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손님
보름날 아침부터 진가장의 부엌은 전쟁터였다. 장씨 아주머니는 새벽 사경에 일어나 동파육에 쓸 돼지고기를 손질하였고, 소복은 아궁이 셋에 번갈아 장작을 밀어 넣느라 얼굴이 검댕투성이가 되었으며, 마부 노삼은 이른 아침부터 성내 시장을 두 번이나 오가며 장씨 아주머니가 잊었다는 생강과 팔각을 실어 날랐다. 안주인의 사촌 아우이자 무림맹의 군사가 오는 날이었다. 해마다 있는 일이었으나 해마다 이 집 하인들은 같은 소란을 피웠다.
소한에게 떨어진 일은 손님방 정리와 찻시중이었다. 왕 노인이 아침 일찍 그를 불러 그렇게 일렀다. 다른 하인들은 그것을 소한이 요즘 일을 잘하니 노인이 아끼는 것이라 여겼다. 소한은 그 말을 들으며, 노인이 자신을 손님 곁에 두어 무엇을 보려는 것인지 잠시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노인의 속을 셈하는 데 쓸 머리가 있으면 차 한 잔을 더 정성껏 우리는 편이 나았다.
손님방은 안채 동쪽 끝의 작은 별채였다. 창을 열면 연못이 내려다보였고, 연못가에는 부인이 손수 심은 작약이 막 봉오리를 맺고 있었다. 소한은 창틀의 먼지를 닦고, 이부자리를 볕에 내다 털고, 책상 위에 붓과 먹을 가지런히 놓았다. 전생에서도 이 방을 이렇게 치웠다. 서른 번은 넘었을 것이다. 손님은 해마다 같은 사람이었고, 해마다 방을 둘러본 뒤 정갈하다는 말을 남겼다.
해가 중천에 이르기 조금 전, 대문 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고, 소한은 빗자루를 챙겨 들고 마당 끝으로 나갔다. 대문 앞에 말을 세운 손님은 말 위에서도 단정하였다. 쪽빛 장포에 허리띠는 검소하였고, 등에 멘 검은 장식 하나 없는 평범한 것이었다. 마흔을 몇 해 앞둔 얼굴은 선비처럼 희고 온화하였으며, 수행원은 젊은 무사 둘이 전부였다. 무림맹의 군사라 하면 강호의 큰 문파들이 머리를 숙이는 자리였으나, 그 사람이 대문 앞에서 말을 내리는 모습은 먼 친척 집에 인사 온 선비와 다를 바가 없었다.
진천명이 대문까지 나가 그를 맞았다. 두 사람이 서로의 팔을 붙잡고 웃는 모습을 마당 끝에서 바라보며, 소한은 빗자루를 세워 든 채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주인의 웃음은 드문 것이었으나, 그 드문 웃음이 이 사람 앞에서만큼은 쉽게 흘러나왔다.
"형님, 일 년 사이에 수염이 더 검어지셨습니다."
"자네는 일 년 사이에 말이 더 늘었군."
유청송은 웃으며 부인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툇마루 아래서 부인의 손을 맞잡고는 어릴 적 소주 본가의 뒤뜰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었다. 두 사람은 소주 유가에서 함께 자란 사촌 남매였으니, 진천명이 유가의 딸과 혼인하던 날 신부의 사촌 아우와 신랑이 술을 나누다 의형제를 맺었다는 이야기는 이 집 하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것이었다.
그때 서연이 안채에서 뛰어나왔는데, 이번에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무서웠는지 버선을 제대로 신고 있었다.
"외숙부님!"
"오, 서연이구나. 그새 키가 또 컸구나. 이제 내 어깨까지 오겠다."
"어깨는 아직이에요. 가슴까지요."
유청송이 소매에서 작은 비단 주머니를 꺼내 서연에게 쥐여 주었는데, 안에 든 것은 옥으로 깎은 작은 검 모양 노리개였고, 그것을 본 서연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 아버지가 검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이 외숙부는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다음은 하인들 차례였으니, 유청송은 마당에 늘어선 하인들 앞을 천천히 지나가며 한 사람씩 이름을 불렀다. 장씨 아주머니, 올해도 동파육 기대하겠소. 노삼, 말이 살이 올랐구먼. 왕 집사, 허리는 여전하시오. 하인들은 이름이 불릴 때마다 허리를 한층 더 깊이 숙였고, 이름이 불리지 않은 자는 아직 없었다.
유청송의 걸음이 소한 앞에서 멈추었다. 온화한 눈이 소한의 얼굴을 잠시 더듬었다.
"너는……."
잠깐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그러고는 이내 웃었다.
"한아라고 했지? 작년에는 안마당을 쓸던 아이. 이름이 곱구나."
소한은 허리를 굽혔고, 굽힌 허리 아래서 손바닥에 땀이 배어나는 것을 느꼈다.
전생에서도 이 사람은 그랬다. 해마다 와서, 해마다 하인들의 이름을 하나도 틀리지 않고 불렀다. 마흔다섯의 소한은 그것이 강호에서 사람을 얻는 자의 덕이라고 여겼다. 큰 사람일수록 작은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법이라고, 왕 노인도 그렇게 말했었다. 그런데 열다섯의 몸으로 그 목소리를 듣자, 그 덕이 등줄기를 서늘하게 훑고 지나갔다.
천하의 무림맹 군사가 일 년에 한 번 보는 집 하인 아이의 얼굴과 이름을, 작년에 무슨 일을 했는지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소한은 그 서늘함을 오래 붙들지 않고, 열다섯의 몸이 아직 낯선 탓으로 돌렸다.
"예, 대협. 소한이라 하옵니다."
"그래, 소한. 잘 부탁하마."
저녁상은 안채 대청에 차려졌다. 동파육과 생선찜과 죽순 볶음이 오르고, 소흥 황주가 데워져 나왔다. 소한은 대청 문가에 서서 찻시중을 들었다. 주인과 손님 사이에 놓인 찻잔이 비면 채우고, 식으면 갈았다.
유청송은 오른손에 접은 부채를 쥔 채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이야기를 할 때면 부채 끝으로 허공에 무언가를 그렸고, 웃을 때면 부채로 입가를 가렸다. 소한이 찻잔을 내밀자 그는 부채를 쥔 손은 그대로 둔 채 다른 손으로 잔을 받았다. 말을 끊지 않고 차를 받는 데 익숙한 사람의 손놀림이었다.
"형님, 요즘 항주가 시끄럽다는 이야기가 맹에까지 들립니다."
"시끄러울 것까지야."
"흑풍방 말입니다. 방주 우괴가 새 사람을 들였다지요. 독을 다루는 자라고. 성내 약재상 몇 곳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소한은 찻주전자를 든 손을 멈추지 않았다. 장씨 아주머니의 부뚜막에서 들은 이야기가, 무림맹 군사의 입에서 다시 나오고 있었다.
진천명이 잔을 내려놓았다. 잔이 상에 닿는 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무거웠다.
"흑풍방은 성내 일이네. 관아가 있고, 조 포두가 있지."
"관아가 사파를 다스린 적이 있습니까, 형님. 조 포두는 좋은 사람이지만 게으릅니다. 맹에서 사람을 몇 보내 드릴까요. 형님 집 근처가 시끄러운 것은 저도 마음이 쓰입니다."
"필요 없네."
주인의 대답은 짧았고, 유청송은 더 권하지 않고 웃으며 잔을 들었다.
"형님은 여전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형님을 좋아하지요."
소한은 그 대화를 들으며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에도 주인은 맹의 도움을 거절했고, 그로부터 세 해 뒤 흑풍방의 불이 이 집을 삼켰다. 그때 맹의 사람들이 와 있었다면 달랐을까. 소한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 와서 보니, 이 다정한 의형제가 한 번 더 권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식사가 끝나 갈 무렵, 유청송이 수행원을 불러 상자 하나를 가져오게 하였다. 오동나무로 짠 작은 상자였다. 그는 그것을 부인 앞에 내려놓았다.
"누님, 소주 본가에서 만든 향입니다. 어릴 적 누님이 좋아하시던 백목련 향이지요. 숙부님께서 누님 몸이 약하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꼭 전해 드리라 하셨습니다. 잠자리에 피우시면 숨이 편해진다고."
부인이 상자를 열었다. 가늘게 빚은 향 다발이 비단에 싸여 있었다. 은은한 꽃 냄새가 대청에 퍼졌다. 부인은 향을 코끝에 대고 눈을 감았다.
"……본가 뒤뜰 냄새가 나는구나. 고맙다, 청송아."
서연이 어머니 어깨 너머로 고개를 내밀어 상자 안을 들여다보며 코를 벌름거렸다.
"어머니, 나도 하나만."
"너는 잠이 너무 많아서 안 된다."
대청에 웃음이 번졌다. 진천명도 웃었다. 그 웃음 속에서 소한은 빈 찻잔들을 거두어 쟁반에 담았다.
그날 밤 소한은 평소보다 늦게 바위터에 올랐다. 손님방 이부자리를 다시 펴고, 수행원 무사들이 묵는 행랑의 등잔에 기름을 채우고, 대청의 상을 다 물리고 나서였다. 별채의 창에는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 손님은 밤늦도록 책을 읽는 사람이었다.
바위 아래 구석에 서서 무릎을 굽히자, 아랫배 깊은 곳에서 그 온기가 깨어났다. 사흘 전 처음 느꼈을 때는 콩알만 하던 것이었다. 소한은 그 온기 위에 숨을 얹고, 검결의 첫 구절을 입속으로 읊었다.
기침단전.
온기가 숨을 따라 아주 조금 움직였는데, 사흘 전에는 꿈쩍도 하지 않던 것이었다.
소한은 그날 밤 대청에서 들은 이야기들을 머릿속에 늘어놓았다. 흑풍방, 독을 쓰는 새 부방주, 문 닫은 약재상, 관아와 게으른 조 포두, 그리고 맹의 도움을 거절한 주인까지.
세 해 뒤의 불이 전생에서처럼 흑풍방에서 온다면, 그 불이 어디서 어떻게 붙는지를 먼저 알아내야 했다. 그러려면 하인의 귀만으로는 모자랐다. 성 밖으로 나가는 다리가 필요했고, 흑풍방 근처를 기웃거려도 의심받지 않을 핑계가 필요했다.
노삼의 수레가 떠올랐다. 장터에 갈 일이 있으면 태워 주겠다던 마부의 말이.
소한은 숨을 내쉬었다. 아랫배의 온기가, 사흘 전보다 조금 더 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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