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해체 분류
탑차 주위를 도는 개는 새벽에도 그대로였다.
보람의 공책에 따르면 그 개는 밤새 한 번도 금 쪽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다른 네 마리는 해 뜨기 전에 주차장 저편으로 모여 잤는데, 그 한 마리만 탑차 근처에 엎드려 있었다. 탑차 밑 말통에서 새어 나오는 경유 냄새 때문이었다.
"저 개 때문에 말통을 못 가져와요. 그리고 저 개를 잡으면…."
보람이 말끝을 흐렸다. 정우가 대신 끝냈다.
"품목이 하나 더 생기죠."
발전기 경유는 오늘 밤이면 바닥이었다. 정우는 화이트보드 앞에서 출고장 바깥을 그렸다. 2번 셔터.
어제 세운 생수 통로.
통로 끝의 탑차.
통로는 아직 거기 있었다. 양쪽 벽 1미터 50, 폭 1미터 50, 길이 5미터. 탑차 쪽 끝은 열려 있었고, 셔터 쪽 끝은 셔터로 막혀 있었다.
"자루예요."
정우가 통로를 마커로 짚었다.
"입구는 하나, 반대쪽은 막혀 있어요. 개가 들어오면 입구만 막으면 돼요."
"개가 왜 들어가는데요?"
정우는 라지브를 봤다. 라지브가 냉동 창고 쪽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냄새입니다. 고기 냄새."
라지브가 세눈들개 고기 한 덩어리를 녹였다. 어제 끓인 냄비 바닥에 남은 국물까지 부었다. 냄새가 진했다.
개가 맡으면 같은 개 냄새였다.
그게 개를 부를지 쫓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F급 몬스터는 동족 사체에 반응하는 경우가 많아요. 게임에선요."
보람이 말했다. 자신 없는 목소리였다.
"게임에선 맞았어요?"
"…반반이요."
정우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했다. 반이면 해 볼 만했다.
안 되면 고기 한 덩어리를 잃는 것뿐이었다.
05시 50분. 셔터를 30센티만 올렸다. 그 틈으로 고깃덩어리를 밀어 넣었다.
통로 바닥, 셔터 바로 앞.
그리고 셔터를 닫았다.
다섯은 관찰창 앞에서 기다렸다.
10분. 20분.
탑차 옆에 엎드려 있던 개가 고개를 들었다. 코를 쳐들었다.
일어섰다.
개는 통로 입구 앞에서 오래 망설였다. 양쪽 벽 냄새를 맡았다. 벽을 긁었다. 그러다 천천히, 통로 안으로 들어왔다.
고기 쪽으로.
한 걸음. 두 걸음.
통로 중간.
"아직이에요."
정우가 말했다.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자기도 몰랐다.
개가 고기 앞에 섰다. 고기를 물었다.
"지금."
만식이 셔터를 1미터 올렸다. 정우는 셔터 밑으로 몸을 숙였다. 통로 안의 개와 눈이 마주쳤다. 거리 3미터.
개가 고기를 문 채 굳었다.
정우는 개 너머 통로 입구를 봤다. 그 옆에 쌓아 둔, 통로를 세우고 남은 생수 묶음들.
"생수 남은 거. 로케이션 변경. 통로 입구, 바닥부터 꽉 차게."
【로케이션 변경 요청을 확인했습니다.】
입구가 막혔다. 1미터 50의 벽이 하나 더 생겼다. 통로는 이제 사방이 막힌 상자였다. 한쪽은 셔터였고, 그 셔터 아래 1미터 틈에 정우가 있었다.
개가 고기를 떨어뜨렸다. 정우 쪽으로 몸을 돌렸다.
"형님, 내려요!"
셔터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개가 뛰었다.
셔터 틈으로.
정우는 몸을 뒤로 뺐다. 셔터가 개의 머리 위로 내려왔다. 개가 머리를 틈에 밀어 넣었다. 셔터 하단이 개의 목덜미에 걸렸다. 셔터 모터가 끼익 소리를 내며 멈췄다. 안전장치였다.
물체가 걸리면 멈춘다.
개의 머리가 셔터 아래로 들어와 있었다. 이빨이 정우의 신발 앞 20센티에서 딱딱 소리를 냈다.
"반장님!"
정우는 개의 머리를 보지 않았다. 셔터 안쪽, 출고장 바닥을 봤다. 어제 들여온 경유 말통 하나.
20킬로.
"말통. 로케이션 변경. 셔터 틈, 바닥."
말통이 날아왔다. 개의 머리 위로. 정확히 셔터 하단과 개의 목덜미 사이로 내려앉았다. 셔터의 무게와 말통의 무게가 한꺼번에 개의 목을 눌렀다.
개가 비명을 질렀다. 발톱이 바깥 아스팔트를 긁었다. 30초쯤.
그리고 조용해졌다.
정우는 개가 완전히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고 나서 셔터를 다시 1미터 올렸다. 말통을 안으로 들였다. 개의 몸이 통로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라지브 씨."
라지브가 칼을 들고 다가왔다. 정우가 손을 들었다.
"칼 들기 전에 부르기로 했잖아요."
라지브가 칼을 내렸다.
정우는 셔터 아래로 몸을 숙인 채 통로 안의 개를 봤다. 이번엔 얼어 있지 않았다. 털 없는 회색 가죽, 세 개의 눈, 늘어진 다리.
화이트보드에 쓴 것들을 떠올렸다. 겨드랑이 결부터 가죽, 근막 따라 고기 6분할, 뼈, 그리고 심장 왼쪽 갈비뼈 안의 돌.
어제 라지브가 한 시간 반 동안 보여 준 순서였다.
"세눈들개 1두. 분류 시작. A-1부터 A-4까지."
【신규 분류 기준을 확인했습니다: 세눈들개(F)】
창이 하나 더 떴다.
【[정리정돈]이 Lv.3이 되었습니다. 신규 기능: [해체 분류]】
개의 몸이 움직였다. 정우는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겨드랑이 안쪽에서 가죽이 결을 따라 열렸다. 칼도 없이. 가죽이 한 장으로 벗겨져 공중에서 반듯하게 접혔다. 고기가 근막을 따라 여섯 덩어리로 나뉘었다. 뼈가 고기에서 떨어져 나와 한 무더기로 쌓였다. 마지막으로 갈비뼈 안쪽에서 푸른 돌 하나가 굴러 나왔다.
3초.
통로 바닥에 네 무더기가 나란히 놓였다. 가죽, 고기, 뼈, 마정석. 무더기마다 허공에 작은 글자가 떠 있었다.
A-1. A-2. A-3. A-4.
출고장이 조용했다.
라지브가 칼을 든 채 그걸 내려다봤다. 한참.
"…반장님."
"네."
"제가 한 시간 반 했습니다."
"네."
"3초입니다."
"…죄송해요."
라지브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웃었다. 처음엔 작게, 나중엔 크게.
"아닙니다. 아버지가 보셨으면 좋아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칼을 싫어하셨습니다. 손이 아파서."
보람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공책을 꼭 쥔 채로 네 무더기와 정우를 번갈아 봤다. 그러다 겨우 입을 열었다.
"…반장님, 이거 제가 말했죠. 숨겨진…."
"게임 아니라니까요."
정우는 통로 너머를 봤다. 탑차 밑에 말통 다섯 개가 줄지어 있었다. 이제 그 주위를 도는 개는 없었다.
"말통 다섯 개. 로케이션 변경. 출고장 안, 발전기실 앞."
말통들이 통로를 따라 미끄러져 들어왔다. 100리터. 발전기 이틀 반 치.
점심때 문제가 하나 생겼다.
마정석이었다. [창고]에 든 하급 마정석이 이제 두 개였다. 100만 원. 가죽 두 장까지 치면 160만 원.
센터장이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넥타이를 고쳐 맸다.
"자, 이건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이 재료들은 센터 안에서, 센터 설비로, 센터 재고를 써서 얻은 거잖아. 생수, 말통, 셔터. 그러니까 원칙적으로는 센터 자산으로…."
"센터장님."
만식이었다.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저 개 잡을 때 센터장님 어디 계셨는교."
"…셔터 스위치 옆에."
"버튼 누른 거는 내다."
센터장의 입이 닫혔다. 정우는 둘 사이에 끼어들지 않았다. 대신 일지를 펼쳐 새 쪽에 칸을 그었다. 날짜, 품목, 수량, 예상가. 그리고 맨 오른쪽에 칸 하나를 더.
배분.
"재료는 다 여기 적을게요. 팔게 되면 다섯 명이 똑같이 나눠요. 센터 설비 쓴 건 나중에 본사가 살아 있으면 그때 정산하고요. 센터장님 사인 받아서."
센터장이 잠깐 계산하는 얼굴을 했다. 다섯 명이 똑같이면 자기 몫도 있었다. 본사 정산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으면 나중에 할 말도 있었다.
"…좋아. 그렇게 하지. 사인은 내가 하고."
만식이 콧바람을 뿜었다. 그래도 반대하지는 않았다. 보람은 자기 몫이 있다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도요? 알바인데요?"
"알바도 개 세는 거 했잖아요."
라지브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우는 라지브 칸에 동그라미를 하나 더 그려 넣었다. 칼을 든 사람에게 따로 줄 몫이었다. 그게 정우가 정한 이 장부의 첫 번째 특약이었다.
그날 저녁 라지브는 새 고기로 다시 냄비를 올렸다. 어제와 같은 카레 가루, 같은 향신료 병. 그런데 냄비를 젓던 라지브가 손을 멈췄다. 허공을 보고 있었다. 라지브 눈앞에만 보이는 무언가를.
"반장님. 제 스킬 창이 바뀌었습니다."
"뭐라고요?"
라지브가 또박또박 읽었다.
"[조리]. 분류된 재료 사용. 효과, 야간 시야 2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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