롤드 백작의 약혼이 발표된 달이었고, 시온은 그 줄들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약혼 발표 이튿날, 공작 각하 명의로 해롤드 백작가에 은제 촛대 한 쌍. 약혼 선물의 격식에 맞는 것이었다. 사흘 뒤, 아델라이드 영애 명의로 손수 수놓은 손수건 한 장과 『말과 기수에 관하여』라는 책 한 권. 백작이 말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고른 모양이었다. 그리고 약혼 발표 열하루 뒤, 공작부인 명의로 해롤드 백작가 노모 앞으로 바구니 하나.
따로 적힌 바구니의 내용물은 남부 특산 말린 무화과, 꿀 한 단지, 레몬 절임, 그리고 남부 곡물 견본 한 자루였고, 시온의 손가락은 그 마지막 항목에서 멈추었다.
"이 곡물 견본은 무엇입니까."
"공작부인께서 그 무렵 남부 상인 몇 곳과 거래를 트셨습니다. 셀린 아가씨 혼수에 쓸 비단 때문이었지요. 상인들이 인사 삼아 이것저것 견본을 보내왔는데, 그중 곡물 견본이 저택에선 쓸 데가 없어 선물 바구니에 함께 넣으신 것으로 압니다. 백작께서 말을 많이 기르신다 하여."
"어느 상인이었습니까."
클로드가 넘겨 보인 것은 같은 달의 수입 장부였다. 남부 상인들로부터 들어온 견본 목록에 비단 상인 둘과 향료 상인 하나, 그리고 곡물 상인 하나가 적혀 있었고, 곡물 상인의 상호 옆에는 상인이 쓰는 표식을 집사가 옮겨 그린 작은 그림이 있었다. 붉은 원이었다. 귀리 자루가 파란 닻에서 붉은 원으로 바뀌었다고, 영애가 마구간에서 말한 바로 그 표식이었다.
시온은 수첩을 꺼내 그 그림을 똑같이 옮겨 그리고, 공작부인과 바구니와 남부 곡물 견본과 붉은 원을 한 줄로 적은 뒤 그 아래에 줄을 그었다. 의붓딸의 혼사를 반기지 않는 계모라는 동기는 이미 있었고, 이제는 계모가 보낸 바구니의 곡물 견본에서 그 곡물을 먹은 말을 거쳐 사흘 뒤의 낙마로 이어지는 경로까지 생긴 셈이었다.
그는 줄을 다 긋고 나서도 펜촉을 종이에서 떼지 못하였다. 무도회 날 밤 같은 수첩에 동기와 기회라고 적었을 때도, 몇 해 전 그 귀족의 사건 기록을 처음 펼쳤을 때도, 선은 꼭 이렇게 손쉽게 이어졌었다.
"바구니는 누가 꾸렸습니까."
"하녀장 마르타가 하녀들을 시켜 꾸렸을 겁니다. 배달은 마부 한스가 했고요. 그 기록은 마르타의 근무표에 있을 겁니다. 제 장부에는 물건만 적습니다. 사람은 적지 않습니다."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 장부를 덮은 뒤 시온을 똑바로 보았는데, 그 눈에 처음으로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경. 이 집에서 오십 년을 일했습니다. 공작부인께서는 차가운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 집에서 독을 쓰신 적은 없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독을 쓰는 분은 그렇게 큰 바구니를 보내지 않습니다."
시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노인의 말이 옳을 수도 있었으나 수첩에 증거로 적을 수 있는 말은 아니었으므로, 그는 노인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 집사실을 나왔다.
정원은 영애의 말대로 비어 있었다. 서리장미는 지난번보다 더 시들어 있었고, 회양목 사이로 바람이 낮게 지나갔다. 영애는 미로 입구의 돌 벤치에 앉아 무릎 위에 책 한 권을 펼쳐 놓고 있었다. 시온이 다가가자 영애는 책을 덮고 일어서서 인사하였는데, 그 손에는 그가 돌려보낸 흰 손수건이 쥐여 있었다.
"손수건, 감사합니다. 장미가 하나도 망가지지 않았네요."
"기사단 세탁실의 솜씨입니다."
"클로드는 만나 보셨어요?"
시온은 잠시 영애를 내려다보았다. 영애는 시선을 그의 단추께에 둔 채였고 묻는 목소리도 작고 공손하였으나, 그 물음에는 자신이 무엇을 보게 하려고 그를 집사실로 보냈는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람의 침착함이 있었다.
"만났습니다. 장부도 보았고요."
"그러시군요."
영애는 더 묻지 않고 미로 쪽으로 몸을 돌려 천천히 걷기 시작하였고, 시온은 호위하는 거리이자 관찰하는 거리인 반걸음 뒤에서 따라갔다. 그런데 오늘은 관찰당하는 쪽이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세 번째 모퉁이를 돌았을 때 영애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공작부인께서는 그해 봄 남부 상인 여럿과 거래를 트셨어요. 셀린 혼수 비단 때문에요. 그 상인들이 이것저것 견본을 보내왔고, 공작부인께서는 그걸 약혼 선물 바구니에 섞어 보내셨죠. 해롤드가뿐만 아니라, 그해 사교 시즌에 공작부인께서 인사를 차리신 집은 열두 곳이 넘었어요."
시온의 걸음이 아주 조금 느려졌다. 사교계의 바구니가 몇 곳으로 나갔는지까지 헤아려 둔 영애가, 정작 그 바구니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한마디도 덧붙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열두 곳에 다 곡물 견본이 들어갔습니까."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클로드의 장부에는 해롤드가 바구니만 적혀 있었을 테니까요. 다른 집으로 간 바구니는 공작부인의 시녀가 따로 챙겼다고 들었어요."
"누구에게 들으셨습니까."
영애가 그제야 고개를 조금 들어, 회색 눈으로 그를 비추며 대답하였다.
"저는 이 집에서 이십이 년을 살았어요, 아르덴 경."
시온이 할 말을 찾지 못하는 사이 영애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걸음을 옮겼다. 시온은 수첩을 꺼내는 대신 머릿속에 적었다. 바구니는 열두 곳 이상, 다른 바구니는 공작부인 시녀가 챙겼으며, 곡물 견본이 해롤드가에만 들어갔다면 의도이고 열두 곳 모두에 들어갔다면 우연이었다.
미로의 출구에서 영애가 돌아서더니, 손에 쥔 손수건을 도로 그에게 내밀었다.
"이건 경께서 가지고 계세요."
"…돌려 드린 것입니다만."
"알아요. 그런데 증거물이었잖아요. 증거물을 용의자에게 돌려주시면 안 되죠."
영애는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는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저택 쪽으로 걸어갔고, 시온은 손바닥 위에 놓인 흰 손수건을 내려다보았다. 장미 수가 반듯하였다.
용의자라는 말은, 그가 한 번도 그녀 앞에서 입 밖에 낸 적이 없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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