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 벨
휴대폰을 켜고 지도 앱에 동물병원을 쳤다.
가장 가까운 곳이 읍내였다. 영업은 아홉 시부터. 걸어서 두 시간, 택시는 이 시간에 안 들어온다고 어제 그 기사가 말했었다.
'아홉 시까지 이 상태로?'
갑순이 가슴이 올라갔다 내려올 때마다 쌕, 소리가 났다. 아까보다 간격이 좁아졌다.
일지를 넘겼다. 아픈 닭 얘기는 모이 끊고 물만. 아침까지 지켜볼 것. 한 줄뿐이었다. 아침까지 지켜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손바닥을 갑순이에게 가져가다 말았다. 흙이랑 물만 대 봤던 손이다. 살아 있는 데 잘못 쓰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이건 내 손으로는 안 되겠다.'
어느새 일어나 점퍼를 입고 있었다.
갑순이를 가슴께에 넣고 지퍼를 올렸다. 솜뭉치가 턱 밑에서 쌕쌕거렸다. 심장이 두 개 달린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대문을 열고 마을길로 나섰다.
새벽 공기가 차가웠다. 빈집들은 문이 열린 채 어두웠고 가로등은 몇 개 건너 하나씩만 켜져 있어서 발밑이 자꾸 사라졌다. 점퍼 속에서 갑순이가 한 번씩 부리를 움직였다. 그때마다 걸음이 빨라졌다.
공동 수돗가를 지나 마을 안쪽으로 걷다가 윤씨상회 앞에서 멈췄다.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셔터에 붙은 종이가 바람에 펄럭였다.
급한 물건은 2층 벨 눌러 주세요.
어제 지나칠 때는 급한 물건이 없었다.
'급한 건 맞는데…'
물건이 아니라서 어디다 말해야 할지 몰랐다.
셔터 옆 철 계단을 올라가 2층 문 앞에 섰다. 벨은 오래돼서 누르는 부분이 눌어 있었다. 눌렀다가 소리가 났는지 안 났는지 몰라 한 번 더 눌렀다.
한참 아무 소리도 없었다.
세 번째로 손을 올리려는데 안에서 쿵, 하고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어서 발소리가 허둥지둥 문 쪽으로 왔다.
문이 아주 조금 열렸는데 체인이 걸려 있었다.
"누, 누구세요…?"
여자 목소리였다. 문틈으로 눈 하나가 보였다.
"저 아래 끝집, 구태환입니다. 이 시간에 죄송한데."
점퍼 지퍼를 조금 내렸다.
"닭이 숨을 못 쉬어서요."
문틈의 눈이 점퍼 안을 봤다.
체인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문이 활짝 열렸다. 후드티에 슬리퍼, 한쪽 머리가 눌린 여자가 서 있었다. 스물 안팎으로 보였다. 조금 전까지 겁먹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얼굴이 달랐다.
"내려놓지 마세요. 그대로 안고 계세요. 날개 밑은 누르지 말고요."
"…네."
"언제부터요?"
"새벽에요. 어젯밤에 떨어서, 품고 잤는데."
"품고요?"
"일지에 그렇게 나와 있어서."
여자는 더 묻지 않고 계단 쪽으로 손짓했다.
"아래로 내려가요. 위는 할머니 주무세요. 가게 안에서 봐요."
셔터 옆 쪽문으로 들어가자 가게 안은 어두웠고, 여자는 불을 켜지 않은 채 계산대 옆 평상 위에 수건을 폈다. 선반에는 먼지가 앉은 라면 몇 봉지가 보였다.
"여기 올려 주세요."
갑순이를 수건 위에 내려놓았다.
갑순이는 눈을 반쯤 뜨고 부리를 벌린 채 여자를 올려다봤다.
"쉬이. 괜찮아."
여자가 목소리를 낮췄다. 방금 문틈으로 말하던 사람과 같은 사람이 맞나 싶었다.
여자는 손바닥을 갑순이 가슴 위에 얹었다.
손바닥에서 풀빛 같은 게 번졌다. 아주 옅고, 형광등에도 안 보일 만큼 약한 빛이었다. 불을 안 켜서 보였다.
갑순이의 호흡이 한 번 길어졌다.
쌕, 쌕, 하던 소리가 쌕… 쌕… 하고 느려졌다.
여자의 이마에 땀이 맺히는 동안 가게 안에서는 한참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빛이 사그라들 때쯤 갑순이의 부리가 천천히 닫혔다.
나는 그동안 숨을 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숨이 얕은 건 괜찮아졌어요. 폐에 찬 기운이 올라와서 그랬던 거 같아요. 오염 있던 닭이면 그럴 수 있어요."
"오염…이요?"
"깃이 솜 같잖아요. 이런 닭 처음 봐요."
여자는 수건 위의 갑순이를 쳐다보며 숨을 내쉬었다.
"저는 사람 찰과상 정도밖에 못 낫는 힐러인데, 동물한테는 이상하게 잘 들어요."
갑순이가 눈을 떴다. 수건 위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여자 손목 쪽으로 걸어갔다. 머리를 여자 손바닥에 대고 비볐다.
"어머."
여자 목소리가 갈라졌다.
'…내 가슴 위에서는 그렇게 안 하던데.'
여자가 갑순이를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안아 올렸다. 갑순이는 얌전히 안겨 있다가 꼭, 하고 한 번 울었다.
"어머, 어머, 어떡해. 쟤 지금 울었어요."
"…네."
"이름이 뭐예요?"
"갑순이요."
"갑순이."
여자는 따라 말하고는 웃었다. 갑자기 열 살쯤 어려 보였다.
"저는 윤보람이에요. 죄송해요, 아까 문틈으로… 요즘 밤에 아무나 벨을 눌러서."
"…아무나 벨을 누른다고요?"
"동네 할아버지가 술 드시고요."
위층에서 기침 소리가 났다. 마른 기침이었다. 보람이 고개를 들었다가 아무 말 없이 다시 내렸다.
"…할머니 깨시면 안 돼서 목소리가 작았어요."
"네."
더 묻지 않았다.
보람은 한참 갑순이를 쓰다듬다가 문득 나를 봤다.
"뭘 먹여요? 얘."
"쌀이요. 묵은쌀."
"쌀만요?"
"…네."
보람의 눈이 아까처럼 단단해졌다.
"닭이 쌀만 먹으면 안 돼요. 풀도 먹어야 되고 모래도 있어야 돼요. 속이 갈아 줘야 소화가 되니까."
"풀은 지금 키우고 있어요."
"지금요?"
"어제 심었습니다. 열무."
보람이 눈을 깜박였다.
"…사장님이세요?"
"아닌데요."
"그럼 농부?"
대답이 어려웠다. 어제 퇴근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집 지키는 사람입니다."
보람은 웃음을 참았다.
갑순이를 받아 점퍼 속에 넣었다. 갑순이가 한 번 꿈지럭거렸다. 수건에서 떨어지기 싫은 눈치였다.
"저기."
가게 쪽문을 나서려는데 보람이 뒤에서 불렀다.
"혹시 오늘 낮에 가 봐도 돼요? 얘 상태 보려고요. 숨은 괜찮아졌는데 한 번은 더 봐야 해서."
"…좋죠."
"꼭 해야 돼서 그래요. 다른 이유 없고요."
"네."
"진짜예요."
"알겠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해가 올라와 있었다.
갑순이는 마루에서 수건을 베고 잤다. 숨소리가 낮고 길었다. 가슴 위 솜털이 규칙적으로 오르내렸다.
'…당직 끝.'
나는 그 옆에 앉아 한참 갑순이를 봤다. 새벽 일은 아무것도 안 했는데 몸이 천근이었다.
아침 대신 컵라면을 먹고 닭장 앞에 앉아 멍하니 철망을 봤다. 어젯밤에 둘러 놓은 헌 포대 아랫단이 바람에 들썩이고 있었다.
그때 대문 쪽에서 기척이 났다.
"저, 계세요…?"
보람이었다. 후드티는 그대로인데 머리를 묶고 왔다. 한 손에는 보리차 병, 다른 손에는 낡은 담요와 종이봉투를 들고 있었다.
"할머니 약 드실 시간까지만 볼 수 있어서요."
"들어오세요."
보람은 대문 안으로 한 걸음 들어왔다가 마당을 둘러보고는 멈췄다. 빈 마당에 풀이 길었고 마루에는 수건 뭉치가 있었다.
"…사람이 살고 있네요."
"저요."
"아, 네."
그 말투가 이상하게 웃겨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뻔했다.
마루 앞으로 가자 갑순이가 수건에서 고개를 들었다. 보람을 알아봤다. 일어나 마루 끝까지 걸어와서 꼭꼭, 하고 울었다. 목소리가 새벽보다 훨씬 힘이 있었다.
"어머, 일어났어."
보람이 쪼그려 앉아 손을 내밀었다. 갑순이는 아무 망설임 없이 그 손바닥에 머리를 갖다 댔다.
나한테는 이틀이 걸렸는데.
'…나쁜 놈.'
누구한테 한 말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보람은 종이봉투에서 달걀 껍데기를 곱게 간 가루를 꺼내 보였다.
"닭은 칼슘이 필요하거든요. 모래 대신이에요. 이거 쌀에 조금 섞어 주시면 돼요. 담요는 제가 쓰던 거라 낡았는데, 닭장 구석에 깔아 줘도 되고요."
"…감사합니다."
"별거 아니에요."
보람은 갑순이를 무릎에 올리고 한참 깃털을 쓸어 줬다. 갑순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가만히 있었다. 구르르, 하는 소리가 났다. 처음 듣는 소리였다.
"이게 닭이 좋을 때 내는 소리예요."
"…처음 들어요."
"편해서 그래요. 사장님 앞에선 안 내죠?"
"사장 아닙니다."
"그럼 뭐라고 불러요?"
"…그냥 태환 씨."
"태환 씨."
보람은 한 번 따라 하더니 갑순이에게 속삭였다.
"태환 씨래."
갑순이가 꼭, 하고 대답했다.
보람이 마루에서 고개를 들어 뒤뜰 쪽을 봤다.
"닭장 좀 봐도 돼요?"
같이 뒤뜰로 갔다. 보람은 닭장 앞에 서서 철망을 위에서 아래로 훑었다. 갑순이는 보람의 슬리퍼 뒤꿈치를 따라 졸졸 걸어왔다.
"아랫단은 막으셨네요. 위쪽이 비었어요. 지붕이랑 철망 사이요."
올려다보니 슬레이트 아래로 손바닥 두 개만 한 틈이 길게 벌어져 있었다. 어젯밤에 거기로 바람이 다 들어갔던 거다.
"사다리 있어요?"
"창고에 있을 거예요."
사다리를 꺼내 지붕 처마에 걸치고 올라갔다. 결속선과 니퍼는 가방에 있었고 헌 포대는 이미 한 장 더 있었다. 보람은 사다리 아래에서 갑순이를 안고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조금 왼쪽이요. 더요. 그쪽 말고, 거기요."
"여기요?"
"네."
"…여기 맞아요?"
"네, 그쪽이요."
현장 감독이 둘이 됐다. 하나는 안고 있는 쪽이었다. 갑순이가 보람 팔 안에서 내 손놀림을 고개로 따라 움직였다.
'…감독이 닭이네.'
틈 위로 포대를 대고 결속선으로 서까래에 묶었다. 철망과 겹치는 자리는 니퍼로 끝을 잘라 꺾었다.
"할아버지가요."
사다리 아래에서 보람이 말했다.
"예전에 달걀을 갖다 주셨어요. 할머니한테요. 이 닭장에서 나온 거라고, 한 판씩."
"…몰랐습니다."
"말씀이 없는 분이셨잖아요. 그냥 문 앞에 놓고 가셨어요."
나는 한 손으로 서까래를 잡은 채 잠깐 가만히 있었다.
"…그랬군요."
갑순이가 꼭, 하고 울었다.
"그때 닭 중에 얘도 있었을까요."
"모르겠어요. 그런데 얘 눈은 어디서 본 거 같아요."
그 말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사다리에서 내려오면서 포대 모서리를 한 번 더 눌러 확인했다.
보람이 시계를 봤다. 휴대폰 화면에 알람이 떠 있었다.
"가 봐야겠다. 할머니 약 시간이에요."
보람은 갑순이를 마루에 내려놓고 일어났다. 대문 쪽으로 걸어가다 다시 돌아섰다.
"저기, 내일도 와도 돼요?"
"…네."
"얘 보러요."
"알겠습니다."
"진짜 얘만 보러 오는 거예요."
"네."
보람이 대문을 나갔다. 갑순이가 마루 끝에 서서 한참 대문 쪽을 보고 있었다.
내가 마당에 서 있는 건 쳐다도 안 봤다.