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칠식
북문 밖 시장은 항주성 안의 시장과는 냄새부터 달랐다. 성안의 시장이 비단과 차와 향의 냄새로 점잖게 차려입었다면, 북문 밖은 생선 비린내와 짐승 피 냄새와 값싼 술 냄새가 한데 엉겨 아무렇게나 굴러다녔다. 운하를 타고 올라온 짐꾼들과 성안에 발을 들이지 못하는 떠돌이 장사꾼들, 그리고 그들에게서 자릿세를 뜯는 사내들이 한데 섞여 아침부터 소란스러웠다.
노삼은 수레를 시장 어귀의 말 매는 곳에 세워 두고 마구상 쪽으로 사라졌다. 해가 중천에 오르기 전에 이 자리로 돌아오라는 한마디만 남겼다. 소한은 고개를 끄덕이고 시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품속에는 서연이 쥐여 준 엽전 꾸러미가 있었고, 머릿속에는 탕후루 다섯 개보다 훨씬 많은 것이 들어 있었다.
탕후루 가게는 시장 어귀에서 금방 눈에 띄었으니, 산사 열매를 꼬챙이에 꿰어 녹인 설탕을 입히는 늙은 부부의 좌판이었다. 소한은 다섯 개를 주문하고, 설탕이 굳기를 기다리는 동안 좌판 뒤편의 골목을 바라보았다. 골목 끝에는 문짝이 떨어져 나간 약재상 하나가 보였는데, 간판의 글씨는 비바람에 반쯤 지워져 있었다.
"저 가게는 언제 문을 닫았습니까."
설탕 솥을 젓던 노인이 고개를 들어 소한을 흘끗 보았다. 하인 차림의 소년이 묻는 말에 굳이 대답할 이유는 없었으나, 탕후루를 다섯 개나 산 손님이었다.
"한 달쯤 됐나. 흑풍방 놈들이 와서 물건을 몽땅 사 갔어. 값은 반값만 치르고. 주인 영감이 따지다가 팔이 부러졌지. 그 뒤로 문을 안 열어."
"무슨 물건을 사 갔답니까."
"그걸 내가 어찌 아나. 약재상에서 약재를 사 갔겠지. 근데 약재상 둘을 털었으면 무슨 약을 그리 많이 지으려는 건지. 흑풍방 놈들이 아플 데가 그렇게 많은가."
노인의 아내가 옆구리를 찌르며 골목 쪽을 눈짓하자 노인은 입을 다물었다. 소한은 탕후루 다섯 개를 기름종이에 싸 받아 들고 엽전을 넉넉히 치렀다. 노인은 거스름돈을 내밀다가 소한이 손을 젓자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 뒤로 반 시진 동안 소한은 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흑풍방의 자릿세 걷는 사내들은 둘씩 짝을 지어 다녔고, 허리춤에 칼을 찼으며, 좌판마다 들러 엽전을 거두어 갔다. 전생에서 소한은 그들 가운데 몇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화재가 난 뒤 관아 앞 형장에서 목이 잘린 셋 가운데 둘이 그 무리 속에 있었다. 그들은 지금 시장 바닥에서 생선 장수에게 엽전을 뜯으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그들이 세 해 뒤에 정말 불을 질렀는지, 소한은 이제 와서 확신할 수 없었다. 전생의 관아는 범인을 빨리 찾고 싶어 했고, 흑풍방 말단 셋은 잡기 쉬운 목이었다. 주인도 그렇게 여기셨고, 그래서 흑풍방을 뿌리째 뽑으셨다. 그때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모두가 여겼다.
그러나 약재상 둘을 털어 간 독쟁이 부방주의 이름은, 그 형장 어디에도 없었다.
진가장으로 돌아온 것은 해가 기울 무렵이었다. 소한은 탕후루 다섯 개를 안채 뒤 장독대 옆에서 서연에게 건넸다. 서연은 기름종이를 열어 보더니 하나를 꺼내 소한에게 내밀었다.
"약속이니까."
소한은 그것을 받아 들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설탕이 이 사이에서 바삭하게 부서졌고 그 밑에서 산사 열매의 신맛이 퍼졌으니, 마흔다섯의 머리가 무어라 하든 열다섯의 혀는 단것 앞에서 정직하였다.
"맛있지?"
"……맛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시킨 거야."
서연은 나머지 넷을 소매에 숨기고 안채로 뛰어 들어갔다. 소한은 남은 탕후루를 다 먹고 꼬챙이를 아궁이에 던져 넣었는데, 아가씨와의 거래에 증거를 남기지 않는 편이 서로에게 이롭다는 계산에서였다.
그날 저녁 왕 노인이 소한을 불러, 내일부터 새벽 바위터 시중을 들라고 일렀다. 주인의 수련에 수건과 찻물을 올리던 늙은 하인이 허리를 다쳤다는 것이었다.
소한은 고개를 숙였다. 전생에서 이 일은 열여섯 되던 해부터 맡았던 것이었으니, 한 해가 앞당겨진 셈이었다. 왕 노인이 그 까닭을 말하지 않았으므로, 소한도 묻지 않았다.
이튿날 동이 트기 전, 소한은 찻주전자와 수건을 들고 주인보다 먼저 바위터에 올랐다. 바위 위의 솔잎을 쓸어 내고, 바위 아래 구석에 섰다. 밤마다 혼자 마보를 서던 바로 그 자리였다. 그 자리에 하인의 자격으로 서는 것은 이번 생에서 처음이었다.
이윽고 주인이 올라오자 소한은 허리를 굽혔고, 주인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바위 위의 반들거리는 자리에 섰다.
검결 네 구절이 주인의 입속에서 흘러나왔다. 서른 해 가까이 들어 온 그 목소리였으나 지금은 마흔의 목소리였으니, 일흔의 목소리보다 조금 높았고 조금 빨랐다.
일식이 펼쳐졌다. 구름이 갈라지며 한 줄기 빛이 내리듯, 검이 칼집을 떠나 허공을 가로질렀다. 이식과 삼식으로 이어지는 동안 검은 산골짜기의 물처럼 흘러, 막히면 돌아가고 낮은 데로 스미며 끝내 닿아야 할 곳에 닿았다. 소한은 전생에서 수천 번 본 그 흐름을 오늘 다시 보았다.
그런데 그 흐름을 보는 동안 아랫배의 온기가 가만있지 않았다. 대추씨만 한 그 온기가, 주인의 검이 흐를 때마다 미세하게 흔들렸다. 주인의 기운이 바위터에 퍼지면, 소한의 단전이 그것에 응하듯 떨렸다. 전생의 소한은 이것을 느끼지 못하고 눈으로만 보았으나, 지금은 아주 희미하게, 주인의 숨이 어디서 들어가 어디로 흐르는지가 살갗으로 느껴졌다.
사식과 오식과 육식을 지나는 동안에도 주인의 숨은 고르게 흘러 검과 숨이 하나였고, 소한은 찻주전자를 쥔 손에 땀이 배는 것도 모르고 그 흐름을 따라갔다.
그리고 칠식이었다. 천류검법 칠식은 열두 식 가운데 처음으로 검이 방향을 거꾸로 꺾는 수였다. 흐르던 물이 바위에 부딪혀 되돌아 나오듯, 앞으로 뻗던 검이 한순간 멈추었다가 반대로 휘감겨 돌아온다. 그 꺾임의 순간에, 단전에서 솟구치던 기운도 함께 방향을 바꾸어야 했다.
전생에서 소한은 그것을 모르고 보았으니, 주인이 칠식을 펼칠 때마다 숨이 아주 잠깐 거칠어진다는 것만 알았다. 주인이 마흔둘 되던 해 여름, 칠식을 수련하던 어느 새벽 바위 위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지셨다. 의원은 기가 거꾸로 흘러 혈맥을 상하게 했다고 하였다. 주인은 석 달을 누워 계셨고, 그 뒤로 평생 오른쪽 옆구리를 조심하셨다.
일흔의 그 밤, 복면의 검이 파고든 곳도 오른쪽 옆구리였다.
마흔둘이면 두 해 뒤의 일이었다. 그러나 피를 토하기 전에 이미 주인의 숨은 칠식에서 거칠어지고 있었다.
주인의 검이 앞으로 뻗으며 꺾임의 자리가 다가오자, 소한은 아랫배의 온기를 붙들고 숨을 멈추었다. 단전이 떨렸고, 주인의 기운이 꺾이는 바로 그 자리에서 무언가가 아주 작게 어긋나는 것이 느껴졌다. 흐르던 물이 되돌아 나오는 그 순간, 물살 한 가닥이 엇나가 바위틈으로 스며들 듯이.
주인의 검이 돌아오며 칠식이 끝나고 팔식과 구식으로 이어졌으나, 주인의 얼굴은 평온하여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신 얼굴이었다.
소한이 찻주전자를 내려다보니, 손이 떨려 찻물이 조금 흘러넘쳐 있었다.
수련이 끝나 주인이 검을 거두고 바위에서 내려오자, 소한은 수건을 올렸고 주인은 얼굴의 땀을 닦으며 찻잔을 받았다.
"한아."
"예, 주인님."
"차가 식었구나."
"……송구합니다. 다시 데워 오겠습니다."
"됐다."
주인은 식은 차를 한 모금에 비우고 산을 내려갔다. 소한이 바라본 그 뒷모습은 걸음이 여전히 곧았고, 어깨는 여전히 넓었다. 오른쪽 옆구리를 감싸는 기색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소한은 아직은 그렇다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바위 위를 다시 쓸었다. 주인의 발자국이 반들거리는 자리 둘레에 남아 있었다. 칠식을 펼치던 자리에서 오른발의 자국이 다른 데보다 조금 깊었는데, 소한은 그 자국 하나를 맨 나중까지 남겨 두었다가 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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