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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선입선출

99%는 하루 종일 99%였다.

정우는 아침부터 이것저것 정리해 봤다. 휴게실 찬장. 1번 랙 생수. 센터장실 서류함. 보람이 던져 둔 충전기 줄 세 개까지.

물건들은 매번 얌전히 제자리로 날아갔다.

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반장님, 이거 1% 남은 데서 막히는 거 게임에서 제일 짜증 나는 구간이에요. 보통 조건이 따로 있어요. 그냥 반복하면 안 오르고, 뭔가 새로운 걸 해야 돼요."

보람이 핸드폰을 든 채 말했다. 정우는 대답 대신 1번 랙 앞에 섰다.

즉석밥 박스가 네 단으로 쌓여 있었다. 사흘 동안 넷, 아니 다섯이 먹으면서 위에서부터 꺼내 먹었다. 맨 위 박스는 지난주 입고분이었다. 맨 아래는 석 달 전 입고분이었다.

정우는 박스 옆면에 찍힌 날짜를 봤다. 맨 아래 박스는 유통기한이 다음 달이었다. 맨 위는 내년이었다.

물류센터에서 이렇게 쌓으면 사수한테 혼난다. 김 반장한테 신입 때 제일 먼저 배운 게 그거였다. 먼저 들어온 걸 먼저 내보낸다. 선입선출.

정우는 랙을 보며 말했다.

"즉석밥 전량. 유통기한 순으로 재적재. 짧은 거 앞으로."

박스들이 떠올랐다. 맨 아래 박스가 맨 앞 칸으로. 맨 위 박스가 맨 뒤 칸으로. 박스마다 날짜가 보이도록 옆면이 바깥을 향해 돌아갔다. 여든여섯 박스가 10초 만에 순서대로 섰다.

띵동.

【[정리정돈] 숙련도: 100%】

【[정리정돈]이 Lv.2가 되었습니다. 신규 기능: [창고]】

휴게실이 조용해졌다.

보람이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하다가 잡았다.

"…방금 뭐 하신 거예요?"

"선입선출이요."

"그게 뭔데요?"

"먼저 들어온 거 먼저 먹는 거요."

"그게 조건이었다고요?"

"그런가 봐요."

보람이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그러고는 정우 눈앞의 허공을 노려봤다. [분석]으로 창을 보려는 모양이었다. 남의 스킬 창은 안 보인다는 걸 알면서도.

"반장님, [창고] 설명 뭐라고 나와요?"

정우는 창을 읽었다.

"정리된 물건을 아공간에 보관합니다. 용량, 팔레트 두 개분."


정우는 시험부터 했다. 7년 동안 새 장비가 들어오면 늘 그렇게 했다. 설명서보다 직접 굴려 보는 게 빨랐다.

먼저 생수 한 묶음. 손을 대고 "입고"라고 하자 묶음이 사라졌다. "출고"라고 하자 바닥에 다시 나타났다. 물기 하나 없이, 비닐도 그대로.

"됐다."

다음은 보람의 가방이었다.

"보람 씨, 가방 좀 빌려요."

"왜요?"

"입고 테스트요."

보람이 가방을 내밀었다. 정우가 손을 댔다.

【입고 불가: 적재 상태 불량】

"…."

"뭐래요?"

"적재 상태 불량이래요."

보람이 가방을 열었다. 충전기, 립밤, 반쯤 먹은 젤리, 영수증 뭉치, 이어폰 두 개가 엉켜 있었다. 이어폰 하나는 줄이 젤리에 붙어 있었다.

"…이거 제 가방이 지저분하다는 거예요?"

"스킬이 그렇다는데요."

"스킬이 저를 무시해요!"

라지브가 옆에서 웃음을 참았다. 참는 게 다 보였다.

보람이 씩씩대며 가방 안을 정리했다. 충전기는 앞주머니로, 영수증은 버리고, 이어폰은 하나만. 젤리는 그 자리에서 먹었다. 정우가 다시 손을 대자 가방이 사라졌다.

"…정리하니까 들어가네요."

"그런가 봐요."

"반장님, 이거 진짜 이상한 스킬이에요. 인벤토리가 정리 안 된 건 안 받는다니. 이런 거 처음 봐요."

다음은 센터장이었다. 센터장은 자기 서류 가방을 내밀며 중요한 서류라 잘 보관해 달라고 했다. 정우가 손을 댔다. 똑같은 창이 떴다.

센터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서류 가방 안에서 3년 치 영수증이 쏟아져 나왔다. 만식이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용량 시험은 오후에 했다.

생수를 한 묶음씩 넣었다. 열 묶음, 서른 묶음을 지나 여든 묶음째가 들어갔다.

팔레트 하나분.

정우는 계속 넣었다. 백오십 묶음을 넘기고 백육십 묶음째에서 손끝이 묵직해졌다.

【입고 불가: 용량 초과】

"팔레트 두 개. 딱 맞네요."

"반장님, 무게 제한이에요, 부피 제한이에요?"

보람이 공책을 들고 물었다. 정우는 대답 대신 즉석밥 박스를 하나 들고 와서 손을 댔다. 들어가지 않았다.

"부피네요. 생수 160묶음이면 팔레트 두 개 꽉 찬 거예요. 무게로 치면 2톤 가까이 되는데, 박스 하나 더 안 들어가는 거 보면 칸 수로 세는 거예요."

"칸이요?"

"랙 칸이요. 팔레트 한 칸, 두 칸."

보람이 공책에 적었다. 용량 단위 = 팔레트. 그 옆에 별표를 세 개 쳤다.

정우는 생수를 전부 꺼냈다. 1번 랙 앞에 생수가 줄을 맞춰 나타났다. 입고했을 때 순서 그대로였다. 먼저 넣은 게 앞줄에.

"…이것도 선입선출이네."

혼잣말이었는데 라지브가 들었다.

"반장님 스킬은 반장님 닮았습니다."

"칭찬이에요?"

"칭찬입니다. 확실히."

마지막으로 정우는 냉동 창고에 들어갔다.

방수포 아래 세눈들개가 얼어 있었다. 사흘째였다. 털 없는 회색 가죽 위로 서리가 하얗게 앉아 있었다. 다리 하나는 팔레트에 깔렸던 그대로 이상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정우는 손을 댔다.

【입고 불가: 분류 기준 없음】

"…."

뒤따라온 보람이 창을 기다리는 얼굴로 정우를 봤다.

"분류 기준이 없대요."

"정리가 안 됐다는 거랑은 다른 거예요?"

"다른 것 같아요. 이건 뭘로 분류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정우는 얼어붙은 개를 내려다봤다. 맞는 말이었다. 이게 식량인지, 쓰레기인지, 재료인지 정우도 몰랐다. 7년 동안 처음 보는 품목이 입고되면 늘 그랬다. 품목 코드가 없으면 랙 번호도 줄 수 없었다.

정우는 방수포를 다시 덮고 냉동 창고 문을 닫았다.


저녁에 다섯은 휴게실 바닥에 둘러앉았다. 라지브가 마지막 계란으로 계란말이를 했다. 계란이 떨어지면 내일부턴 통조림이었다.

보람은 공책에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맨 위에 '반장님 스킬 공략'이라고 쓰여 있었다.

"정리하면요. Lv1, 정리정돈. 시야 안의 물건을 분류하고 적재. 조건은 반장님이 그 물건의 제자리를 아는 것. Lv2, 창고. 정리된 물건만 보관. 레벨 업 조건은 물류 방식으로 정리하기. 오늘은 선입선출."

보람이 펜을 탁 내려놨다.

"반장님, 이거 숨겨진 SSS예요. 장담해요. 처음엔 쓰레기처럼 보이게 해 놓고 조건 맞추면 미친 듯이 크는 스킬. 게임에선 이런 게 제일 무서워요."

"게임 아니잖아요."

"하늘에 창 떴잖아요. 게임 맞아요."

정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계란말이를 하나 집었다. 게임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팔레트 두 개였다.

팔레트 두 개면 생수 2톤. 아니면 즉석밥 160박스. 아니면.

정우는 창밖을 봤다. 출고장 셔터 너머, 후진 주차된 냉장 탑차 두 대. 시동은 꺼져 있었다. 5톤 탑차의 연료 탱크는 200리터였다. 발전기 경유는 이제 하루 반 치가 남아 있었다.

"형님."

만식이 고개를 들었다.

"출고장 창고에 20리터 말통 몇 개 있어요?"

"열두 개. 왜."

"탑차 기름을 빼야겠어요. 말통에 담아서 줄 세우면 [창고]에 들어갈 거예요."

만식이 젓가락을 내려놨다.

"밖에 나가야 된다는 소리네."

"셔터 바로 앞이에요. 탑차까지 3미터."

"3미터면 개한테는 한 번 뛰는 거리다."

정우는 반박하지 않았다. 맞는 말이었다. 대신 일지를 펼쳐서 내일 날짜를 적었다. 그 밑에 한 줄.

06:00, 출고장 2번 셔터 개방. 경유 회수.

만식이 그걸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남은 계란말이를 정우 쪽으로 밀었다.

"묵어라. 내일 니 다리 떨리면 안 된다."

그날 밤 정우는 늦게까지 휴게실 창가에 있었다.

보람이 옆에 앉아 공책을 펼쳤다. 사흘 동안 창밖 개들을 시간마다 적어 둔 공책이었다.

"새벽 4시부터 7시 사이가 제일 조용해요. 다섯 마리 다 주차장 저쪽 금 근처에 모여서 자요. 해 뜨고 나서 한 시간쯤 지나면 다시 돌아다니고요."

"밤엔요?"

"밤에 제일 많이 움직여요. 냄새 맡으면서."

정우는 보람의 공책을 넘겨 봤다. 시간, 마리 수, 위치. 칸을 그려서 적어 놨다. 재고 조사표 같았다.

"이거 언제부터 적었어요?"

"첫날 밤부터요. 할 게 없어서요."

보람이 어깨를 으쓱했다. 정우는 공책을 돌려주고 일지를 다시 펼쳤다. 06:00에 줄을 긋고, 그 옆에 새로 적었다.

05:30.

보람이 그 숫자를 보더니 자기 공책의 '4시~7시' 칸에 동그라미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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