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통로 확보
05시 25분. 출고장.
셔터 안쪽에 다섯이 모였다. 아무도 크게 말하지 않았다.
만식은 지게차에 올라 있었다. 포크 위에 빈 팔레트를 하나 얹어 세워 놓았다. 방패였다. 라지브는 고무호스 두 줄과 깔때기를 들고 있었다. 센터장은 20리터 말통 열두 개를 줄 세우는 일을 맡았는데, 세 번째 말통에서 이미 줄이 삐뚤어졌다.
출발 전에 센터장이 일지를 내밀었다. 탑차 연료 무단 사용 건이라고 했다. 본사 차량이라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정우가 펜을 건네자 센터장은 비상 출고 승인란에 사인을 했다. 날짜와 시간까지 꼼꼼히 적었다.
그러고 나서야 말통을 줄 세우러 갔다.
만식이 그 뒷모습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저 양반은 개가 물어도 사인부터 할 끼다."
"그래서 사인받는 거예요."
보람은 셔터 옆 관찰창에 붙어 있었다.
"다섯 마리 다 금 근처에 있어요. 엎드려 있고요. 하나는 고개 들고 있는데, 눈은 두 개 감았어요."
"세 개 다 감을 때까지 기다리면 해 떠요."
"알아요. 그냥 보고드리는 거예요."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셔터 밖을 머릿속에 그렸다. 어제 저녁 관찰창으로 열 번 넘게 봤다.
2번 셔터에서 탑차 뒷문까지 3미터. 탑차는 후진 주차라 연료 탱크가 운전석 아래 왼쪽에 있었다. 셔터에서 연료 탱크까지는 대각선으로 5미터.
그 사이가 뻥 뚫린 아스팔트였다.
정우는 머릿속 도면 위에 선을 두 줄 그었다.
"형님, 올려 주세요. 1미터만."
만식이 셔터 스위치를 눌렀다. 셔터가 덜컹거리며 올라갔다. 새벽 공기가 바닥을 타고 들어왔다.
차가웠다.
정우는 셔터 아래로 몸을 숙였다. 셔터 안쪽에는 어젯밤 만식이 1번 랙에서 내려 둔 생수 두 팔레트가 서 있었다. 2톤.
첫날 2번 셔터를 막았던 봉쇄용 생수는 셔터 옆으로 비켜 쌓아 뒀다.
"생수. 로케이션 변경. 2번 셔터에서 탑차 연료 탱크까지, 양쪽으로 두 줄."
【로케이션 변경 요청을 확인했습니다.】
생수 묶음들이 떠올라 셔터 밑을 미끄러져 나갔다. 아스팔트 위에 두 줄로 내려앉았다. 한 줄은 왼쪽, 한 줄은 오른쪽. 폭 1미터 50센티. 높이 1미터 50센티.
통로였다.
물류센터에서 지게차가 다니는 길을 만들 때와 똑같았다. 양쪽에 팔레트를 쌓아 벽을 세우고, 가운데를 비운다. 사람과 장비가 다른 데로 새지 않게.
"…반장님, 이거 그냥 길 만드신 거예요?"
"통로 확보요."
"무슨 차이예요?"
"없어요. 말만 있어 보여요."
만식의 지게차가 먼저 나갔다. 포크 위의 팔레트를 앞세우고 통로 끝까지. 탑차 운전석 옆에 지게차를 바짝 붙여 세웠다. 통로의 끝이 지게차로 막혔다.
라지브가 호스를 들고 뛰어나갔다.
연료 탱크 아래 드레인 마개를 렌치로 풀었다. 경유가 쏟아졌다. 깔때기로 받아 첫 번째 말통에.
정우는 셔터 아래 쪼그려 앉아 시계를 봤다. 20리터 채우는 데 1분 10초. 열두 통이면 14분. 200리터 탱크가 가득 차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센터장님, 다음 통."
센터장이 말통을 통로로 밀어 넣었다. 기어가듯이. 몸은 셔터 안에 두고 팔만 뻗어서.
두 통.
세 통.
"반장님."
보람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고개 들고 있던 애가 일어났어요."
정우는 고개를 돌렸다. 주차장 저쪽, 아스팔트 금 근처에서 회색 덩어리 하나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세 눈이 다 떠져 있었다. 코를 쳐들었다.
경유 냄새였다.
새벽 공기에 기름 냄새가 퍼지고 있었다. 정우는 그것도 계산에 넣었어야 했다. 기름 냄새는 생수 벽으로 막을 수 없었다.
"라지브 씨, 몇 통이에요?"
"여섯 통 찼습니다! 일곱 통 지금!"
개가 걷기 시작했다. 뛰지는 않았다. 냄새를 따라 천천히, 통로 쪽으로.
"계속 채워요. 통로 벽 1미터 50이에요. 저번에 못 넘었어요."
정우는 자기 목소리가 평소와 같다는 걸 확인했다. 그래야 다들 움직였다.
개가 통로 왼쪽 벽 앞에 서서 생수 묶음에 코를 박고 벽을 긁었다. 박박. 넘으려 하지는 않고, 벽을 따라 셔터 쪽에서 탑차 쪽으로 걸었다.
통로 끝까지 갔다. 탑차 뒤쪽.
그리고 엎드렸다.
정우는 그 순간 자기가 놓친 걸 알았다.
탑차 밑이었다.
5톤 탑차의 차체 밑은 바닥에서 50센티가 넘게 떠 있었다. 양쪽 벽은 셔터에서 연료 탱크까지만 세웠다. 탑차 밑은 그냥 뚫려 있었다. 탑차 반대편에서 기어 들어오면, 연료 탱크 바로 옆으로 나온다.
라지브가 쪼그려 앉아 있는 바로 그 자리로.
개는 기어서 들어온다. 나흘 전, 3번 셔터 50센티 틈에 코를 박던 놈들이었다.
"라지브 씨, 뒤로!"
라지브가 고개를 들었다. 탑차 밑 그늘에서 세 개의 눈이 빛났다.
정우는 생수를 볼 시간이 없었다. 통로를 세우고 남은 생수는 통로 입구 바깥에 있었다. 거기서 탑차 밑까지 끌어오는 사이에 개가 먼저 나온다.
대신 탑차 밑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라지브가 채워 둔 말통 다섯 개가 보였다. 20리터씩, 경유가 가득 찬.
"말통 다섯 개. 로케이션 변경. 탑차 밑, 왼쪽 바퀴 사이."
【로케이션 변경 요청을 확인했습니다.】
말통이 한 통씩 탑차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바퀴와 바퀴 사이를 메우며 줄을 섰다. 기어 나오던 개의 머리 앞에 첫 번째 말통이 박혔다. 개가 머리를 들이받았다. 말통이 꿈쩍하지 않았다. 20리터 경유는 20킬로가 넘었다. 다섯 통이면 100킬로.
개가 뒤로 물러났다. 다시 들이받았다. 그 사이 라지브가 호스를 내던지고 통로를 따라 뛰었다. 넘어질 뻔했다. 만식이 지게차 위에서 팔을 뻗어 라지브의 뒷덜미를 잡아 셔터 쪽으로 밀었다.
"들어가라!"
라지브가 셔터 밑으로 굴러 들어왔다. 만식이 지게차를 후진시켰다. 포크 위의 팔레트를 앞세운 채로 통로를 거꾸로. 지게차 뒷바퀴가 셔터 문턱을 넘었다.
"내려요!"
센터장이 하강 버튼을 눌렀다. 이번엔 누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셔터가 바닥에 닿았다.
밖에서 개가 말통을 긁는 소리가 났다. 그러다 탑차 밑에서 빠져나가는 소리. 발톱이 아스팔트를 긁으며 멀어졌다.
다섯은 출고장 바닥에 주저앉았다. 라지브가 경유 냄새를 풍기며 숨을 몰아쉬었다. 손에 아직 렌치가 쥐어져 있었다.
"…반장님."
"네."
"죄송합니다. 호스를 두고 왔습니다."
"괜찮아요."
"말통도… 다섯 개 두고 왔습니다."
"그건 제가 보낸 거예요."
정우는 관찰창으로 밖을 봤다. 탑차 밑에 말통 다섯 개가 줄지어 있었다. 경유 100리터.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안쪽에 있는 건 센터장이 기어서 들여온 한 통뿐이었다. 20리터.
발전기 하루 치도 안 됐다.
만식이 지게차에서 내려 정우 옆에 섰다. 한참 관찰창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탑차 밑."
"네. 제가 놓쳤어요."
"니만 놓친 거 아이다. 나도 20년 동안 그 차 밑을 수백 번 봤다."
만식은 그 말만 하고 지게차 쪽으로 돌아갔다. 위로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말투였다. 정우는 그걸 위로로 치기로 했다.
말통 다섯 개는 그대로 탑차 밑에 있었다. 셔터를 다시 열고, 시야에 넣고, 로케이션을 바꾸면 들여올 수는 있었다. 문제는 그 냄새를 맡은 개가 이제 탑차 근처를 떠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관찰창 너머에서 그 개가 탑차 주위를 천천히 돌고 있었다. 한 바퀴. 두 바퀴.
보람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정우는 받기 싫었지만 받았다. 정부 발표였다.
각성자관리청 출범. 몬스터 사체는 각성자관리청에 신고 후 지정 업체에 매각 가능. 1차 매입가 공고: F급 세눈들개 가죽 1장 30만 원, 마정석(하) 1개 50만 원.
정우는 화면을 한참 봤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냉동 창고 쪽을 봤다.
방수포 아래 얼어 있는 개 한 마리.
분류 기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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