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위의 것
랜턴을 가지러 가던 발이 멈췄다.
지붕 끝의 흰 덩어리가 고개를 돌렸다.
솜털처럼 부푼 깃 사이로 붉은 볏이 삐죽 솟아 있었다.
다리는 마른 나뭇가지 같은데 깃은 몸보다 커서, 윤곽이 통째로 뭉개져 있었다.
'저게 닭 맞나.'
서울 현장에서 쥐 한 마리가 장화를 두 켤레 물어뜯는 걸 본 적 있다.
겉은 멀쩡한 쥐였다. 3팀 막내가 야간 배수로에서 그놈을 밟았고, 장화 속 양말까지 이빨이 닿았다. 잔류물을 먹고 달라진 놈들은 멀쩡한 모양으로 숨어 있다가 사람 발목부터 문다.
이 마을 흙은 몇 년째 방치된 오염 구역이다.
저것도 변이체일 수 있다.
나는 마당 한가운데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덮쳐 오진 않았다. 그래도 등을 보이고 다가갈 마음은 없었다.
닭이 발톱으로 처마를 긁더니 몸을 낮추고 날개를 폈다. 그대로 처마 아래로 곤두박질. 바람을 탈 기세도 아니었다.
툭.
회색 흙에 떨어진 놈이 제 발로 일어나 휘청거리다가, 장작더미 뒤로 쏙 들어갔다.
나는 따라가지 않았다.
창고 선반에서 랜턴을 찾아 켜고 닭장 문에 걸었다.
철망 안쪽이 드러났다. 엎어진 모이통, 말라붙은 물그릇, 바닥에 눌어붙은 배설물, 그리고 한 올도 남지 않은 볏짚.
모이통을 집어 뒤집었다. 바닥에 매직 글씨가 눌려 있었다.
아침 한 줌, 저녁 한 줌.
날짜도 이름도 없었다.
창고에는 빈 포대 몇 장과 녹슨 쇠스랑뿐이었다.
닭 모이는 없다. 부엌 찬장 아래에서 묵은쌀 포대를 찾았다. 한 줌 덜어 손바닥에 올렸더니 쌀알이 누렇게 떠 있었고, 손바닥은 가만히 있었다. 정화할 게 없다는 뜻이다. 적어도 쌀은 깨끗했다.
사료가 생기기 전까진 이걸로 버텨야 했다.
내 저녁은 고시원에서 들고 온 컵라면 하나였다. 가스레인지는 세 번 만에 붙었다. 라면 물이 끓는 동안 나는 쌀알을 세고 있었다.
오늘 이 집에서 쌀밥을 먹는 건 닭이다.
부엌 수도를 틀자 붉은 물이 나왔다.
쇳내가 올라오고, 물소리가 한참 빈집을 채웠다. 물이 투명해지고 나서야 모이통을 받쳤다.
모서리에 눌어붙은 자국은 손톱으로 긁어야 떨어졌다.
씻은 그릇 두 개를 닭장 앞에 놓았다. 쌀알을 몇 톨 집어 장작더미 가까이에 내려놓고, 마루로 물러나 앉았다.
컵라면에 물을 붓고 마루로 들고 나왔다. 면이 불 때까지 삼 분 동안 장작더미 뒤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국물을 마지막 한 모금까지 마시자 속부터 데워지면서 그제야 손끝이 풀렸다. 빈 용기를 내려놓는 동안에도 흰 깃털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장작더미 뒤의 흰 깃털은 움직이지 않았다.
랜턴 불빛이 철망에 걸려 그림자가 마당을 지나갔다 돌아왔다.
밤이 서울보다 조용했다. 차 소리도, 옆방 벽 치는 소리도 없다.
서울 현장에서는 새벽 세 시에 컨테이너 벽에 기대 선 채로 졸았다. 앉으면 조장이 봤고, 누우면 퇴근이었다. 그렇게 서서 기다리던 시간이 칠 년이다. 이 마루에서 쌀알 몇 톨을 두고 기다리는 건 그에 비하면 호사였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았다.
쌀알을 조금 더 가까이 밀어 주려고 손을 뻗었다.
장작더미 뒤에서 발톱이 흙을 긁었다.
나는 손을 무릎에 도로 올렸다.
방에 들어와서도 누울 수가 없었다. 창문을 열어 놓고 창틀에 팔을 걸쳤다.
뒤뜰은 창틀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한참 바람 소리뿐이었다.
그러다 닭장 쪽에서 짧게 쇳소리가 났다. 그릇 가장자리를 부리로 건드린 소리였다.
문고리를 잡았던 손을 놓았다.
지금 나가면 또 놀라 달아날 거다. 장작더미 뒤에서 산 쪽으로 도망가 버리면 어디서 찾을지 모른다. 찾을 이유도 없는데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창문은 닫지 않았다.
책상 위 공책 탑에서 올해 것을 꺼냈다.
할아버지 글씨 사이에 '닭' 자가 드문드문 보였다.
모이 줌. 물 갈아 줌. 볏짚 넣음. 짧은 말들이 장마다 이어졌다. 올해 공책은 뒤로 갈수록 빈칸이 늘었다.
닭 모이 줌. 퇴비장 뒤집음. 부숙 안 됨.
그 아래는 백지였다.
작년 공책을 꺼냈다. 마지막 장 귀퉁이, 종이가 접힌 자리에 짧게 적혀 있었다.
갑순이 깃털 빠짐.
그 전 해 공책에는 같은 귀퉁이에 이렇게 있었다.
갑순이만 남음.
닭장에 남은 건 한 마리뿐이다.
지붕 위에서 떨어진 그 솜뭉치가 갑순이일 거다.
열 살 때 모이 바가지를 들고 이 닭장 앞에 서 있었다.
닭들이 발등으로 몰려들어 모이를 엎질렀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빈 바가지를 받아 다시 채워 줬다.
그때 닭이 몇 마리였는지는 세어 본 적이 없다. 마릿수보다 발등에 닿던 깃털이 따뜻했던 것만 기억난다.
지금은 한 마리를 공책에서 찾아야 했다.
공책을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모이통 쌀알은 그대로였다. 장작더미 틈으로 검은 눈 두 개가 보였다가 사라졌다.
점퍼 주머니에서 서울에서 쓰던 가죽 장갑을 꺼내 양손에 꼈다.
손바닥 코팅은 다 벗겨졌지만 맨손보단 낫다. 저게 변이체면 부리에도 발톱에도 오염이 묻어 있을 수 있다.
"갑순아."
대답은 없었다.
마른 깃털이 나무를 스치는 소리만 났다.
쌀알을 한 알씩 집어 장작더미에서 모이통까지 띄엄띄엄 흙에 놓고, 마루로 돌아가 앉았다.
붉은 볏이 먼저 나타났다.
쪼고, 고개를 들고, 나를 보고, 다시 쪼았다. 내가 대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한 알 더 쪼았다.
모이통 앞에서는 한참을 서성이기만 했다.
마지막 알은 내 손에 있었다. 장갑 낀 손가락 끝에 올려 내밀었다.
부리가 다가와 쌀알은 건너뛰고 장갑부터 톡 쳤다.
차가운 부리 끝이었다.
한 번 더 쪼았다. 세게 물진 않았다.
나는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갑순이는 쌀알을 쪼아 삼키고 나서야 두 걸음 물러났다. 물러나면서도 눈은 장갑에서 떼지 않았다. 나도 갑순이한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닭장 문을 묶은 철사가 녹슬어 있었다. 한 바퀴 풀 때마다 쇳가루가 손톱 밑에 끼었다.
퇴비장 옆에 쌓인 볏짚을 안아 와 털고, 닭장 바닥에 깔았다.
쇠스랑으로 굳은 배설물을 긁어 비닐봉지에 담았다.
랜턴을 비추니 철망 아래쪽이 벌어져 있었다.
손가락 두 개가 들어갈 틈이다. 고양이는 들어오고 갑순이는 나갈 수 있는 틈.
지붕 판자도 한쪽이 들려 있었다. 처마 끝에 올라앉아 있던 이유가 이거였나 보다.
서울에서 챙겨 온 짐 가방에서 니퍼를 꺼냈다. 문을 묶었던 철사를 잘라 틈에 두 번 감았다. 판자 한쪽 끝은 썩어서 못이 헛돌았고 다른 쪽은 아직 단단했는데, 망치가 창고에 없어서 철사를 판자 구멍에 꿰어 기둥 둘레로 세 바퀴 돌렸다. 용역 시절 파이프를 묶던 방식 그대로였다.
쇳조각에 손끝이 긁혔다.
판자는 남은 철사로 기둥에 묶었다. 손바닥으로 밀어도 지붕이 더는 덜컹거리지 않았다.
갑순이는 기둥 뒤에 붙어 이쪽을 지켜봤다.
가까이 가자 뒤로 물러났다.
손을 거두고 한참 기다렸다. 달아나지 않는 걸 보고서야 장갑 낀 양손을 천천히 내밀었다.
안아 올리자 깃털 아래로 뼈가 잡혔다. 손바닥 안에서 심장이 가쁘게 뛰었는데, 몸집에 비해 지나치게 빠른 박자여서 장갑 너머로도 쉬지 않고 두드리는 게 느껴졌다.
날개는 퍼덕이지 않았다.
볏짚 위에 내려놓았다. 갑순이는 몸을 웅크리고 부리를 가슴에 파묻었다.
눈이 감겼다.
철망 문을 닫고 철사를 감았다. 이번엔 갑순이가 안쪽에 있었다.
모이통에는 쌀알이 몇 톨 남았고 물은 반쯤 줄어 있었다.
방으로 돌아오니 책상 위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고시원 문자였다.
-다음 달에도 방 쓰실 거면 25일까지 연락 주세요.
답장은 하지 않고 휴대폰을 엎어 놓았다.
'좀 더… 있어 볼까.'
방에 누웠다.
뒤뜰 쪽에서 짚을 밟는 소리가 한 번 났다.
새벽 다섯 시 반, 눈이 떠졌다.
문을 열자 산에서 내려온 안개가 고랑에 걸려 있었고, 마루 끝까지 젖은 흙냄새가 밀려 들어왔다. 서울에서는 이 시간에 컨테이너 숙소 알람이 먼저 울렸다. 여기서는 닭장 쪽에서 날개 터는 소리가 먼저 났다.
닭장 앞에서 철사를 풀었다. 볏짚은 어젯밤 그대로였다. 갑순이는 그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물그릇을 갈고 쌀알을 조금 놓았다.
갑순이가 고개를 내밀어 한 알을 쪼았다. 밤에 남긴 물이 줄어 있었다.
철망 문은 닫지 않고 한쪽으로 물러섰다.
어젯밤처럼 안아 올리지 않고, 제 발로 나오는지 기다렸다.
나는 밭 쪽으로 걸었다.
어제 낸 산 쪽 첫 고랑이 안개 속에서 갈색 띠로 이어져 있었다. 허리를 펴 보니 무릎에서 뚝 소리가 났지만 어제처럼 쑤시진 않았다. 회색 밭 한가운데 그어 놓은 갈색 선이 아침에 보니 더 곧았다.
자박.
뒤에서 발소리가 난다.
멈추면 소리도 끊긴다. 돌아보니 닭장 앞에 갑순이가 서 있다.
안개에 젖은 깃이 몸에 달라붙어 어제보다 작아 보인다.
한 발 내딛는다. 비쩍 마른 다리로 안개 속을 내딛는 걸음이 어색하게 조심스럽다.
다시 걸으면 자박자박, 발소리가 따라온다. 두 걸음 뒤에서 멈췄다 따라오고, 멈췄다 따라온다.
간격이 조금씩 좁아진다.
고랑 가장자리에서 갑순이가 멈춘다. 갈색 흙에는 발을 올리는데, 두 걸음 옆 회색 흙 앞에서는 발톱을 접고 돌아선다.
몇 번을 해 봐도 같았다. 갈색 띠 위로만 조심조심 걷는다.
고랑 앞에 쪼그려 앉았다. 갑순이가 내 신발 옆에 섰다.
부리가 운동화 끈을 톡 건드린다.
띵.
[사육 현황 갱신: 닭 1마리, 갑순이]
나는 갑순이와 허공을 번갈아 봤다. 창은 금세 사라졌다.
"상태창."
[사육 현황]
[닭 1마리, 갑순이]
창을 닫았다.
갑순이가 운동화 끈을 한 번 더 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